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늦잠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8월 31일 서울 홍대입구에서

딸이 귀국한 다음 날,
딸이 집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전히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질 않는다.
언젠가 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겠다고
자명종 시계를 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자명종 시계가 깨우는 것은
딸이 아니라 항상 우리들이었다.
자명종 시계는 우리를 깨우고
그러면 자명종 시계 소리에 일어난 우리는
그때부터 딸을 깨웠다.
집에 돌아온 딸의 그 버릇은 여전하다.
딸이 가져온 핸드폰이 삑삑 거리며 알람 소리를 냈지만
그 소리에 깬 것은 딸이 아니라 우리들이었다.
알람을 어떻게 끄는지를 몰라
그냥 딸 옆에 갖다 놓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핸드폰은 내 기억에 그 아침에 다섯 번은 삑삑 거린 것 같다.
딸은 끄고 또 자고, 끄고 또 잔다.
끈질긴 딸이다.
어릴 적에도 항상 그랬었다.
가끔 그 싱갱이 끝에서
속터진 저희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듣기도 한 버릇이지만
바로 그 버릇이 딸이 집에 왔다는 실감을 확실하게 해준다.
그녀는 한술 더떠 속터졌던 과거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면서 아이를 안스러워 한다.
언젠가 초등학교 때
아이가 한번 지각을 하고 난 뒤
아이 선생님한테 보낸 편지에서
“평생을 아내가 아이의 늦잠과 씨름한다고 해도,
아이에게 그런 방만한 삶을 인간의 이름으로 허용하고 싶다”고
써보낸 적이 있는데
아이는 아이를 그렇게 키운 집의 분위기를 용케도 기억하고
그 분위기를 맘껏 누리는 것 같다.
이미 잡혀진 약속이 있어 끈질지게 깨웠는데
일정 없는 날을 잡아 하루 종일 자도록 내버려두어야 겠다.

4 thoughts on “딸의 늦잠

  1. 집에 가면 잠만 자는 나를 깨우다 지친 우리 부모님께서는 항상 이러셨죠.
    ‘저렇게 자고 서울같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버티고 사는지가 의문이라고’ㅎㅎㅎ

  2. 옆모습이라서 그런가? 문지가 좀 야위어 보이네요.
    일주일이지만 엄마빠 할머니 사랑 듬뿍 받고,
    단지 집에 왔다는 것을 엄마빠에게 알려주기 위한 ‘무늬만 알람’은 무시하면서 늦잠도 자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면 몸과 마음에 양분이 또 가득 차겠지요?

    꿀같은 시간 달콤하게 보내세요~

    1. 그녀의 첫마디가 왜 이렇게 말랐어 였는데 거의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속초왔는데 딸이 잘 먹을만한 것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신경써주는 마음에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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