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조역 앞에서 무사히 딸을 만났다.
하지만 딸은 그때부터 10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내게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고 놀다
아르바이트 끝날 때쯤 잘 맞춰서 자기네 동네로 오라고 했었다.
나는 놀아도 딸의 동네에 가서 놀겠다고 일찍 주조역으로 가겠다고 했다.
집을 알면 열쇠를 받아서 먼저 들어가겠는데
내가 집을 모르니 그럴 수가 없었고,
딸이 함께 집에 갔다 오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가방과 김 상자를 딸이 아르바이트하는 상점에 맡겨두고
동네를 구경했다.
무려 장장 다섯 시간의 동네 구경이었다.
주조역을 나오자마자 주조 긴자라 불리는 시장을 만나게 된다.
시장에는 역시 볼 것이 많았다.
입구도 여럿인데 어느 한쪽 입구에는 東通り라고 되어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히가시도리라고 읽는 듯했다.
이 시장의 동쪽길이라는 뜻인 듯하다.
하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내겐 동통(東通)이라는 한문 두 자만 눈에 들어온다.
발음 세게 하면 좀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낄낄대고 웃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타고 가는 자전거가 특이하다.
세발 자전거이다.
세발 자전거는 원래 아이들 용인데… 세발 자전거를 타시다니.
세발 자전거이긴 했지만 크기로 보아
아이들 것을 빼앗아 타고 나오신 건 아닌게 분명하다.
페달도 특이하다.
밟아서 둥글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교대로 위아래로 밟게 되어 있다.
나이들면 어린 아이로 돌아간다더니
자전거까지 세발 자전거로 바꾼 할아버지가 시장을 보고 있었다.
주조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집이 분명했다.
줄을 이렇게 늘어선 집은 이 집밖에는 보질 못했다.
주로 닭으로 만든 음식이나 반찬을 파는 것 같았는데
나로선 봐도 음식들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오기 전에 한 번 이 집의 음식을 사먹어 보고 싶었지만
딸은 귀가 시간이 늦어 이 집이 문열고 있을 때는 들어오질 않았다.
결국 지나가며 냄새만 맡아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도쿄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 신주쿠라고 들었다.
주조는 그곳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자리한
비교적 도심에서 가까운 곳이다.
하지만 지하철이 아니라 지상으로 전철이 다니고 있었다.
딸이 사는 동네는 이 전철역의 북쪽이지만
전철이 동네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곳곳에 남북과 동서를 넘나드는 건널목이 있었다.
땡땡거리는 경고음과 함께 차단기가 내려가는데도 안으로 들어갔다가
황급히 몸을 숙이고 빠져나오는 사람도 보았다.
동쪽 방향의 건널목까지 갔다가 다시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장에서 파는 물건을 구경하다 보니
절인 배추가 눈에 띈다.
여기도 김치 해먹는 사람이 있나.
아님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이 사가는 것일까.
이국에서 낯익은 배추를 보니 그것이 신기했다.
시장 구경하고 다시 주조역 앞으로 왔다.
이제 역앞은 완연한 어둠에 쌓여 있다.
시간을 보니 여섯 시이다.
흘러간 시간은 한 시간밖에 되질 않았다.
아직도 네 시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역앞에 앉아 잠시 역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처자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나중에 들으니 이곳에 간호대를 포함하여 여자 대학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어쩐지 젊은 처자들이 너무 많다 싶더라니.
역앞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딸이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도 구경했다.
편의점은 어찌나 장사가 잘 되는지 딸은 잠시도 쉴틈이 없어 보였다.
다시 또 동네 한바퀴 돌아보기에 나섰다.
시장을 돌아보고 마을의 동쪽으로 가봤던 지난 걸음과 달리
역을 끼고 걸어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건널목 중 한 곳으로 가보았다.
전철이 오는지 사람들이 건널목에 서 있다.
건널목은 건너니 지붕없는 시장으로 보이는 풍경이 맞아준다.
가로등이 좀 달라 보였다.
주조 시장은 형광등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여기는 팔각등이다.
좀더 운치가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 골목에는 일본 전통의 연극을 공연하는 공연장도 있는 듯했다.
길거리에서 자전거의 앞뒤로 아이를 태우고 가는 여자들을 자주 보았다.
이 자전거도 그 중의 하나였지 않았을까 싶다.
거의 대부분 아이들에게 안전모를 씌우고 있었다.
뒤쪽 자리가 유난히 화려해 보인다.
아마도 뒤에 탄 아이는 왕자같은 기분이 절로 들 것 같다.
주점으로 보이는 한 가게의 바깥에서
벽에 걸려있는 꽃병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바깥을 힐끗거리더니 한 일본 여자가 나와서 뭐라고 말을 건넨다.
당황해서 일본어를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일본어로 뭐라고 말을 한다.
나는 여행중이고 동네를 둘러보는 중이라고 했다.
또 일본어로 뭐라고 얘기를 했다.
웃으면서 바이바이했다.
나는 영어로 하고 상대는 일본어로 하는 따로따로 대화였다.
마무리는 웃음이었다.
골목을 조금 더 살펴보다 다시 역쪽으로 돌아갔다.
가다 보니 한 노점 앞에 고양이가 있다.
처음에는 경계의 빛을 보이더니 잠시후 날선 경계를 거두어 들였다.
녀석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건널목을 건너면서 찍은 주조역의 풍경이다.
건널목이 있다 보니 이렇게 철로 위에서 역을 찍을 수가 있고
그냥 건널목에서 슬쩍 역으로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양쪽 끝이 모두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곳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 문구는 붙어 있다.
일본에서 내가 내렸던 역은 모두다 엄청난 규모였는데
이 주조역은 아주 자그맣고 아담한 역이었다.
철로도 오고 가는 단 두 개밖에 없었다.
단촐한 역의 규모와 달리 드나드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아서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다섯 시간의 긴 시간을 보내면서
아주 딸이 사는 동네를 이잡듯이 돌아다닌 것 같다.
이곳은 역의 아래쪽에 있는 건널목이다.
자전거 두 대가 엇갈린다.
시장이 있는 북쪽보다는 사람들이 한가한 듯했다.
주조역 앞에서 PC방이라도 들어갈까 기웃거리다가
그 앞의 식당 앞에 걸려있는 포스터에 눈길이 갔다.
한글로 한국요리축제라고 되어 있었다.
한국 음식하면 김치찌게나 불고기 같은 것을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내게 있어
포스터 속의 음식들은 모두가 조금 낯설어 보였다.
그냥 새로운 걸 만든 뒤에 한국 요리라고 이름붙이는게 아닌가 싶어진다.
어쨌거나 간간히 만나는 한글이 반갑기는 했다.
딸은 10시를 조금 넘긴 뒤에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나왔다.
딸의 집으로 가는 길은 주조 시장에서 서쪽 골목으로 방향을 꺾고 있었다.
남쪽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의 가로등은 팔각의 모양으로 내 시선을 끌었는데
이곳 골목의 가로등은 밑을 둥근 곡선으로 그려놓고 있었다.
골목마다 그 시장을 알리는 독특한 걸개가 걸려 있는 듯하다.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시장에 들려
아직도 문을 열고 있는 한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 두 개를 골랐다.
도쿄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딸이 사는 동네를
거의 샅샅이 돌아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마 이제는 딸보다 내가 그 동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6 thoughts on “딸이 사는 동네 주조의 밤 풍경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1-4”
따님이 일본에 있었군요!
짐이 많은 걸 싫어할 만도 했겠네요.
암튼, 옛말에 딸 낳음 뱅기 탄다는 말이 있다죠.
울 엄니도 글코, DW님도 글코…^^
일본간지 2년 됐어요.
이번에 뱅기 태워준 것은 딸은 아니었고 동생이었어요.
여동생이긴 하지만요.
일본이 전철역에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데가 많아서
짐들고 오르락내리락하기에는 좀 힘들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구만요.
참, 자기 글 읽는 독자들도 착하지.
이렇게 길게 울궈먹는 글을 착하게도 읽어주고…ㅋㅋ
근데 길게 쓰는데도 일부러 원고료 때문에 길게 늘여썼다는 생각은 않드니
재미나다는 뜻? ㅋ
딸 얼굴 한번 보려니, 내 목이 좀 길어지는 듯 하오.^^
관광갔다 온 것도 아닌데 더 많이 보고 온 듯.
관광갔으면 아마 매일매일 도쿄 버리고 근처 어딘가로 갔을 듯도.
문지 뒷 모습만 꼴랑 보여주고 끝이네~ 쩝~^^
ㅎㅎ 마지막에 나온 거 문지 아녜요.
문지 뒷모습은 낼 모레쯤.
일본 한번 갔다온걸 세계 일주라도 한 것처럼 우려먹는 기분이예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