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의 악양에 사는 시인 박남준의 집에 놀러갔다.
문앞에 얇은 겉옷을 벗어버린 감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겉옷은 시인이 직접 벗겨주었다고 했다.
감들은 말라갈 것이다.
몸안에 챙겨두었던 수분을 조금조금씩
목이 마를 때마다 시인의 집앞을 기웃거리는 빛에게 내주며.
제가 가진 수분을 거지반 다 내놓았을 때쯤
감은 맛난 곶감이 되어있을 것이다.
옷을 벗고, 안에 챙겨놓은 수분마저 모두 다 내놓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속이 텅 빌 것 같은데
감은 그때쯤 곶감의 맛을 얻는다.
시인이 속을 잘 비운,
그러니까 맛이 잘든 곶감 다섯 개를 내주었다.
분명 내온 것은 곶감이었는데
꽃잎 다섯 장을 가진 꽃이 탁자 위에 피어 있었다.
시인이 감처럼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지리산 자락, 악양의 동매리에서
꽃이 되어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비우면
우리가 텅비는 것이 아니라
맛이 되고, 또 꽃이 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 향기 맡으러 언제 또 내려가볼 생각이다.
12 thoughts on “시인의 감 – 시인 박남준의 집에서”
선한 빛과 바람과 맑은 공기가 빚어낸 곶감,
그 자연의 손길을 어루만졌을 시인의 마음이 읽어집니다.
감처럼 비우고 자연이 되어 살고 있는 시인과의 하루,
동원님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냥 시인에개도 시인을 읽기 위해 서울에서 먼여정을 마다않고 내려오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제 위안을 삼고는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기는 합니다. ^^
동원 님 정말 감사합니다. 사진 보내 주시고…
아 박남준 형이 이렇게 살고 있구나 알게 해 주셔서…
쑥대머리- 그것을 현대적으로 잘 부르는 형…
이규배 시인 사진 중에 하나가 아주 마음에 들더라구요.
시를 쓰는 시인들은 많이 봤는데 시를 살고 있는 시인은 처음 보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언제 한번 같이 내려가자구요.
주렁주렁 걸려있는 감이 꾸덕꾸덕 말라가면 맛있는 곶감이 되는 거군요.
창가에 걸린 감이나 정갈해 보이는 찻잔과 함께 단정하게 내온 꽃곶감으로 봐서
박남준, 이 이는 시보다 이런 삶을 더 즐길 것 같은데요.
제일 좋았던 건 차만드는 과정에 대한 얘기였는데 촬영해놓고 싶더라구요.
보통 농촌에서도 생태적으로 살기는 어려운데 완전히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것 같았어요. 휴지도 쓰지 않고 물수건을 내주더라구요.
이제서야 곶감 얘기가 나오는군요!
지금 사는 고향집에는 50년생 감나무가 5그루가 있고 신참인 대감나무가 한그루
마당 주위를 빙둘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없이 감을 먹었구요. 추억도 그만큼…
곶감 꽃이 피었는데 진짜 감꽃처럼 6개가 나왔으면 금상첨화가 되었을 듯 합니다.
사람이 다섯이었어요.
사람들이 모두 꽃잎 한장씩들 된 셈이었죠.
원래 하나는 시인의 몫 같았는데 너무 맛있어서 그냥 주머니 속에 슬쩍 했다는. ㅋㅋ
두문불출 보다는 두주불사가 낫고 그 보다는 동분서주가 나은 듯합니다.
새해에도 열심히 작업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동분서주하다가 나중에 남북질주하고 싶네요. ^^
깡통님도 좋은 작품으로 새해를 활짝 여시길요.
요즘 부러버요.
날개를 쫙 펴시고 훨훨
그 모습이요.
일단 윤여사님 모시고 부산 기행부터 나서라니까요.
아는 사람 트위터 들어갔더니 KTX인가 무엇인가 때문에 요즘은 부산이 오산보다 더 가깝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