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바네 자연관찰공원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8-2

니시가오카와 아카바네의 서쪽 동네에서
가을 풍경을 둘러보던 내 걸음이 다다른 곳 중의 하나는
그곳의 자연관찰공원이었다.
사실 나는 니시가오카와 아카바네를 돌아보면서도
그곳이 니시가오카와 아카바네인줄도 몰랐다.
모두가 한문으로 되어 있어
그것을 일본어로 어떻게 읽는 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카바네 자연관찰공원의 경우에도
아카바네를 뜻하는 한자가 赤羽라고 되어 있어
나는 그것을 그냥 적우라고 읽고 있었다.
‘붉은 날개’라고 뜻을 짐작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이상하게 그 공원은 안내판의 어디에도 영어를 나란히 써놓질 않아
일본식으로는 어떻게 읽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조나 아카바네는 전형적인 일본의 주거 지역인지
안내판에서 영어를 함께 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하긴 평범한 주거 지역을 찾아올 관광객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난 이상하게 그러한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곳의 풍경이 더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아카바네 공원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엄마와 아이였다.
자연관찰공원이어서 그런지 잔디밭보다는 그냥 방치된 듯 보이는 풀밭이 많았다.
아이가 넘어져도 크게 다칠 것 같지 않은 풀밭이었다.
아이는 흙이 그대로 내비치는 풀밭을 뛰어다니고
엄마는 그런 아이를 보며 아이가 커가는 기쁨이
지금 자신의 즐거움이란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아이는 놀라운 존재이다.
걷고 뛰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선물한다.
아이란 그런 존재다.
걷고 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기억을 잃지 않으면
아이의 무엇에 대해서도 평생 기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아이가 준 어릴 적의 행복을 잊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길은 항상 사람들의 것이다.
그래서 길의 낙엽은 모두 길에 있지 못하고 길가로 밀려난다.
원래는 길의 몫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길 또한 낙엽의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몫의 선은 낙엽들이 긋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길의 몫을 자신들 것으로 챙기면서 그 선을 긋는다.
사람들이 자기 몫을 챙긴 공원길에서 낙엽들이 길가로 몰려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이 단풍잎의 가을은 두 번 밀려들었나 보다.
첫번째 가을은 엷은 노란빛으로 밀려들고
두번째 가을은 나뭇잎을 불태울듯 붉은 빛으로 밀려들었나 보다.
밀려드는 붉은 가을에 아뜩하게 취해
결국 노란 가을이 제 가을을 견디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나무에 온 가을의 색들은 색이 달라도 반목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색들이 잎들의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함께 어울려 춤춘다.
사람들의 색은 종종 저만 튈려고 할 때가 많다.
한 나무에서 색들이 어울려 함께 하고 있었고, 그 어울림은 아름다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공원 안에서 일본의 전통 가옥을 만났다.
우리 말로 하면 마츠자와 전통 농가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 집에 살던 사람의 성이 마츠자와였는가 보다.
영어로 된 설명이 없었다.
에도 시대의 건물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역사로 가늠해보면
에도 시대는 조선 시대 중후기쯤이 된다.
그러니까 이 집은 조선 후기쯤에
바다 건너 일본에서 농부가 살던 전형적인 가옥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마츠자와 고택의 부엌이다.
우리의 전통 가옥에서는 부엌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는데
이 전통 가옥에서는 그것이 하나로 붙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껍질을 벗겨 말리고 있는 감이 문간에 걸려 있었다.
감은 떫은 맛의 겉옷을 한겹걸치고 있다.
그 때문에 옷을 입은 채로는 사람들의 입을 유혹하지 못한다.
그 겉옷을 벗고 속의 달콤함으로 유혹해야
비로소 사람들의 입을 가까이 끌어들일 수 있다.
겉옷을 벗고 속의 달콤함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그것을 일러
우리는 곳감이라고 부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곳감이 벗어놓은 겉옷, 바로 감껍질이다.
두 개의 바구니에서 말리고 있었다.
감껍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다.
깎아놓은 감은 모양이 울퉁불퉁했지만
껍질을 보니 아주 정교하도록 얇게 깎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쨋거나 감은 한번 겉옷을 벗으면 다시는 그것을 입을 수가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처마밑에서 올려다보니
볏집을 층층으로 쌓아올린 지붕의 두께가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의 초가집은 처마끝의 볏집이 들쑥날쑥한데
좌우지간 일본 사람들은 그런 들고나는 변화는 참지를 못하는가 보다.
처마끝의 볏집들이 마치 면도라도 해놓은 듯이 가지런했다.
한국과 일본이 여러모로 다르긴 다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마츠자와 고택의 마당 한켠에 있는 텃밭 위에서 이런 것을 보았다.
영원한 사랑을 기약하며 걸어놓았던 옛풍습이었을까?
알 수가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공원의 한켠에 연못이 있다.
연못은 철조망을 높게 쳐놓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철조망 덕분인지 오리들은 안심하고 노는 듯했다.
야, 갇혀서 노는데 안심이 되냐?
하긴 우리도 그렇다.
담쌓고 그 안으로 갇혀야 안심이 되곤 하더라.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단풍든 나무와 그 위의 흐린 하늘이
자신의 모습을 연못 속으로 내려 반영의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풍경이 좋아
철조망 사이를 비집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철조망 위로 카메라를 높이 치켜들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나던 한 일본 아주머니가 뭐라고 말을 건넨다.
일본어를 못한다고 했더니
어디서 왔냐고 영어로 물어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고 영어를 할 줄 아냐고 했더니 조금 한다고 했다.
이 공원의 이름이 뭐냐고 했더니 Akabane Natural Park이라고 한다.
응, 아까봤네 공원?
난 오늘 첨 봤는데.
일본에 와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는
젊은 사람이나 중고생들이 영어를 잘할 것 같지만
영어가 통한 것은 죄다 아줌마들이었다는 점이다.
담에 어디가면 아줌마들에게 뭘 물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숲속의 화가.
와세다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나이든 사람들을 만났는데 여기서도 또 본다.
한적한 공원의 계단 중간쯤에 앉아 숲속 풍경을 도화지에 담고 있었다.
어떤 가을 풍경이 계단을 걸어내려와
그의 도화지에 담기고 있는지 많이 궁금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아마도 원래는 텅비어있을 공터에
낙엽들이 모여 가을 모임을 갖고 있었다.
매년 가을 어김없이 갖는 정기 모임이리라.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공원 내에 취사시설이 있었다.
불을 피워 음식 같은 것을 해먹을 수 있다.
지금은 한 아주머니가 아궁이 하나를 고른 뒤 그곳에서 불을 피우는 중이다.
데워먹는 음식을 가져와서 즐기다가 갈 수가 있구나.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숲으로 몰려들었다.
원래는 할머니 두 분만 앉아 있었다.
그때는 저물어가는 계절의 느낌이 완연하게 나더니
아이들이 몰려드니까 갑자기 숲의 가을이 생기발랄해진다.
아이들은 가을 분위기를 정반대로 채색해 버리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어린이의 힘은 정말 놀랍다.
나이들면 가을 분위기에 나이가 묻혀버리고 마는데
아이들은 어디에 있으나 자신들 분위기로 그곳을 물들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11월 15일 도쿄의 아카바네에서

나오다가 잔디밭 위에서 이상하게 생긴 것을 보았다.
딱 엉덩이 높이에 걸치기 좋게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그냥 의자인가 했다.
그런데 아궁이처럼 밑이 뚫려있다.
추울 때 불피우고 온돌삼아 앉아 있을 수 있는 온돌 의자인가?
속에 불을 피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인가 궁금해하며 아카바네 공원을 빠져나갔다.

12 thoughts on “아카바네 자연관찰공원 – 9일간의 도쿄 여행 Day 8-2

  1. 동워니님, 일본 여행중이시군요.
    글과 사진이 참 맛깔스럽게 찰떡궁합입니다.

    제 빈집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이웃들이 계셔서 무지 행복하구요.
    훈훈한 인연, 이어가요.^^

  2. 나도 감껍질은 뭐에 쓸까 싶었는데 우리도 감껍질 깎아서 말려볼까 싶네.^^

    공원에 저런 취사시설 갖춰놓고 잘 쓰면 좋겠다.
    맨 아래 사진은 뭐에 쓰는 물건인고~ 궁금해지네.
    딸에게 물어보시게나.^^

    1. 딸이 그런 걸 알겠나.
      동네는 별로 돌아다니지도 않는거 같던데.
      아무래도 보는 건 친구들과 멀리 놀러가서 보는게 많겠지.
      용도가 궁금한 것이 여럿 보이더라.
      그런 거 알아가는 것도 해외여행의 재미일 듯.

    2. 다음해에는 꼭 그렇게 해 보세요.

      산에 가시면 산감도 있는데 이놈은 참 작아서 먹기가 거시기 해요
      요놈을 따다가 그냥 몇 등분 하시던가, 아니면 깍아서 몇 등분하시고
      껍질과 함께 대나무 광주리에 담아서 그늘진 높은 곳에 놓아두세요
      안 그럼 들고양이들이나 쥐!가 다 주워 먹어요.

    3. 하동갔을 때 따지 않고 버려둔 감이 보여서
      저건 왜 따질 않냐고 했더니 작아서 그렇다더군요.
      우리 보기에는 꽤 커보였는데 거기선 작은 축에 속하는가 봐요.
      친구가 시골에 마련한 집터에 감나무 심는다고 했으니
      거기 감열리길 기다려 봐야 겠어요.

  3. 마지막은 제 추측에 화로같은 것을 안에 넣고 무릎에 담요 같은 것을 덮어
    아래 부분을 따뜻하게 해서 앉아 책을 읽거나 풍경을 즐기라는 것이 아닐런지…

    저기 감껌질이 전번에 말씀드린 ‘감또개’라는 것과 같이 말려
    겨울에 간식거리로 먹었었습니다. 쪼개진 감의 쫀득한 맛과
    감껍질의 약간 질기고 톡톡 끊어지는 맛이 일품입니다.

    1. 감껍질이 떫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리면 그렇지 않은가 보네요. 이번에 하동 내려갔을 때 보니 벗긴 감껍질은 모두 거름으로 쓰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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