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회 4개 대학 영어연극제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7-1

사실 내가 일본에 온 것은 오늘 때문이었다.
오늘 시키시민회관에서 일본의 4개 대학이 모여 연극 공연을 한다.
오늘이 이틀째이다.
이틀을 모두 관람하려고 했으나
딸은 같은 연극을 뭐하러 두번씩이나 보냐며 오늘 것만 입장권을 끊어 놓았다.
오늘은 도쿄를 벗어나 시키로 가야 한다.
설명하기가 복잡하고 내가 잊어버릴지도 모르다며
딸은 가는 방법을 아예 문서로 정리해서 프린트를 해주었다.
그것을 가장 소중하게 챙겼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1일 도쿄의 주조에서

하루 종일 써야할 입장권이다.
며칠전 딸에게 받을 때 미리 촬영해 놓았다.
이 공연은 74년째를 맞는 정말 오래된 연극제라고 한다.
영어연극제이다.
입장권 가격은 1,200엔.
요즘의 환율로 대충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는 15,000원 정도된다.
이 입장권 하나로 공연장을 들락거리며 하루 종일 관람을 하게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도쿄의 주조에서

8시 30분쯤 집을 나섰다.
딸보다 먼저 집을 나선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딸은 오늘은 자신은 12시쯤 공연장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나오는 길에 보니 빨간 우체국 차가 거리에 서 있다.
우편함을 돌아다니며 우편물을 수거하는 중인 듯했다.
차가 귀여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도쿄의 주조역에서

오늘도 시작은 주조역이다.
열차 한 대가 아카바네로 떠나고 있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두 정거장을 가서 이케부쿠로에서 바꿔타야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전철에서

이케부쿠로에서 딸이 적어준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
무사히 열차를 바꿔 탔다.
창밖의 풍경이 도쿄 도심을 벗어나는 느낌을 역력하게 해준다.
진한 흙빛의 밭을 끼고 있는 동네 풍경이 좋았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런 전철이 있다.
용산에서 시작하여 한강변을 끼고 달린 뒤
용문으로 이어지는 중앙선 전철이다.
내가 전철 가운데서 가장 좋아하는 노선이기도 하다.
딸이 적어준 내용을 들여다 보면
오늘 내가 일본에서 타고가는 전철은 토부토죠센이라 불리는가 보다.
남한강을 끼고 가는 우리의 중앙선만은 못하지만
이 노선도 바깥 풍경이 상당히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전철에서

콘크리트에 갇혀 있던 이타바시의 하천이 아니라 자연스런 하천이 보인다.
풍경이 훨씬 좋다.
콘크리트 속에 가두어 놓으면 강은 흘러도 그 호흡이 답답하다.
자연스런 하천에선 물이 제대로 숨쉬며 흐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시키역에 도착했다.
도심을 한참 벗어나길레 아담한 전철역을 기대했는데
딸이 사는 곳의 주조역보다 엄청 규모도 크고 화려하다.
역이 열차가 서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모든 상업시설의 중심 역할을 하는 듯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시키시민회관이다.
딸이 약도까지 그려주었는데도 찾느라고 고생좀 했다.
시키역에 도착한 것은 9시 30분경이었는데
시민회관에 들어선 것은 10시 15분 경이었다.
방향을 잘못잡아 두 번이나 길을 물어야 했다.
다행히 두 번째 길을 물을 때 만난 일본 청년이 아이폰을 갖고 있었다.
영어는 잘 안통하는데 청년이 아이폰을 꺼내더니 지도를 띄워서
현재 위치랑 시민회관의 위치를 짚어주었다.
Thank you를 몇 번 연발한 뒤 그 방향으로 조금 걸었더니
이제 드디어 찾았다는 느낌이 났다.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많이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심쩍어 함께 가고 있는 서너 명의 아주머니들한테
내가 시키시민회관으로 가려고 한다고 하자
이 아주머니들 아주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며
자기들도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어떻게 가냐고 해서 그곳의 연극 축제를 보러간다고 했더니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다시 어떻게 오늘 행사를 알았냐고 물어본다.
우리 딸이 이 축제에 참가하고 있다고 했더니
학교는 어디냐고 물어본다.
그러더니 자기네도 딸이 이번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며
히토츠바시 대학의 배우로 무대에 오른다고 알려주었다.
첫순서가 히토츠바시여서 아주머니들은 곧바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들은 한때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고 했다.
한국어는 하나 둘 셋 넷을 꼽는 정도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시키시민회관의 뒷모습이다.
오늘 하루 종일을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첫공연은 히토츠바시 대학과 츠다 대학이 함께 공연한 Taking Leave였다.
우리 말로 하면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기 정도가 될 듯하다.
히토츠바시는 학생수가 적어 츠다 대학과 연합을 이루어 참가한다고 한다.
7년전에 죽은 아내를 못잊어 두 개로 분열이 된 자아를 다룬 연극이었다.
연극에서는 그래서 동일 인물이 두 명으로 분리되어 나온다.
네 편의 연극 중 가장 어려웠다.
회관을 찾느라 헤매면서 기운을 소비한 때문인지
잠깐잠깐 떨어지는 고개를 어쩔 수가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연극이 시작되기 전의 공연장 객석 풍경이다.
시작이 10시라고 되어 있어
길을 헤매면서 마음이 조금 급했었는데
히토츠바시와 츠다의 첫 연극이 시작된 것은 10시 30분쯤이었다.
이른 시간 때문인지 사람이 가장 한산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딸이 12쯤 온다고 해서 첫 연극을 보고 난 뒤 바깥에 나가 두리번거렸다.
와세다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옷의 색깔 때문에 금방 구별이 되었다.
다른 대학은 사진찍는 사람이 없었는데 와세다만 공식 사진가가 따라다녔다.
딸에게 물어보았더니 사진찍던 사람은 자신들 선배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와세다는 공식, 비공식의 사진가 두 명이 있었던 셈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공연장 입구의 기둥에 붙어 있는 응원 문구들이다.
각 대학별로 하나씩 붙어 있었는데 이것은 와세다의 것이다.
영어로 적어놓은 것 중에 Lighting Changes Everything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조명이 모든 것을 바꾼다고 적은 것을 보면 조명 담당에 대한 응원문구 같다.
실제로 와세다의 무대는
뒤쪽의 조명으로 낮과 밤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 특색이었고,
그 점은 심사위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두번째 연극이다.
릿쿄대학의 출품작이었고, 제목은 Over the River and Through the Woods 였다.
우리 말로 하면 산넘고 물건너 정도가 되겠다.
대를 이어 살아온 곳을 떠나 대도시로 가려는 손자와
그 손자를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부모 세대의 모습을 코믹하게 다루었다.
자신의 엄마 아버지를 소개하며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커플이라고 하여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내게선 다른 나라로 떠나보낸 딸의 얘기로 치환이 되었다.
한편으로 나는 왜 한국을 떠나기 힘겨운 것일까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살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나라와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
자신이 사는 곳을 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뿌리가 깊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에게선 나무의 느낌이 날지도 모른다.
젊은 사람들은 떠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 자신이 뿌리내릴 또다른 세계를 찾아가는 것 뿐이다.
연극이 끝나고 딸에게
나도 널 떠나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더니, 딸은 말했다.
벌써 떠나 보냈으면서 뭘.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평생 널 담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에 가서 새롭게 뿌리를 내려도 네 삶이 든든할 거야.
연극이 전하는 메시지도 마찬가지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세번째 순서는 와세다였다.
시간은 오후 세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사진을 찍을 요량으로 객석의 뒤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첫 공연을 볼 때와 달리 객석이 거의 찼다.
한국에서까지 왔으니 말해 무엇하랴.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와세다의 작품이다.
제목은 Lend Me A Tenor 였다.
우리 말로 옮기면 테너를 빌려주세요 정도.
뮤지컬에 초대한 가수 테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었다.
가장 재미나고, 가장 섹시한 연극이었다.
딸의 얘기에 의하면 좀더 섹시하게 나가려고 하다가
관객들 충격 먹을까봐 자제했다고 한다.
마지막 작품은 게이오 대학의 Deathtrap이었다.
죽음의 덫이란 뜻이다.
한 추리 작가의 아내가 죽은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물고물리는 죽음의 게임이 무대에서 펼쳐졌다.
사실 이 연극에서 한 장면이 심히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남자 배우 둘이 진한 입맞춤을 나누었기 때문이었다.
관객들이 ‘어우’라는 소리를 합창하며 반응했다.
연극이 거의 마무리되었을 때의 시간이 저녁 7시였다.
마지막 연극 때는 아주 대놓고 자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원래 가끔 졸아야 하는데
내 앞의 관객들 몇몇은 연극을 보는 것이 가끔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에서

수상식까지 지켜보고 시키역으로 갈 때의 시간은
밤 9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역으로 가다가 강원이비인후과라는 병원의 간판을 보았다.
어제도 와세다에 갔다가 강원서점이라는 간판을 보았는데 오늘도 또 강원이다.
처음 간판에서 강원이란 글자를 보았을 때는
혹시 강원도 사람이 차린 것이 아닐까 했는데,
오늘 두 번째로 접하니까 강원이란 말이 일본에서 흔한 말인가 싶어진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일본의 시키역에서

시키역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열차가 보통과 급행이 뒤섞여 다닌다.
나는 급행을 타고 가야 빨리 간다.
딸은 친구들과 뒷풀이에 가야 한다며 집열쇠를 내게 건네고 가버렸다.
가는 동안 브로드웨이에서 왔다는 심사위원들과
같은 열차 속에 함께 있게 되었다.
상을 못받았다고 너무 슬퍼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수상작이 발표되었을 때
엄청난 환호와 함께 무대 위로 뛰어나온 학생들의 반응에는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그 학생들 뛰어나오는 것 봤어, 응?
심사위원들도 나처럼 처음 보고 신기한 것이 많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도쿄의 주조역에서

다시 주조로 돌아왔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마저 붙어가는 역이다.
나는 북쪽 출구로 나가기 때문에 내리면 곧장 출구이다.
시간은 밤 10시를 10분 남겨놓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도쿄의 주조에서

집으로 가는 길의 주조 시장도 한적하기만하다.
모든 상점이 문을 내리고 있었고 나도 오늘은 집에 가서 혼자 자야 한다.
딸에게 가급적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친구들과 뒷풀이 자리에 어울린 딸이 들어올리가 없다.
도쿄에 오던 첫날도 밤늦은 시간에 이 길을 갔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사람이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4일 도쿄의 주조에서

어제도 집으로 가다가 성냥갑만한 차를 보았는데 오늘도 또 본다.
어제는 노란색이었는데 오늘은 회색빛이다.
나중에 딸에게 농담을 한마디 했다.
내가 말야 길가다가 성냥갑만한 차를 하나봤어.
정말 성냥갑만하더라.
그거 뭐 얼마 하겠냐.
나중에 방학 때 한국올 때 그거 하나 사갖고 들어와라.
성냥갑 만하니까 사서 주머니에 넣으면 될 거야.
딸은 아, 예예, 라고 답했다.

4 thoughts on “74회 4개 대학 영어연극제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7-1

  1. 와, 하루에 연극, 그것도 이름 있는 대학들의 영어 연극 네 편을
    하루 온종일 보셨네요. 일 년치 문화행사 마치셨겠어요.^^
    와~세다 대학 무대에 문지 양이 등장한 건가요?

  2. 와세다팀의 연극무대의 뒷 배경 중에서
    파란 하늘에 별과 달이 떠있는 게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이제 동경 시리즈는 끝나는 건가요? 작별의식만 남고…^^

    1. 연극좀 더 보셔야 하는데요. ㅋㅋ
      제가 끈질겨서 작별에도 일주일은 까 먹을 거 같아요.
      지리산에 가 있는데 부산도 막 그리워지더라구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