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주기

Photo by Kim Dong Won

설날,
일곱 살, 네 살 아이와 놀았다.
아이들과 노는 것은 재미는 난데 힘이 든다.
내가 아이들과 놀아주기 때문이다.

딸이 귀국해 있는 동안, 어느 하루,
딸이 비워놓은 오후의 시간이 아까워
그냥 한가하게 혼자 보낼 시간을 주지 못하고
그 시간을 꿰차고 딸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대학로에서 먹은 점심을 시작으로
종로에 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커피 한잔을 했다.
그 다음에는 홍대로 가서 아이 엄마를 만나고
아이의 큰고모랑 모두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내내 아이는 내 사진 모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네에 와서 노래방까지 들렀다.
아이는 들어와서 곧장 뻗어버렸다.
아이도 아빠랑 놀아주려면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우리가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가 크면 아이가 우리와 놀아준다.
놀아주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살다보면 같이 노는 세상이 올까.

8 thoughts on “놀아주기

  1. 동원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아이가 크면 아이가 부모랑 놀아준다는 말이.
    저도 방학때마다 한국에 가면 부모님 마음이 이랬겠구나하고
    동원님 블로그에와서 배우고 갑니다.
    여름에 제 딸내미 데리고 한국에 가면
    그 때는 제 딸고 놀아주고, 부모님과도 놀아드려야겠네요.

    저는 오늘 컴퓨터를 애플에 가지고 갔는데, 3일 걸린다 그러고
    두시간만에 고쳐주더군요. 감동해서 후배한테 말해줬더니
    델은 30분만에 집에 기사가 와서 고쳐주고 갔데요…
    어찌되었건 공짜로 빨리 고쳐서 전 다행.

    따님이 다시 일본으로 가셔서 적적하겠지만, 그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1. 크고 나면 그냥 어디 같이 다니는게 노는 거 같아요.
      옆에 끼고 하루 보내면 그것으로 뿌듯.
      뭐, 얘가 내 딸이라고 자랑질하고 다니는 거지만요.
      아이란게 아이의 삶을 그 자체로 긍정하게 하는 법을 배우는 좋은 기회인 거 같아요.

      우리가 살다 보면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 사이에도 암암리에 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이 끼어든다는 느낌이 들어요. 뭐 수요 공급의 균형을 따지는 것이라고나 할까. 내가 이만큼하면 상대도 이만큼 하기를 바라게 되죠. 난 그걸 적어도 가족들 사이에선 극복해야 한다고 보는데 잘 극복이 안되요. 그런데 그게 아이에 대해선 잘 극복이 돼요. 보통 자본주의의 매커니즘은 대상의 가치보다 가격에 초점을 맞춰요. 가격이 외형적 금액이라면 가치는 그 대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내재적 만족도 같은 것이 돼죠. 그런데 우리가 아이를 마주할 때는 자본주의 매카니즘을 벗어나서 가치에 주목을 하게 되요. 말하자면 아이를 가격, 즉 외형적 금액이 아니라 내재적 가치에 주목해서 보는 다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죠. 그럼 그때부터 아이를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게 되죠. 아이가 지닌 내재적 가치는 부모밖에 알 수가 없으니까요. 아이는 일종의 난해한 시예요. 부모는 그 난해한 시를 남들보다 좀더 잘 해석할 수있는 특권을 갖게 되죠. 정보가 많으니까요.
      이건 내가 문학을 했기 때문에 나온 생각인지도 모르겠어요. 시집을 사갖고 들어와서 그걸 가격으로 평가하진 않거든요. 아무도 10000원짜리 시집이 5천원짜리보다 낫다고 하지 않으니까요. 시집의 가치에 주목하면 어떤 시집도 5천원짜리라고 무시당하진 않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듯 싶어요. 등수나 점수가 일종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마도 아이는 아이를 볼 때 가치에 주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키우면서 정말 재미난 일들이 많았거든요.

      이제 3개월뒤면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가 놀라운 세상을 안겨줄 거예요. 두 분이야 젊으니까 저보다 훨씬 잘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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