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의 힘으로 바라본 구상의 세계 – 2010 한국구상대전 이상열 전시회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10일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화가 이상열 선생님

집에 배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매년 그 나무에서 하얀 배꽃이 핀다.
올해도 예외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무가 꽃을 피웠다.
5월 10일 월요일, 2010 한국구상대전이 열리는 한가람미술관을 찾았다.
그리고 2층에 마련된 이상열 선생님의 그림 앞에 섰다.
<배꽃 향기>란 그림 속에 배꽃이 하얗게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배꽃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배꽃과는 전혀 다른 배꽃이었다.
항상 꽃은 나무에 피어 있었으나
그 그림 속의 배꽃은 나무에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꽃의 움직임은 너무 역동적이어서
나는 저러다 나무가 지상에 내린 뿌리를 뽑아들고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지 않을까 덜컥 걱정이 되었다.
이는 여러 작품에서 선을 보인 복사꽃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예전에 이상열 선생님의 복사꽃에서
꽃이 부풀어 오른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이제 그의 그림에서 꽃들은 나무를 일으켜 세우는
역동적 움직임이었다.
세상에선 항상 나무에서 꽃이 피었지만
그의 그림에선 이제 꽃이 나무를 일으켜 세운다.
앉은뱅이가 운명이었던 나무가
꽃이 피면서 그 힘으로 굳어있던 몸을 일으켜 세운다.

집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다.
매년 잎만 무성했었는데 어느 해부터 드디어 감이 열리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면 감나무에 주황색이 예쁜 감들이 상당히 여러 개 열렸다.
감들은 모두 감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전시회 장에서 <감익는 마을>이란 그림을 마주했다.
배꽃이나 복사꽃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림 속의 감 또한 내가 지금까지 보던 감이 아니었다.
내가 항상 보아왔던 감나무의 감은 나무에 매달려 있었으나
그림 속의 감은 나무 가지 사이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자 이제 나무는 바다처럼 넓은 품으로 보였다.
나는 잠시 바람이 불면 감들이 그 바람의 갈기를 잡고
어디론가 내달리는 환시에 사로잡혔다.

사실 미리 팜플렛을 받아보았다.
하지만 팜플렛 속의 도판에선 전시회장을 찾았을 때 받았던
그 놀라운 느낌을 받지 못했다.
왜 도판과 원화의 사이에 그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일단은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도판은 작고 그림은 크다.
그림 속의 원이 도판 속에선 작은 점이 될 수 있다.
내가 크기가 갖는 느낌의 차이를
상상력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 다른 하나는 도판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그림 속의 대상에 얹는 무게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그림에 자신의 무게를 얹는다.
이상열 선생님은 배꽃이나 복사꽃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무게를 얹어
그 꽃이 나무를 일으켜 세우는 역동적 움직임을 그린다.
그 무게가 없으면 꽃은 결코 나무를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
또 이상열 선생님은 감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품삼아 허공으로 둥둥 떠오르기에 이른
자유로운 열매를 그린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또한 바로
그림을 그릴 때 그림에 실리는 화가의 무게이다.
원화에서만 그 무게가 그림을 우리의 가슴 속으로 밀어 넣어주며,
그러면 우리들도 화가가 그리고자 했던 것에 눈뜨게 된다.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이상열 선생님은
“세상은 구상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내 머리 속은 추상”이라고 했다.
즉 그는 추상의 힘으로 구상의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이 그의 그림이 된다.
추상의 힘으로 바라본 구상의 세계에선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움직여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감이 나무를 넓은 품으로 삼아 허공으로 떠오른다.

**전시회는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열렸다
-전시회: 2010 한국구상대전
-전시 기간: 2010년 5월 4일(화) – 10일(월)
-전시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4 thoughts on “추상의 힘으로 바라본 구상의 세계 – 2010 한국구상대전 이상열 전시회

  1. 그날 넘 반가웠습니다 동원님과의 대화속에선 항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그림에 대한 리뷰를 또한 감동적 으로 써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진표아빠 엄마와의 만남도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담에 덕소 오시면 연락 꼭꼭 주세요……^.^

    1. 뜻하지 않게 모이게 되었어요.
      우연한 만남의 즐거움이라 더욱 남달랐던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올해는 여러 번의 전시회가 있다고 하나 더욱 반가웠어요.
      잎들이 물오르는 시기라 그곳의 물푸레나무 군락지 보러 한번 나갈 생각입니다. 그때 연락드릴께요.

  2. 이 화백님의 전시회가 있었군요.
    사진으로 보는 화가는 슬림해지고 그림은 풍성해진 듯한 느낌입니다.^^
    전시회 정보 늦게 알려주시길 잘하셨습니다.
    현장에 가서 봤으면 얼마냐고 물어볼 뻔 했을 것 같아서요.

    1. 운동도 하고 그러신다고 해요.
      마지막 날 가서 봤어요.
      혼자가는 바람에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가서 사람들을 만나긴 했습니다.
      현장에 가면 얼마냐고 물을 필요는 없어요.
      다 써 있거든요.
      불경기라 그런지 많이 나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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