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읍의 아침 풍경 – 6일간의 설여행 Day 3-1

여행 3일째, 아침이 밝았다. 아침은 햇반과 컵라면으로 떼웠다. 물이 뜨겁질 않아 밥알이 입안에서 굴렀고, 라면의 면발도 버석거리는 건조함을 금방 누그러뜨리질 않았다. 그러나 여행의 들뜬 마음은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내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쳤다.
그녀가 짐을 챙기면서 나보고 바깥에 나가 동네 한바퀴 둘러보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이미 챙겨놓은 짐 하나를 들고 내려와 차에 싣고 난 뒤 눈앞의 골목길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고, 그 다음엔 다시 올라가 그동안 챙긴 트렁크를 다시 갖고 내려와 차에 실었다. 여전히 그녀는 준비할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진도읍 풍경이다.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군청이 나온다. 내려가는 듯 보이지만 올라가는 길이다. 버스 정류장은 앞으로 보이는 만큼 등 뒤의 반대편으로 내려가야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설날인 데다가 아침 이른 시간이라 장사하는 곳은 눈에 띄지 않았다. 문을 연 곳은 설날 선물을 파는 일반 상점들 뿐이었다. 가게 앞에 선물 상자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포장마차형 술집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바퀴 두 개로 차 모양을 만들어놓은 특이함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창문에 쓰인 참숯구이를 참구이숯으로 읽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느 집 마당의 나무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너도 설쇠러 왔냐?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어느 집의 담이다. 담을 반으로 갈라 아래쪽은 시멘트의 우둘투둘한 문양을 그대로 살렸고, 위쪽은 매끄럽게 페인트칠을 하여 맵시있게 정리를 했다. 같은 담이지만 경계를 어떻게 넘느냐에 따라 길이 달라진 담쟁이가 담을 덮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또다른 담에선 열매 하나가 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열매의 가지가 고개를 세우진 않는다. 어떤 열매를 고개를 빳빳이 세운 가지끝에서 익고, 어떤 열매는 줄을 타듯 줄기를 타고 아래로 향한다. 그래도 익어 열매가 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높고 편한 곳으로만 치닫는 것이 삶은 아닐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길거리를 걷다 전봇대를 올려다 본다.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다. 아까 골목에서 봤던 그 새니? 아까도 딴전이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제 모텔에서 나왔나 보다. 나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 방향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그녀를 만나 운림산방이란 곳으로 차를 몰았다. 어제 저녁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곁에 함께 한 손님들로부터 풍경이 좋으니 한번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던 곳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운림산방으로 가는 중에 그늘이 아직 눈을 그대로 간직해둔 산자락을 보았다. 논둑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야 했다. 아침 안개가 풀에 엉겨붙어 곱게 얼어있었다. 마른 풀들에 얼어붙은 서리는 풀들에게 잠시 하얀 꽃선물을 안긴다.
살펴보다보니 얼어붙은 풀 하나가 눈밭 위에 누워있다. 풀의 윤곽을 따라 눈이 살짝 녹아 있었다. 마른 풀에 무슨 체온이 있나 싶은데 맞대고 부비면 따뜻함이 도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논둑길을 걸어나오다 다시 또 봄까치꽃을 보았다. 진도에 와서 벌써 세 번째이다. 원래 봄까치꽃은 무리지어 핀다. 항상 크게 확대하여 꽃 하나를 찍었는데 이번에는 무리 전체를 찍었다. 꽃에 엉겨붙은 서리가 아직 녹지를 않아 히끗히끗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엉겁결에 운림산방을 지나쳤다. 그랬더니 진도 아리랑 노래비가 나타난다. 그 뒤로 의자들이 숲을 뒤로 하고 나란히 놓여있다. 이곳에는 볼 것이 많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운림산방이란 경치좋은 화실이 있고, 그 옆에는 또 쌍계사란 절이 있다. 바로 앞은 사천일제라는 저수지이고, 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첨찰산이다. 둘러본 뒤 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 시간이 평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도 눈에 띄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3일 전남 진도에서

바로 옆 길가의 묘소 앞에선 설날 아침 차례를 드리고 일찍 집을 나선 사람들이 성묘를 하고 있었다. 훈훈해 보인다. 난 설날 아침을 멀리 남쪽으로 내려와 여행으로 떠돌고 있지만 여전히 설날을 설날로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인가를 지켜가는 사람들은 고맙다. 지켜가는 데는 세월이 필요하고 세월은 희생과 인내를 부르며 그 희생과 인내 속에 사람들이 지켜가는 것이 숙성된다. 아마도 전통이란 세월로 숙성시킨 어떤 형식일 것이다. 숙성된 것에선 남다른 맛이 난다.
난 지키기 보다 버리는 편이다. 김치도 숙성된 김치보다 갓담가서 배추의 맛이 날이 서 있는 햇김치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난 잘 숙성된 김치의 맛이 남다르다는 것은 안다. 나는 숙성의 맛을 버리고 떠났지만 설의 맛을 숙성시켜 가는 사람들의 삶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도의 아침 나절에 길가의 한 산소에서 부지런한 사람들이 머리를 숙여 성묘를 하며 설날을 숙성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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