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송도 기행 – 암남공원

그녀는 사실 도시로 떠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부산은 우리 나라에선 두번째로 큰 도시니
그녀가 좋아할리가 없다.
그녀가 여행의 행선지로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도시는 어디나 많은 사람들로 번잡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행은 호젓한 한적함을 즐기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산으로 갔다.
그것은 순전히 그곳에 플님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는 사람이 있으면 도시도 갈만하며
그 사람이 위안이 되는 사람이면 더더욱 갈만하다.
그가 있는 알로이시오 병원과 그 주변을 돌아본 우리는
송도 바닷가에 있는 암남공원으로 향했다.

암남공원
다음 스카이뷰 캡쳐 화면

캡쳐 화면에서 오른쪽 부분이 암남공원이다.
이름은 이곳의 동네가 암남동이기 때문에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우리가 차를 갖고 왔는데도 플님은 택시를 잡아탄다.
차를 갖고 다니는데 익숙치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알로이시오 병원 앞에서 택시를 타고 암남공원 입구까지 갔다.
암남공원은 원래는 군사보호지구로 출입이 불가능했었는데
지방에 민선 정부가 들어서면서 10여년전 개방이 되었다고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결국 군사기지가 자연을 지켜낸 꼴이 되기 때문이다.
군사기지가 점유하고 있지 않았다면
상업화의 풍화를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람들의 의식이 성숙되면서
군사기지도 외곽으로 물러나게 되고
그동안 의도하지 않게 지켜진 자연도 계속 지켜지게 된다.
그러고 보면 자연을 지켜내는 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군사기지가 아니라
사실은 자연을 지켜가야 할 것으로 깨달은 성숙한 사람들의 의식인 셈이다.
플님이 앞서서 공원의 숲길로 걷기 시작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조금 걷자 마자 섬 하나가 보인다.
작은 섬이라 불린다.
작은 섬 옆의 큰 섬은 동섬이라 한다고 했다.
작은 섬에 낚시꾼이 보이고 저 섬으로 어떻게 건너갔을까가 궁금해진다.
플님은 섬까지 배가 데려다준다고 했다.
낚시꾼들을 저런 곳으로 데려다주는 배들이 있다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길이 해변을 따라갈 때는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언듯언듯 내 비쳤다.
그녀가 플님과 나란히 걷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대개는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간간히 좌우로 비켜서면서 바다를 한눈에 안겨준다.
멀리 보이는 육지의 끝자락에 태종대가 있다고 한다.
우리에겐 부산에 대한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바다에 배들이 많이 떠 있다.
이들 배들의 숫자로 경기를 짐작할 수 있단다.
경기가 나쁠 때는 바다에 떠 있는 배도 적다는 것이다.
배 한 척이 바다에 하얗게 선을 그으며 지나가고 있다.
원래 항구 안으로 들어가면 차와 마찬가지로 정박료를 내야 하는데
이렇게 항구 바깥에 정박해 있으면 그런 요금을 안낸단다.
말하자면 이곳은 무료 주차 구간인 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길은 또 바닷가를 버리고 숲의 한가운데로 가기도 했다.
그때면 나뭇잎 사이를 헛짚은 햇볕이 바닥까지 떨어져 어른거렸다.
땅에 떨어져선 여기가 어딘가 더듬고 있는 것일까.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었지만
군데군데 놓여있는 쉼터에 자리를 잡고
바람을 벗삼아 책을 읽어도 좋은 곳이었다.
실제로 플님이 그렇게 한다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를 향하여 뻗어나간 공원의 산맥이 보인다.
사실 이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맨끝은 실제로는 떨어져 있는 섬이다.
플님이 말했다.
섬이 보이는 곳까지 가볼래요?
당연히 그래야죠.
플님은 저기가 태평양 바다라고 했다.
태평양이란 말에 실리니 갑자가 바다가 엄청나게 넓어지는 느낌이 났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배들이 가끔 뿌우 뿌우 울었다.
저건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낚시꾼들에게 데리러 가니 준비하라는 소리란다.
정말 배가 공원 주변의 흩어져 있는 작은 바위섬에 배를 대고 사람들을 태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암남공원에서 바라보이는 섬에 도착했지만
내 카메라는 감천항으로 들어가고 있는 한 척의 배로 냉큼 돌아가고 말았다.
섬이야 가만 있지만 배는 지나가면 그만이니까.
방파제가 약간 엇갈리며 바다를 가로질러 서 있었고,
그 끝에 등대가 두 개의 탑처럼 서 있었다.
배는 두 개의 탑 사이를 지나 유유히 항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바깥의 바다는 넓어서 좋았지만 아늑해 보이는 것은 항구였다.
세상은 넓지만 아늑한 느낌은 담지 못한다.
아늑함은 집의 느낌이다.
배가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숲 사이로 언듯언듯 보았던 섬이다.
플님은 이 섬을 가리켜 두도라고 했다.
내가 섬이름을 듣고 “예?”하고 말꼬리를 올렸더니
“머리섬”이라고 이름을 풀어주었다.
머리가 정수리 부분으로만 덮여 있었다.
섬을 보고 내가 헤엄쳐서 갔다 올테니 잠시들 기다리라고 했더니
그녀가 그래, 그럼 내가 밀어줄께 라고 나오신다.
보험든 것도 깼는데 왜 이리 나오시나 모르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공원에 나무가 다양했다.
나무 이름을 캐고 다녀도 꽤 큰 즐거움이 될 것 같다.
걸어나올 때는 분명 삼지창 같이 생긴 소나무였는데
막상 가까이 가니 사지창으로 창하나를 더 펼쳐든 소나무가 있었다.
원래는 삼지창이었는데 사람들이 삼지창 삼지창 하니까
사지가 멀쩡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가지 하나를 더 펼쳐든 걸까.
나는 참 쓸데 없는 생각을 많이 하고 다닌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물마실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잠시 목을 축였다.
약수터는 아닌 듯하다.
약수라고 하기엔 물이 너무 미지근했다.
플님의 사진도 한장 찍었다.
요 부근엔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의자도 있어
데이트하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그녀가 아주 우람한 나무 한 그루를 올려다보며 그 이름을 궁금해 한다.
상당히 몸을 심하게 비틀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잎들은 이제 막 펴고 있는 듯 자잘했다.
나무는 몸은 다 늙어도 손은 봄마다 아기 손을 내밀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바닷가에 떠 있는 배를 보고
옆의 그녀에게 뜬금없이 묻는다.
저 배 말야, 왜 앞뒤로 기둥을 세워놓았는지 아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뻔한 거잖아. 기둥 하나만 세워놓으면 균형이 안맞아서 침몰하기 때문이지.
뒷기둥이 좀더 무겁나 보네. 뒤로 좀 기운거 같어.
그래서 앞기둥에 사람이 하나 올라타는 거야.
플님이 허허 웃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여기저기 바위가 있고
그 바위에는 또 푸른 삶이 있다.
바위 위의 삶은 삶만으로도 경이롭다.
우리의 세상에도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경이로운 사람들이 종종 있다.
누군가 가난한 사람들이 돈없어도
병하나만큼은 걱정이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면,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삶 또한 바위의 나무와 풀처럼 경이로울 수밖에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암남공원의 숲엔 동백나무가 아주 많았다.
꽃필 때 오면 장관일 듯 싶다.
꽃이 다 진 뒤 끝이었지만 나오는 길에
잎들 속에 깊숙이 몸을 숨긴채
아직 겨울 냉기를 추억하고 있는 꽃 한 송이를 보았다.
어떤 이는 계절을 넘기고도 피어있는 꽃을 보면 추하다고 하지만
나는 추억도 길고 오래 씹히는 경우가 있는 법이니
그 또한 삶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때되서 피고 때되서 지는 꽃이 있는가 하면
세월을 비켜서서 좀더 오래가는 꽃도 있다.
우리도 때로 과거를 붙잡고 오랫 동안 보내지 못하곤 하지 않던가.
때를 비켜서 피어있는 꽃은 추억을 붙잡고 있는 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떨어진 동백꽃도 한 송이 보았다.
바짝 말라있는 느낌이었다.
색깔로만 보면 집을 떠날 때 보았던 장미와 흡사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장미도 사실 겨울을 이기고 핀다.
좀더 이르거나 빠를 뿐
여름이 오기 전에 피는 꽃들은
모두 겨울을 이겨낸 힘으로 피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꽃들은 그와 달리 뜨거운 태양볕에 들떠서 피는 듯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5월 21일 부산 송도의 암남공원에서

바다 위로 배 한 척이 지나간다.
파일로트라고 써 있다.
나는 속으로 그럼 저 배는 저렇게 가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건가 했다.
플님이 배를 보더니 도선선이네라고 한다.
배의 항로를 유도하는 사람을 도선사라고 하는데
그들이 타는 배가 도선선이라고 한다.
배라고 다 같은 배가 아닌가 보다.
부산에서 태어나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과 같이 다니니
그냥 지나쳤을 배 한 척도 남다른 구경거리가 된다.
암남공원을 여기까지 돌며
바다 구경도 하고 나무 구경도 하는데
1시간여가 흘렀다.

14 thoughts on “부산 송도 기행 – 암남공원

  1. 송도공원 혼자가면 문전박대입니다.
    전 오늘까지 합해서 두번 쫒껴났어요.
    제가 집이 앞이라 자주가는대 갈비집은 혼자가면 가라고 쫒아내요.
    써비스 개떡입니다.
    부산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거기 남자직원 정말싸가지 없어요.

    1. 제가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라 뭐라 말하기가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이곳만의 문제는 아닌 듯 싶습니다.
      제가 곧잘 혼자 여행을 다니는데 그때마다 혼자 식사하려고 하면 식당을 찾기가 힘든 적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견해주신 것 고맙습니다.
      한번 잘 설득하고 건의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비밀글로 처리하겠어요.

  2. 와~ 드디어 부산에 가셨군요. 그것도 알로이시오병원과 암남공원이 있는 부산..
    플라치도님이 계신 곳… ^^
    송도의 해변가 절벽은 제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랍니다.
    중생대 지질의 다양한 흔적이 있는 곳이죠…
    ‘나무의 몸은 다 늙어도, 그 손은 봄마다 아기 손을 내밀 수 있다.’라는 말씀이
    이상하게 감동으로 다가오네요
    즐거운 길이였네요… 덕분에 송도의 다양한 풍경을 이쁘게 볼 수 있었답니다 ^^

    1. 우리가 그렇지 않아도 그 절벽을 올려다 보며
      얄선생님 애기를 몇 번 했어요. ㅋㅋ

      늙으면 이상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또 나이들면 실제로 아이로 돌아가기도 하는 거 같아요.

  3. 부산을 다녀오셨군요.
    플라치도님 블로그 갔다가 여기 왔네요.
    훌쩍 떠나서 좋은 분 만나고 오셨으니
    마음이 풍요롭겠습니다.
    부산까지 가는 여정이 예사롭지 않아보였습니다. 이 길 저 길 국도 고속도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가셨나 싶네요.

    1. 너무 좋았죠, 뭐.
      부산 온 환영으로 셋이서 한 세 시간은 걸은 거 같아요.
      함께 걸어 이 길을 같이 가자고 몸으로 말하신 듯.

      혼자 운전해서 가면 잘 찾아가기가 어려운데
      둘이 가니까 한 사람은 운전하고 한 사람은 길찾고… ㅋㅋ

      11월에 올라오실 일이 있으시데요.
      그때 함께 얼굴 봐요.

  4. 글을 읽다가 동원님에게 표창장이라도 하나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부산 서구 구청장 감사패 정도. ㅋㅋ) 우리 고장 소개를 맛갈나게 잘 해 줬다고.
    다음엔 봉래산 등정에다 감지해변에서 해산물에 소주입니다. 하하

    1. 사실은 읽어보면 죄다 그날 플님이 한 얘기인 걸요.
      정작 상받으실 분은 이것저것 알려주신 플님이예요.
      올해 서울서 사람들 마음을 모아 우르르 부산행 버스에 오를지도 모르겠어요.
      워낙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봉래산의 그 바위는 정말 올라보고 싶더라구요.
      제가 산에 가면 꼭 석양을 보다가 캄캄할 때 내려오곤 하거든요.

    1. 나는 분명히 부산을 가봤는데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나더라.
      그때는 부산에서 한 이틀밤은 잔 것은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기억이 하얗게 지워져 버렸는지 모르겠어.
      이번 여행은 정말 긴 여행 같아.
      이번 주 내 블로그는 내내 부산 송도야.

    2. 어떻게 그렇게 기억이 싹 지워져 있을까.
      하긴 내가 옆에 있었으니.. 다른게 생각날 수가 있겠나 싶긴 하네. ㅋㅋㅋ

    3. 사진을 찍어보니까 사진을 찍어놓지 않으면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라. 더구나 10년에 한번 정도 가는 곳은 더더욱 그런 듯.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시각적 기억같다는 느낌이 들어. 이번에 올라간 태종대 길은 안개낀 그때의 기억은 있는데 그 기억과 오늘이 겹쳐지질 않더라는.

  5. 다음 스카이뷰 좋네요.
    공원이 바다를 끼고 있어 오르고 걷는 재미에
    바라보고 탁 트이는 맛이 있었을 것 같군요.

    근데, forest님이 뭐 척척 박사라도 되나 봅니다.^^

    1. 길이 다양해서 이런 저런 조합으로 걸어보면 항상 다양하게 걸을 수 있을 듯 하더군요. 역시 가장 좋은 것은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점이구요. 여름에는 물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는 듯 했습니다. 나무의 수종이 다양해서 철마다 다른 풍경일 것 같아요. 동백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우리야, 뭐, 어떤 질문이 나와도 어떻게든 답을 하고야 마는 습성을 갖고 있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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