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은 그의 시 「물소리를 꿈꾸다」에서
“번데기로 살 수 있다면/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셋집으로 버드나무를 선택한 것은
“한겨울에도, 뿌리 끝에서 우듬지 끝까지/줄기차게 오르내리는 물소리”를 듣기 위해서이다.
물소리는 그에게 곧 생명의 소리이다.
가을 깊숙이 들어가면서 한해 동안 가꾸어온 생명체를 모두 털어내고 나면
겨울은 생명이 모두 그 숨을 멎은 듯한 정지된 계절이 된다.
물론 우리는 대지의 아래쪽에서 생명의 분주함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분주함을 실감하기엔 겨울의 살풍경이 가로막는 시선의 장벽이 너무 두텁다.
시인은 바로 그런 계절을 봄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아니라,
생명의 소리, 즉 물소리로 넘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에게 물소리는 단순히 물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물리적 음향이 아니라
고치 속의 애벌레가 겨우내 갇힌 그 작은 공간 속에서
날개를 키울 수 있도록 삶을 부추기는 잉태의 소리이다.
그 물소리 때문에
“고치”는 “올 올을 아쟁처럼 켜고” 물”소리를 숨차게 쟁이며” 겨울을 난다.
가끔 우리의 삶이 아내나 남편, 혹은 아이들에게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시인의 권고에 따라 물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볼 일이다.
우리의 삶도 종종 마치 겨울 풍경처럼 어제와 오늘을 같이하며 무료하게 흘러갈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겉의 아래쪽으로 마치 겨울 대지의 속깊은 곳을 흐르던 물처럼
일상의 생명을 부여잡고 흘러가는 또다른 물의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이 생명을 유지하고 날개를 가꾸어낸다.
그래서 알고 보면 우리가 탓하고 답답해 하는 일상이 사실은
그 속에 잉태의 신비를 내재하고 있다.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어 좁고 불편해도
물소리에 기울일 수 있는 귀만 있다면
그곳에서 “눈부신 푸른 하늘”을 “맘껏 날아다”닐 날개를 엮을 수 있다.
삶이란 그런 거다.
하늘을 날면 그런대로 좋고,
삶에 갇혔을 땐 물의 노래를 들으면 된다.
2 thoughts on “물의 노래 – 이정록의 시 「물소리를 꿈꾸다」”
그 요리들 정말 맛있겠던데요.
가끔 정말이지 권태로울정도로 무료할때가 있어요.
그럴땐 뭔가 즐거움을 줄수있는 일을 찾기위해 책을 읽어보기도하고 영화를 보기도하고 색다른 요리를 찾아보기도하죠.
저도 물의 소리를 들을수있는 귀를 가지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