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그러니까 2004년 12월 17일, 나는 순천에 있었다.
그 전날, 나는 서울역에서 순천행 열차편을 알아보다가
호남 지방으로 가는 열차는 이제 용산역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용산역에서 11시 열차에 몸을 실은 뒤
다음날 순천에 도착한 것은 새벽 4시였다.
나는 순천만에서 무려 세 시간여를 추위 속에 덜덜 떨며 동이 트길 기다렸다.
덕분에 새벽의 순천만을 마음껏 호흡할 수 있었다.
작은 포구에선 밤새 등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등불 밑의 의자에선 누군가 남기고간 궁둥이의 체온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대대포구, 배를 탈 수 있는 작은 포구이다)
새벽은 하늘에서 빛으로 오고
또 뻘의 물길을 따라 하늘로 간다.
그리하여 수평선에서 하늘과 뭍의 새벽이 매일매일 만난다.
만남은 설레는 것이다.
새벽이 설레는 것은 그 매일매일의 만남 때문이다.
넓은 뻘밭의 안녕을 궁금해하며 태양이 산너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바다엔 길이 없다.
뻘에도 길이 없다.
그곳에선 밀고 가면 길이 된다는 것을
배와 물길이 모두 알고 있다.
새벽에 나가 조개를 한바구니 캐어온 할머니는
흙묻은 도구를 물속에서 흔들었다.
햇볕이 부서졌다.
물이 아니라 새벽빛으로 헹구는 것이었다.
평생을 달리지 않으면 설 수 없었던 타이어는
뻘 속에 발을 디딘 연후에 드디어 제자리에서 서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 그곳으로 하루에 한번 밀물이 찾아들어 바지가랑이를 간지럽히다 돌아간다.
밀물에 대한 기다림이 타이어의 일과가 되었다.
그녀는 매일 그렇게 제 삶을 밀고 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마다 먼 발치의 파도 소리가 그를 불러내는 것이리라.
멀찌감치 있던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도 낚시했구나.
젊은 듯 보이는 아낙이 이렇게 답했다.
-낙지 일곱 마리 잡았어요.
다시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재주도 좋다.
처음에는 낚시했구나로 들었는데 혹 낙지했구나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어보지 않았다.
어느 말이나 그냥 그 자리에서 들어두는 것 만으로도 좋았다.
나무가 말했다.
겨울이 왔다고 쓸쓸해 하지마.
하늘이 뼈속까지 스며들어 가득차잖아.
겨울이 되면 그렇게 가슴 한가득 하늘이 있어.
지상의 일그러진 바퀴는
바람의 호흡이 그립다.
아마도 매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새는 한번의 날개짓으로 하늘과 지상을 동시에 장악했다.
뻘에는 무수한 생명이 산다.
그곳에 물이 고이면
그때부터 하늘이 내려와 산다.
순천항의 저녁 채색은 푸근하다.
아침에 뻘의 안녕을 궁금해 하며 솟아올랐던 태양은
저녁엔 물결 위로 긴 꼬리를 끌며 하루를 마감했다.
태양이 넘어간 하늘엔
그 빛에 물든 구름이 서녘으로 준 눈길을 금방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One thought on “순천, 순천만, 순천 사람들”
사진과 어울리는 글이…
잔잔한 여운을 줍니다.
감성이 풍부한 분 같네요.
혹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