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세방 낙조전망대 길가에 차를 세운 그녀는 차 속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휴식을 취했다. 세방리란 마을 이름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에게서 한 방도 아니고 두 방도 아니고 세 방이래라는 농담을 부르며 졸지에 세 방이나 얻어맞을 뻔 했지만 세방이란 마을 이름이 원래 가리키는 것은 방안처럼 생긴 조그마한 동네이다. 세자는 가늘세(細)인데 작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바닷가였지만 바람이 자고 있었고, 게다가 따뜻한 남도의 햇볕이 내리쬐는 늦은 오후의 시간은 차 속에서 가벼운 잠을 청하기에 아주 좋은 때였다. 정말 마을 이름처럼 어디에 차를 세워도 방안처럼 따뜻했을 듯 싶다.
그녀가 차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사이에 나는 길을 따라 가학리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가학리란 이름도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상한 연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름이다. 물론 그건 아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학을 생각하시라. 실제로 해변을 따라 날아가는 학을 본 듯도 하고…
갈대를 만났다. 바람은 없었지만 바람에 휜 갈대의 허리는 유연하게 곡선을 그린다. 지금이야 평온하지만 아마 수도 없이 허리를 굽혔다 펴며 바람을 등에 업었다 내려놓았을 것이다. 바람은 사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는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들이받아 이마가 까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반면 갈대는 쉽게 그 등에 업혀 무등타기 놀이를 할 수 있다. 그것도 줄줄이 서 있는 갈대를 만나면 더더욱 신이 난다. 등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나갈 때의 그 재미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갈대는 허리가 휘어지겠지만. 바람자는 늦은 오후, 햇볕을 마음껏 받으며 갈대가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밭에서 푸른 빛깔의 봄동이 흰빛의 겨울을 밀어부치고 있었다. 한때 밭을 모두 뒤덮었을 겨울눈이 봄동의 공세에 밀려 퇴각하고 있는 형세가 역력했다. 남쪽에서 겨울을 밀어내는 봄동의 덕택에 봄이 오고 있는 거구나.
밭을 푸른 색으로 칠하고 있는 또다른 것이 하나 있었고, 그것은 파였다. 그 파밭의 고랑이에 고양이 한 마리가 엎드려 있다. 먹을 게 많은가 보다. 몸집이 통통한 것을 보니. 그렇다고 파를 파먹고 사는 건 아니겠지.
우리는 모두 너나 없이 상대의 속을 궁금해 한다. 배추 하나가 그 심정을 다 안다는 듯이 속을 내보였다. 속이 노랗다. 보기만 해도 맛나 보이는 속이다.
우리는 또 때될 때까지 속을 드러내지 않고 비밀로 잘 간직해두려 한다. 남해의 진도 배추도 그렇다. 노랗게 익은 맛난 속을 잘 싸두었다가 때되었을 때 드디어 풀어놓는다. 겨울의 바람을 이겨내느라 겉은 좀 후줄근해도 겉으로 남해 배추를 판단해선 안된다. 겉과 달리 속은 진국이라는 말은 알고 보니 남해 배추를 일컫는 말이다.
햇볕이 좋은 밭에선 눈이 완전히 한쪽으로 몰려 도망가고 있었다. 봄을 가져오는 것은 남쪽의 훈풍이 아니라 겨울을 이겨낸 남쪽의 봄동과 배추이다. 봄은 움추리고 숨죽이며 기다려서 맞는 계절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이 그 생명력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그들의 자리로 불러들여 맞는 계절이다.
진도에 들어오다 봄까치꽃을 한번 본 뒤로 자꾸만 그 꽃을 찾아 여기저기 밭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또다시 그 꽃을 보게 되었다. 이미 꽃을 찾아 카메라를 둘러메고 이곳을 들어온 사람이 있는게 분명했다. 꽃이 있는 곳에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먼저 사진을 찍고 간 누군가의 발자국 흔적 위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하긴 숲길을 갈 때 꽃을 찾지 않고 발자국의 흔적만 살필 때가 곧잘 있다. 풀이 몸을 눕힌 사람의 흔적 뒤에 꽃이 있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꽃을 찾아 먼저 숲을 헤맨 누군가와 눈을 맞추었을 꽃이 꼭 그 흔적의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꽃을 먼저 보고 흔적은 나중에 보았다.
길을 벗어나 작은 숲쪽으로 들어와 버렸기 때문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자고 있니? 아니, 일어나 있었는데. 그랬구나. 난 흰색 차가 지나가길래 우리 차인 줄 알고 전화를 했어. 내가 지금 길에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서 길에선 보이질 않거든.
나는 그녀에게 오다보면 왼쪽으로 길을 벗어나 멀리 안쪽으로 집이 한채 보일 것이고 그 집으로 들어오는 길을 따라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오른쪽이라고 말해야 할 것은 왼쪽으로 일러주고 말았다. 나는 항상 좌우를 헷갈리곤 한다. 그녀는 집을 지나쳐 내려갔다가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와야 했다.
낙조를 찍기에 좋은 장소를 찾아냈지만 바람이 쌀쌀했다. 그녀가 바람을 피해 소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곧바로 아늑함이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나도 곁에 자리해 보았다. 거칠 것 없는 바람 앞에서 바닷가에 해풍을 막는다고 심어놓은 나무들이 무슨 큰 위력이 있을까 싶었는데 숲의 품에 안기고 보니 그 위력이 실감이 되었다.
낙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배가 한 척 들어온다. 낙조를 저 배가 싣고 오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덩그러니 비어있는 바다에 나타난 배가 반가웠다.
배는 저녁해가 섬에서부터 뭍까지 하얗게 깔아놓은 빛의 주단을 옆으로 뚝 자르며 지나갔다.
그녀는 바닷 바람이 너무 춥다며 차에 가서 쉬고 있겠다고 했다. 그녀를 보내고 나 혼자 낙조를 기다렸다.
배가 자르고 지나간 자리를 보니 빛의 주단이 그 부분만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많은 빛이 배에 묻어갔나 보다.
기다리는 동안 바위의 여기를 살펴보다 바위에 뿌리내리고 한철을 살았을 풀이 보았다. 왜 이렇게 각박한 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하지만 그 자리가 사는데는 각박해 보여도 남다른 바다와 낙조를 마주할 수 있는 자리임엔 분명했다. 때로 삶도 그렇다. 편안하고 쉬운 삶을 버리고 각박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예술가들이 그렇다. 우리는 어느 하루 낙조를 쫓아가지만 때로 평생 낙조를 쫓아가는 사람들이 그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바위의 풀들아, 너희들도 예술하는 거니? 다른 것은 몰라도 진도 각홀도의 낙조는 아주 네 삶이 되었을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진도 각홀도의 낙조이다. 마치 각홀도가 지는 해를 꿀꺽 삼킬 듯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었다. 섬의 위로는 새 몇 마리가 날아갔다. 하지만 각홀도는 아무 것도 삼키지 못했다. 새들은 섬에 앉지 않고 그냥 다른 곳으로 날아갔으며, 해는 각홀도의 콧등을 스치며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그녀가 몇 군데 길가에 써 있는 민박집 간판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숙박을 알아보았으나 빈 방이 없거나 가격이 우리가 계획하고 내려온 수준과 빗나갔다. 우리는 진도읍으로 들어가서 묵기로 했다.
진도읍의 거리에 차를 세워놓고 일단 저녁을 먹었다.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다가 사람이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었다. 진도 홍주를 한잔 걸치려고 했으나 제일 싼 것이 1만5천원이나 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숙박은 진도군청 앞에 있는 보은모텔에 묵었다. 1층에 대중목욕탕이 있는 모텔이었다. 아주머니는 3만5천원을 불렀지만 나는 3만원에 협상을 했다. 아주머니가 곧바로 오케이를 해주었다.
방이 너무 더워 창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다. 밤새도록 사우나 하는 기분으로 잤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에 가장 좋은 잠자리였다.
4 thoughts on “겨울을 밀어낸 진도 봄배추와 가학리 해변의 낙조 – 6일간의 설여행 Day 2-2”
빛의 주단이라.. 정말 그러네요.
올해말쯤 내놓으실 달력에 올라올만한 사진이 여러개 보이는데요.
봄동이 저렇게 피어나는군요.
숲속에 안긴 그녀의 모습이 딱 그자세군요^^ 아하 시원해 하면서 (죄송~)
밭의 절반은 눈, 절반은 배추라서 겨울과 봄이 막바지 힘대결 하는 듯이 보였어요.
남쪽이 따뜻하긴 따뜻한가 봐요.
강원도에선 겨울엔 푸른 빛은 침엽수밖에는 전혀 볼 수 없는데 말예요.
시원하긴 했을 거예요. 바닷 바람이. ㅋㅋ
진도는 온통 그림밭이군요.
진도 초입인데 점입가경이 기대됩니다.
언제 두 분이 같이 내려가시죠.
청산도가 워낙 좋아서 진도가 좀 빛이 바래긴 했는데 차타고 둘러본 데는 별로 남는게 없고 항상 걸어다닌 곳이 많이 기억에 남는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