먼저 감성적 시각으로 보면
날씨가 차갑게 가라앉자
강에 얼음이 잡혔다.
항상 생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살았던 강은
겨울이 오자 언제나처럼 투명한 겉옷 한벌을 장만했다.
속이 비치는 그 옷이 을씨년스러웠던지
눈발이 그 위를 덮어 하얗게 치장해 주었다.
바람과 손을 맞잡고 생살을 헤집으며 강을 돌아다녔던 돛단배도
겨울 한철 마치 제가 낸 상처를 보듬듯
강의 한쪽으로 조그많게 자리를 잡고
얼음 위로 제 몸을 들어올려 무게를 덜어주려 애쓰고 있었다.
여덟 시를 넘긴 밤시간,
산을 올라 하늘로 떠오른 달이
그 강의 하얀 옷깃에 달빛을 한아름 담아주었다.
아마도 여름엔 강물 깊숙이 얼굴을 들이밀고 더위를 식혔을 달이
지금은 창호지 문을 새어든 은은한 빛으로 강밑에 쌓이고 있으리라.
사진 촬영의 기술적 시각에서 보면
돛단배와 달을 동시에 잡고 싶었다.
카메라에 장착된 렌즈는 50mm 표준 렌즈.
야간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 어둡다.
삼각대가 있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차의 트렁크에 실려있는 삼각대를 꺼내지 않았다.
이럴 때 사진이 흔들리지 않게 찍으려면 감광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
감광도를 4000까지 올렸다.
어느 정도 셔터 속도가 확보되었다.
이제 달의 표면 얼룩이 보일 정도로 잘 나오게 하려면
노출을 두 단계 정도 낮추어야 한다.
한 단계만 낮추어 보았다.
너무 어둡게 나온다.
할 수 없이 노출을 오히려 한 단계 높이고
배에 초점을 맞추었다.
F값이 낮은 밝은 렌즈는
코에 초점을 맞추면 눈이 흐리게 나올 정도이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배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달은 당연히 흐려졌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럴 때는 삼각대가 필수이다.
삼각대가 있어도 달과 돛단배를 모두 선명하게 잡아내기는 어렵다.
돛단배가 잘 나오면 셔터 속도가 길어져 어차피 달이 뭉개지기 때문이다.
달에 초점을 맞추면 그 밝기 때문에
아마도 달빛 아래쪽의 풍경은 모두 어둠에 잠기고 말 것이다.
따라서 결론은 달과 돛단배가 모두 잘 나오도록 구도를 잡고
한 장은 돛단배에 초점을 맞추어 찍고
다른 한장은 달에 초점을 맞추어 찍는 것이다.
물론 그 다음에 그 두 장을 합성해야 한다.
내 안에 두 개의 눈이 있다.
아니 내 안의 눈은
두 개를 넘어 세 개 네 개일지도 모른다.
4 thoughts on “달과 돛단배”
햐- 사진이 정말 아름답네요
강가의 불빛들도 횃불로 보여요
묘한 분위기가 납니다. 사진찍는 법에 대한 설명을 보니 마구 찍어대는 저와 다르구나 싶네요
카메라가 하도 뛰어나다 보니 좁쌀만한 빛만 있어도 사진을 찍어주더라구요. 제 카메라가 워낙 좋은 기종인데 이것을 훨씬 넘어서는 제품들이 또 나오더구만요. 요즘의 기술 발전은 머리가 어지러워요.
언젠가 사진 강의를 듣다가 당황한 적이 있어요. 제가 사진을 찍는 것과 반대로 가르치고 있었거든요. 일반적 사진 방법론과 거꾸로 가고 있다는… ㅋㅋ
TV를 잊고 산 지 오래된 사람의 뒤떨어진 시각에서 보자면
저 사진 뒤에 불빛만 없으면…
그 뭣이냐…
예전에 <전설의 고향>에서 꼭 황천 갈 때는 저런 강을 건너지 않았나요?
저 배에는 검정색 갓고 두루마기 입은 저승사자랑 잡혀가는 사람 하나 타구요.
ㅎㅎㅎ
날이 추워서 그런지 사람이 하나도 없긴 없었어요. 그 정도 시간에 두물머리에 사람없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좀 으시시한 분위기이기는 했지만 뭐, 바로 옆의 자판기 불빛에다 양평가는 불빛이 그런 산통을 다 깨버리죠.
시골살 때는 꼭 강가에 나타나는 귀신 얘기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만나기가 어려운 거 같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