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로 노무현을 보러가다

작년 이맘 때쯤 노무현이 세상을 떴습니다.
살아 있을 때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그를
그가 세상 떠나고 난 지 한해만에 찾아보았습니다.
가는 길에 빗발이 가늘게 뿌리고 있었습니다.
빗발은 잠시 굵어졌다 다시 가늘어졌다를 반복했습니다.
5월 22일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길거리의 표지판이 봉하마을이 2.8km 남았다고 알려준 지점에서
길이 딱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곳부터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에서 내려 앞선 차량들을 한번 살펴봅니다.
멀리 앞쪽이 아득합니다.
차량들이 거의 움직이질 못합니다.
차는 그녀에게 맡기고 내려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내려서 걷다가 뒤돌아 보니
누군가 또 한사람이 차에서 내려 걸어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밀린 차들의 끝이 아득해 졌습니다.
오후 1시쯤이었습니다.
좀 서둘러야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다지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생각보다 이곳으로 걸음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8km면 매일 그만한 거리를 걸어서 중학교를 다녔던 내게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닙니다.
조금 걷자 멀리 봉하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보입니다.
차량을 통제하여 차는 보이질 않고
걸어들어가는 사람들이 주로 눈에 띕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이 끊이질 않습니다.
때로 간격이 벌어지기도 하고 또 촘촘히 길을 메꾸며 가기도 하지만
우리가 머문 오후 내내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노란 팔랑개비가 늘어서 있었으나 바람이 없어
사람들을 빙글빙글 돌리는 그 특유의 손짓으로 맞아주지는 못합니다.
손으로 팔랑개비의 날개 하나를 툭 쳐서 빙그르르 돌려봅니다.
아마도 노무현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렇게 장난을 쳤을 듯한 느낌입니다.
또 그라면 입으로 훅훅 불러 팔랑개비를 돌렸을지도 모릅니다.
팔랑개비가 속절없이 그의 천진했던 모습을 일깨웁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마을에 거의 다다르자 이번에는 노란 풍선들이
줄줄이 길가를 함께 달리며 사람들을 맞아줍니다.
풍선이 무슨 알같이 느껴집니다.
하긴 그가 죽음으로 민주와 자유의 꿈을 잉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풍선은 그의 부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뻥터지면서 혹은 노랗게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민주와 자유를 외치는 독특한 노무현식의 잉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마을 곳곳의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노무현을 담아놓았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노란색의 작은 기념관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나가며
노무현을 만나고 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도 다들 비슷할 듯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곁으로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자기 마음을 보고 노무현과 눈맞추고 지나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노무현의 생가입니다.
내 어릴 적 자랄 때 살던 초가집과 똑같더군요.
마을 앞에 펼쳐진 논밭의 풍경도 내가 자란 고향과 비슷했습니다.
마치 내 고향 사람 같았습니다.
난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는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더군요.
내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갑자기 친구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노무현처럼 세상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고 있으니 더더욱 고맙습니다.
에이, 바보같은 사람… 악착같이 살았어야지…
사람들이 노무현의 옛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갑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생가를 나오다 대추나무 한그루를 보았습니다.
어릴 적 살 던 집에 대추나무 한 그루를 심었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 심을 때는 나보다 키가 작았는데
내가 고향을 뜰 때쯤엔 내 키를 훌쩍 뛰어넘어 크게 자라 있었죠.
노무현 생가 앞의 대추나무는 누가 심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항상 고향에 가면 기억 속의 나무들을 찾을 수 없어 그 아쉬움이 컸는데
이곳엔 여기저기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이 있어 좋았습니다.
이제 그가 나무들처럼 이곳의 여기저기에 뿌리를 내리고 또 커가겠지요.

Photo by Kim Dong Won

사람들이 노무현에게 한마디씩 건넵니다.
채은이가 남긴 “사랑해요”라는 말이 눈을 끌어당깁니다.
모두가 그를 사랑하는 듯 합니다.
이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 있으니 아마도 쓸쓸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이많은 사람들이 그가 없어 외롭고 또 슬픕니다.
에이, 모진 사람 같으니라구… 어찌 이 많은 사람들을 남겨놓고…

Photo by Kim Dong Won

마을회관 옆의 소나무 사이에서 그를 만납니다.
그의 품에 들고 싶었는지
어떤 사람은 걸개의 뒤쪽으로 들어가 한참 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저녁 7시쯤에 추모 행사가 있다고 하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빗속에서 추모식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이 비에 젖습니다.
추모식은 보지 못했습니다.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했거든요.
“그대 어디에 있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의 물음 위로
자꾸만 비가 내립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차를 세우고 들어왔길레
그냥 사진만 찍고 말았던 노무현 기념관 앞에 다시 줄을 서보았습니다.
집 앞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글자가 노랗게 빛을 발합니다.
들어갔다가 곧장 그냥 나왔습니다.
안이 너무 후끈거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노무현에 대한 사랑은 너무 뜨거웠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새롭게 문을 연 노무현 추모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한켠에서 그가 손을 흔들며 사람들을 맞아줍니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잠시 한가롭게 시간을 보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추모의 집 안에서 다른 무엇보다 내 눈을 끈 것은
한가운데로 자리한 촛불입니다.
아이들이 촛불을 바라보고 있고 또 촛불로 촛불을 켜기도 합니다.
이곳에선 여전히 촛불이 살아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아마도 처음에 밝혀 놓은 것은
그냥 촛볼 하나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하나의 촛불이 또 하나의 촛불을 낳고
그 촛불이 또 하나의 촛불을 낳으면서
이렇게 많은 촛불들이 불을 밝히기에 이르렇겠지요.
어찌보면 한해 전 노무현이 목숨을 내놓고 사그라 들었지만
이제 보니 그가 끊임없이 촛불을 낳으면서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실제 그의 묘비가 있는 곳은 여전히 공사중이어서
그냥 사진으로 헌화하는 곳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앞에 담배 한갑을 놓고 오고 싶어 했지만
담배를 사러 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그냥 꽃만 그의 앞에 놓았습니다.
참배하는 사람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 사진 속의 분들은 저희는 아닙니다.
꽃 두 송이 그의 손에 쥐어 주고
눈감고 조용히 그에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노무현, 우리도 채은이처럼 당신을 사랑한다고.

Photo by Kim Dong Won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곧 마무리가 된다는
노무현의 실제 묘비입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가 뛰어내린 부엉이 바위입니다.
처음보고 그 아득한 높이에 놀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까지 오르고 있었습니다.
오른 사람들의 모습이 아래서도 보입니다.
비행기 한 대가 그 위로 날아갑니다.
그는 뛰어내렸지만 사실은 날아올랐겠지요.
그래서인지 그가 뛰어내린 숲속으로 눈길이 가는 것이 아니라
부엉이 바위 저편 높은 하늘로 자꾸 눈길이 갔습니다.
어느 하늘 밑에서나 하늘로 시선만 두면
이제 그와 눈맞출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 힘들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와 눈맞추는 것으로 힘을 얻어야 겠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생가 뒤로 그가 살았던 집이 보입니다.
그가 없는지 대신 대나무들이 길게 목을 빼고
이제 동네를 떠나려 하는 우리에게 잎들을 흔들어 잘가라고 손짓합니다.
나도 손을 흔듭니다.
잘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

Photo by Kim Dong Won

동네를 떠나는데 길가를 따라 흐르고 있는 수로 위로
노란 꽃이 피어 있습니다.
땅이 그에게 바친 꽃만 같습니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별로 말이 없었습니다.
눈여겨 살펴보면 사람들의 눈동자는 곧잘 붉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슬픔을 꾹꾹 눌러 참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어디에서도 섧게 우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다만 꾹꾹 눌러 참으며 그곳을 돌아보고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가 세상 떠났다고 생각했으나
봉하마을 곳곳에서 그를 만났을 수 있었습니다.

13 thoughts on “봉하마을로 노무현을 보러가다

  1. 1년전, 그가 땅속에 묻히던, 제가 갔던 날과 별 다를 것 없는 모습들이네요.
    마치 1년이란 시간이 신기루처럼 느껴집니다.
    마을로 들어가고 나오는 길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도 아마 그대로일테지요…

    1. 역시 뜨거운 가슴으로 살고 있군요.
      1년전에 벌써 갔었다니 말예요.
      그의 고향 마을이 그냥 너무 평범해서 내 고향만 같았다고나 할까요.
      다음에 가면 그 뒷산도 올라가 보려고 합니다.
      벼랑 끝에 서면 그가 죽음으로 열려고 했던 길이 보일 듯도 합니다.
      일단 6월 2일에 그 길을 열어야죠.

    1. 아주 먼 길이었어요.
      물론 부산가서 보고싶은 사람만나고 그 다음 날 찾아가긴 했지만요.
      젊은 친구들이 모여서 한번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2. 이제 봉하에 다녀왔으니 숙제는 한 것 같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4대강이나 막았으면 좋겠다.
    부디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세상이 되기를…

    1. 이 놈의 정권은 선거 때마다 북풍을 이용하던 전두환 정권의 버릇마저 이어 받은 것 같다. 가서 마치 100표를 찍듯이 꾹 눌러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 같다.

  3. 고맙습니다.
    먼 길을 동원님의 카메라에 실려 다녀왔습니다.
    남쪽에 내려갈때마다 들러야지 하면서도 막상 그게 쉽지 않는군요.

    불친절한 카메라씨에게도 가끔 햇볕을 보여줘야 하는데….
    주말이란 시간이 항상 부족하네요.

    1.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 기다려주실 거예요. 늦게 오면 늦게 오는대로 반겨주시는 분이 그 분이니까. 때되었을 때 가면 될 거예요.

  4. 잔잔하고 애잔한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저흰 가볼 엄두도 못냈는데, 연휴를 뜻깊게 보내신 것 같습니다.

    1. 이틀간의 여행이 한 일주일 어딘가를 다녀온 느낌입니다.
      그 전날 만난 분도 노무현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분이었거든요.
      좋은 만남이 여행을 뜻깊게 하는 거 같아요.
      오늘 시청앞에 엄청난 인원이 모였다는 소식도 저를 들뜨게 하는 군요.

  5. 순례길을 걸어온 기분이군요.
    죽어서 많은 것을 남기셨으니 한 알의 밀알이 되신거구나하는 생각이 들고요.
    앞으로 많은 열매가 맺었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허름한 생가가 그대로 남아있어 참 다행이네요.

    1. 생가는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부엉이 바위까지 올라가보고 싶었는데 돌아오는 일정 때문에 산에는 못올라갔어요. 담에 올라가 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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