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춘천에 내려갔었다.
소양호를 찾았고, 그곳에 있는 청평사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버스가 춘천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널 때쯤
바깥에는 저녁빛이 낮게 깔려있었고,
나는 그 빛이 내려앉은 춘천의 강변 풍경에 마음을 빼았기고 말았다.
그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음은 물론이다.
이타바시의 사쿠지강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주조에서 이타바시로 가는 전철 속에서 였다.
춘천에서처럼 곧바로 다음 역에서 열차를 내리진 못했다.
미리 딸과 해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날 나는 전철에서 보았던 그 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강이라기 보다 거대한 인공의 콘크리트 수조에 가까웠지만
그것을 무마시켜 주기에 충분한 것이 그 곳에 있었다.
강변의 나무들이었다.
가을은 나뭇잎에게
밑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유혹이 심한 계절이다.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 나뭇잎은
일찌감치 몸을 날려 강으로 내려가 있지만
그러나 아직 발길을 내딛지 못한 많은 나뭇잎들이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연신 깊이를 재고 있었다.
아뜩함은 때로 쉽게 발길을 내딛지 못하게 한다.
지하수 구멍이리라.
그 구멍은 지하를 더듬으며 길을 찾던 물들이
드디어 강으로 내려오는 출구이기도 하지만
아울러 풀들이 그 물에 섞인 흙을 자양분 삼아 붙잡아 둔 뒤,
바깥에 지천으로 널린 햇볕에 그 자양분을 저며
생명을 가꾸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지하의 물은 옹벽의 구멍을 통해 강으로 내려가지만
그 자리는 풀들이 생명의 고개를 드는 자리로 바뀌기도 한다.
하나는 내려가고, 하나는 고개를 드는 자리,
그 때문인지 그곳의 물은 내려오며 남긴 흔적으로
마치 그 자리로 솟구치고 있는 듯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물이 낮은 데로 임할 때 그곳에서 그 물을 받아 생명이 고개를 든다.
물이 흘러내린 흔적은 흘러내리고 있지만
알고보면 생명으로 날아오르고픈 물의 욕망이다.
흘러내린 흔적이 솟구친 흔적처럼 보인 것은
그 욕망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리라.
그래 알고보면 나무는 또다른 형태로 육화된 물일지도 모른다.
물은 항상 낮은 데로 내려가지만
그 낮은 곳에서 나무의 뿌리를 만나고
그러면 둘은 하나로 엮인다.
그렇게 하여 나무의 물관을 타고 나무의 꼭대기로 날아오른 물은
때로 여름이 되기도 하고, 때로 가을이 되기도 한다.
사쿠지 강변의 나무밑에서 나는 잠시 가을이 된 물밑에 선다.
걷다가 작은 소공원을 만나곤 했다.
커다란 공원이 사람의 품 같다면
작은 공원은 사람의 손바닥 같다.
그러니까 큰 공원에선 품에 안겨 놀고
작은 공원에선 손바닥 위에서 논다.
작은 공원의 손바닥이 벤치 하나를 그 위에 올려놓았고
산책나온 할머니 둘이 그 벤치에 앉아 무엇인가로 소일을 한다.
구름이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슬쩍 엿보고 있다.
사쿠지강에서
강은 아래로 흐르고 나무는 위로 흐른다.
또 강은 가운데로 흐르고 나무는 양옆으로 흐른다.
그러다 나무들은 팔을 뻗어 룰룰랄라 손잡고 흘러가기도 한다.
사쿠지강에서
강은 그저 물만 안고 흐르지만
위로 흐르는 나무는 나뭇잎만 안고 흐르지는 않는다.
나무는 잎사이를 조금씩 열어
하늘로부터 쏟아진 빛을 아래로 흘리면서 흐른다.
하긴 강도 물을 남김없이 끌어안고 흘러가는 것은 아니리라.
그 길에서 슬쩍슬쩍 물을 흘려
물가에 서 있는 풀과 나무들의 목을 축이고 있으리라.
나무가 손을 벌린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었다면
나무의 손에 가득 쥐어진 나뭇잎이
아래로 우수수 쏟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손을 벌려도
나무가 손에 든 나뭇잎은 아래로 쏟아지지 않았다.
나뭇잎은 가끔씩 하나 둘 손을 빠져나갔다.
나무는 손에서 나뭇잎을 하나둘 놓으면서 온가을을 보낸다.
나무가 내려놓은 가을은 강을 물들이기도 했지만
많은 수가 지상을 뒹굴다 나무 밑둥 같은 곳을 골라 한 자리에 모여있곤 했다.
강물로 간 가을은 여름이 남긴 끈적한 뒤끝을
깨끗이 씻어내고 투명한 마무리를 꿈꾸었을 것이며,
지상으로 뒹군 가을은
삶의 한철을 마치면서 시작하던 자리에 다시 서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낙엽은 모두 누워 있었지만
내겐 지상을 서성이는 듯 보이기도 했다.
햇볕이 여전히 무성한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내려와
여린 빛을 그 자리에 눕혀놓고 있었다.
산책 나온 할머니 한 분이
굽은 허리를 지팡이로 받쳐가며 공원의 벤치로 걸어간다.
공원 벤치 하나는 이미 누군가가 차지하고 누워있다.
그는 윗옷을 벗어서 상체만 덮고 있었다.
그의 상의가 궁색한 이불로 보였다.
할머니의 벤치는 비어있는 그의 옆자리 벤치이다.
가을은 햇볕의 따뜻함이 그냥 온기가 아니라
하늘이 나누어주는 체온처럼 느껴지는 시기이다.
한계절 넘쳐나던 그 체온이, 이제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흘러가는 날이다.
사쿠지강에선 강물이 흘러가고,
강가에선 가을에 물든 단풍이 흐르고,
하늘에선 구름이 흐른다.
나도 그 강변을 따라 천천히 흘러갔다.
강을 꿈꾸었지만 길을 찾지 못한 누군가가
저 위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네가 네 가는 몸을 벽에 늘어뜨린 것은
그의 길이 되어주기 위해서 였음이 분명하다.
줄을 잡고 내려온 그 누군가는 내려오면서 조심했던 것이 분명하다.
저 가는 줄이 끊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사쿠지 강변의 나무들은 철마다 계절을 강에 쏟아붓는다.
봄에는 벚꽃으로 흐드러지는 봄을 강물에 쏟아붓고,
여름에는 진초록빛 나뭇잎으로 가득채운 여름을 강물에 쏟아붓고,
가을에는 물든 단풍잎으로 넘쳐나는 가을을 강물에 쏟아붓는다.
이곳도 겨울엔 나무들이 모두 나뭇잎을 털어내는 것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렇다면 겨울엔 앙상한 빈가지를 뒤흔드는
바람 소리의 겨울이 강물로 쏟아져 들어갈 것이다.
일본에선 흔하게 고양이를 만난다.
이 날도 고양이를 만났다.
야, 근데 왜 째려보냐?
고양이는 그냥 봐도 째려보는 표정을 가진 것일까.
전 날 만난 고양이는 그렇질 않았었다.
어제는 밤에 만나고 오늘은 낮에 만나서 그런가.
늘어지게 낮잠 즐기다
카메라 들이댔더니 부시시한 눈초리를 금새 거두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뭔일인가 쳐다본다.
근데 얘는 눈의 초점이 도대체 어디로 가 있는 거야.
나를 아주 미세하게 빗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참 이상한 녀석이다.
가을색에 물든 나뭇잎 하나가
너무 요염한 자태로 난간 위에 누워있었다.
누가 그 유혹에 넘어갔을까.
아마도 바람이지 않았을까 싶다.
집의 울타리는 사람의 걸음을 막는다.
걸음이 막히면 우리의 마음도 막힌다.
마음이 막히면 세상이 메마르다.
그래서 울타리로 막힌 세상은 건조하다.
그 울타리에 걸쳐놓은 작은 화분 하나가
지나는 내게 마음을 연다.
때맞추어 작은 꽃까지 피워올린 예쁜 마음이다.
마음의 건조함이 많이 가신다.
감인 듯하다.
자신이 없는 것은 우리의 감과 색깔이 좀 다른 듯해서이다.
우리의 감은 진홍빛이 진한데
일본의 감은 아직 덜 익어서 그런 것인지
분가루를 뒤집어 쓴 느낌이다.
하지만 하도 주렁주렁 많이 달려 있어서 절로 눈길이 갔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마침 집을 나오던 집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뭐라고 말을 한다.
일본어라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는 여행자이고, 동네를 둘러보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영어로 했다.
그가 또 일본어로 뭐라고 하면서 웃음 하나 뒤에 남겨주고 길을 갔다.
가을은 서서히 온다.
쏟아지듯 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조금조금씩 우리들을 가을에 물들이며 온다.
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 하나,
아래쪽은 붉은 가을에 물들고
위쪽은 아직 여름의 추억을 어렴풋하게 붙잡고 있었다.
강변의 나무들은 거의 모두가 약간씩 강쪽으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강에 가까울수록 더더욱 강쪽으로 더 많이 몸을 숙이고 있는 듯했다.
강쪽에서 조금 멀리 자리를 잡은 나무들도
가지를 길게 뻗은 방향은 강쪽이었다.
사람들이 나무를 강쪽으로 밀어준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강물 소리에 나무의 몸이 기울었다고 생각했다.
강물 소리가 가까우면 그 소리 쪽으로 나무의 몸이 기운다.
물소리는 나무로 하여금 온몸을 귀처럼 기울이도록 만드는 자장을 가졌다.
2 thoughts on “사쿠지 강변의 가을 속을 걷다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4-2”
한편의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이네요.
때마침 라디오에서 흐르는 기타곡을 백뮤직과 함께
도쿄의 강가여행을 잘 했어요.
정말 강가의 나무가 흘러가는 환상이 보이기도 하고요..
외국은 그냥 그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여 아무 구경거리가 안되는 곳도 이국의 여행자에겐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돌아다니면 어디나 볼만한 듯. 특히 이런 강가는 마치 여기 사는 이들도 잘모르는 좋은 여행지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