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세계에서도 종종 경연이 펼쳐진다.
뽑히는 사람이 있고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문학은 신춘문예나 문학잡지의 공모가 그런 자리가 되고
미술은 국전 같은 것이 그러하며
음악은 각종 콩쿠르에서 그런 경연의 무대가 마련되곤 한다.
74회 4개 대학 영어연극제도 그런 경연의 무대였다.
경연의 무대에선 항상 승자가 있게 마련이고,
승자의 바로 곁에선 탈락자가 생긴다
승자가 기뻐할 때, 탈락자의 몫은 슬픔이다.
때문에 수상식의 자리에선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나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수상식 자리까지 함께 했다.
네 개의 공연이 모두 끝난 것은 저녁 7시쯤.
하지만 주변의 어둠으로 보면 밤 7시라고 해도 어울릴 것 같았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대부분 자리를 떴고
학생들은 여전히 뒷정리에 분주했다.
수상식 준비에는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공연장에선 수상식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가진 못하게 했다.
대신 준비하는 모습을 로비에 있는 모니터로 보여주었다.
드디어 수상 준비가 어느 정도 완료되었는가 보다.
학생들이 공연장으로 모두 들어오기 시작했다.
딸의 모습도 보였다.
하루 종일 관람객들이 4개의 연극과 함께 했던 객석은
이제 학생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한 소리들도 함께 채워졌다.
왁자지껄한 소리들 사이로 딸의 웃음도 보였다.
각 대학에서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상영했다.
다들 자신들 대학이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영상의 이 학생은 와세다 영어회의 회장인 케이스케 만지인 것 같다.
와세다에서 이 행사에 참여하는 동아리는 연극반이 아니라
영어회, 그러니까 Weseda English Speaking Society이다.
줄여서 WESS라고 부른다.
영어 공부하는 동아리인 셈이다.
각 대학별로 분위기를 돋우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 여학생이었다.
하루 종일 로비의 출입구에서 안내를 맡아 낯이 익었던 학생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냥 회관 건물의 관리 직원인줄 알았다.
다들 무대 앞에서 등장했는데
와세다는 아예 객석에서부터
학생들의 환호를 등에 업고 무대로 나섰다.
수상식 바로 직전의 이 무대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난다’였다.
앞에서 난다를 외치면 학생들이 그 말을 모두 함께 반복하며 돌려주었다.
정말 다들 날듯한 분위기였다.
나중에 딸에게 물었더니
그 난다라는 말은 그대로 옮기면 도저히 이해못할 말이 되어버린다고 했다.
그건 액면 그대로 보면 “너네가 이것을 알어” 정도가 되는데
실제로는 그런 뜻과 관계없이
서로 호응을 주고 받는 독특한 말로 사용이 될 때가 있다고 했다.
어쨌거나 ‘난다’에 실어 주고받는 젊은 열기는 뜨거웠다.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엠마 하워드이다.
사실 아침에 연극보러 갈 때 타고간 전철에서 내 앞에 앉은 여자였다.
앗, 저 여자는 아침에 전철에서 봤던 여자잖아.
저녁에 전철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또 같은 전철을 타고 갔다.
심사위원들은 각 연극에 대해
총평과 연기, 무대 미술 등으로 나누어 각각 평을 했다.
평은 영어로 이루어졌다.
나올 때마다 일본어로 무슨 말인가를 한 마디 했는데
그때마다 학생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딸에게 물었더니 수고했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세번째 나온 심사위원의 일본어는 좀더 길었는데
딸이 전해준 얘기에 의하면
이렇게 환호가 뜨거운 것을 보니
아무래도 수고를 다하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였다고 한다.
상은 모두 네 개였다.
연기 대상이 있었고, 무대 미술상이 있었으며,
히토츠바시와 츠다, 그리고 릿쿄 대학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영어연극제인지라 영어 대상이 있었다.
영어 대상의 주인공은 와세다였다.
와세다는 평이한 영어를 사용하면서도 많은 웃음을 선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상의 기쁨은 히토츠바시와 츠다 대학에 돌아갔다.
수상작 발표는 음악이 대신했다.
수상작 발표의 순간, 무대로 음악이 흘러나왔고,
그 순간 히토츠바시와 츠다의 학생들이 물밀듯이 무대로 쏟아져 나갔다.
올해 수상의 기쁨을
히토츠바시와 츠다에 넘겨준 와세다는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다.
와세다는 지난 해 우승팀이다.
우는 여학생도 보았다.
내가 조용히 말해주었다.
Don’t be so sad.
The winner is always Waseda for me!
학생이 듣지는 못한 것 같았다.
8 thoughts on “수상의 기쁨, 그리고 슬픔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7-3”
상에 따라 부상이 차이가 있었나요?
하나도 못 탄 전통의 라이벌 게이오도 있는데요, 뭘.
심사평을 듣고 있는데 이번 수상팀은 히토츠바시와 츠다구나하는 생각이 딱 들더구만요.
연기상은 좀 의외였어요.
연기상 받은 여학생 감격의 눈물 많이 흘렸다는.
게이오, 넘 불쌍했다는.
와세다 아덜이 가장 격정인 듯 싶기도 했구요.
부상으로 주는 트로피는 다들 다르더군요.
유난스레 핀조명이 따님 얼굴에 내린 듯 촛점이 잘 맞네요.
실패를 보아야 성공의 단맛을 아는 것도 저 때가 좋겠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할 듯 합니다.
사진 찍는 사람이 그 아이 아버지이다 보니.. ㅋㅋ
저녁 7시와 밤 7시는 월매나 다른겨? ㅋ
남쪽 지역들은 아침이 먼저 오고 밤도 빨리 오더라.
이번 여행에서도 아침이 빨리 왔는데 서울은 아침이 늦게 오네.
이제 여행이 점점 끝나가는 느낌이네.
물론 돌아오는 날이 좀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야.^^
형용사가 다르잖어.
저녁 7시라고 하면 좀 밝은 느낌인데
밤 7시라고 하면 어두운 느낌이지.
우리에게 7시는 저녁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일본에서 가을의 7시는 밤이라는 말을 붙여야할 것 같다는 얘기지.
이번 여행 엄청 긴 듯.
마지막 두 문장의 영어가 가슴 뭉클합니다.^^
원래는 와세다 학생들 다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쳐주고 싶었는데… 딸이 아빠가 튀는 행동하는 걸 워낙 싫어해서 꾹 참을 수밖에 없었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