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걷지 않고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세상의 무엇이나 걷고 있는 사람에게만 얼굴을 드러낸다. 달려서도 안된다. 하물며 차를 타고는 더더욱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차는 빠른 시간에 어디까지 가는데 유용한 것이지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무엇인가를 빠르게 많이 볼 수 있도록 해주진 않는다. 빠르게 달리면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빠른 속도는 지나치는 모든 풍경의 얼굴을 집어 삼켜 버린다. 차로 달리는 순간 세상의 모든 얼굴은 속도의 뒤로 묻힌다. 심지어 그것은 자전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보려면 차를 세워놓고 걸어야 한다.
점심을 먹은 그녀는 차를 서편제 촬영지의 입구에 마련되어 있는 주차장에 세웠다. 그녀는 차 속에 남았고, 나는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길이 바다로 흘러내려간다. 바닷가로 내려간 길은 바닷가에 머물려 든다. 바다도 내려온 길을 다시 돌려보내지 않으려 든다. 끊임없이 파도가 바닷가로 밀려오는 것은 가지말고 내 곁에 있으라는 꼬드김 같은 것이다. 바닷가로 내려간 길을 다시 올라오려면 힘든 것은 그 때문이다. 발목을 붙잡는 바다를 뿌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 내려가면 바다에 붙들릴 것을 잘알고 있는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산의 허리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젊은 처자 둘이 그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두 처자는 바다의 유혹에 몸을 낮추며 아래쪽으로 내달린 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얼마가지 않아 곧 바로 바다로 내려가는 길로 발길을 들여놓았다. 나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산허리로 난 길은 산의 정상과 바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흘러간다. 때로 좀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으로 바짝 붙기도 하고, 또 때로는 바다로 몸을 낮추어 바닷 내음을 킁킁거리지만 절대로 바닷가로 내려가진 않는다. 길이 힘들다 싶으면 고갯마루에서 나무를 세워 길을 마중하며 길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길은 화랑포로 가는 길이다. 산의 허리를 타고 흐르다 빠르게 높이를 낮추면서 화랑포쪽으로 흐른다. 그 중간쯤 돌담에 둘러쌓인 무덤 하나를 만났다. 제주도에만 이런 무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청산도에도 있다.
무덤 곁에 돌담을 쌓는 것은 바람 때문인 것 같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동물들이 무덤을 밟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리도 들렸다. 돌담은 무덤으로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한다. 담너머는 넘어가기에 번거로워진다. 담이 없었다면 무덤의 잔디 위에 엉덩이를 내리고 쉬어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담너머의 무덤은 발길을 그냥 지나치게 한다. 죽은 자는 담바깥에 아무리 산 자의 기척이 어른거려도 절대로 내다보는 법이 없다. 따뜻한 햇볕만이 담을 건너가 죽은 자와 놀고 있었다. 햇볕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와 공평하게 놀아준다. 속살 깊이 파고드는 햇볕의 손끝이 너무 더워 외투를 벗었다. 외투를 벗자 몸속을 파고들던 햇볕도 손을 거둔다.
길은 자꾸가면 내가 새땅끝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해남에 땅끝이 있지만 여긴 훨씬 남쪽이라 더 땅끝이다. 그렇지만 해남에 이미 땅끝이 있어 이곳은 땅끝을 주장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그래서 이곳이 새땅끝일 것이다.
좋은 풍경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내 걸음은 그 길을 머뭇거린다. 오른쪽으로는 화랑포가 있다. 신라의 화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파도가 꽃처럼 피어나는 바닷가라고 한다. 그러나 내 걸음은 그곳으로 가는 것도 머뭇거린다. 대신 내 걸음은 나무 뿌리를 감싼 두터운 흙을 파내고 바다로 내려가고 있는 길을 따라 왼쪽의 바닷가로 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걸어서 그곳까지 내려온 길, 화랑포로 내려가는 길, 새땅끝으로 가는 오른쪽 길, 새땅끝으로 가는 왼쪽 길, 산중턱을 타고 숲으로 들어가는 길, 그리고 왼쪽의 바다로 내려가는 길, 그렇게 그곳에는 모두 여섯 개의 길이 방사형으로 펼쳐져 있었지만 내가 발길을 들여놓은 것은 왼쪽 바다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 길로 내려간 나는 갯돌이 구르는 바다를 만났다.
청산도의 길은 이 바다를 내내 마주하며 산허리로 흘러간다. 이곳까지는 차로도 올 수가 있지만 이곳에서부터 바다를 마주하는 길은 오직 걸어서만 갈 수 있다. 내내 산자락 아래서 파도 소리가 동행하는 길이다. 나는 그 길로 들어서기 전에 잠시 바닷가로 발길을 내렸다.
갯돌은 모난 돌이 없다.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얘기를 떠올리진 마시라. 여기선 정맞아 모난 구석을 버린 돌은 하나도 없다. 대신 바닷물이 밀려왔다 밀려갈 때마다 그 물결에 몸을 굴리며 서로의 몸을 부빈 끝에 돌들은 모두 저의 모난 구석을 버렸다. 태풍이 불 때는 좀더 격하게 몸을 섞었으리라. 갯돌은 정에 맞아 모난 구석을 버린 것이 아니라 세파처럼 파도가 밀려올 때 서로의 몸을 부비면서 그들의 둥근 세월을 얻었다. 자주 포옹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뒹굴고 싶었다.
돌의 표면에 손을 대본다. 보기에는 거칠어 보이는데 손끝에 전해진 느낌은 곧장 아기 피부를 연상시킨다. 그 극단적 부드러움에 깜짝 놀랐다. 돌에게 부드러움이 있다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갯돌은 몸을 서로 부비며 세월을 넘긴 끝에 둥근 시간과 상상할 수 없이 부드러움을 얻었다. 단단하게 굳은 돌들에게 부드러움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
바닷가에서 올라온 나는 가끔 차가 지나가며 보행을 방해하던 길을 버리고 숲길로 나 있는 작은 소로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이 길에 연애바탕길이란 이름을 붙여놓았다. 아마도 청산도 사람들이 연애할 때 많이 걸었던 길인가 보다. 표지판엔 연애바탕길이 아니라 사랑길이라고 되어 있었다. 둘이 가야할 듯한 그 길을 혼자 간다.
위험 구간이라고 주의를 주면서 기둥을 세우고 줄을 쳐 길가는 사람을 보호해주고 있는 구간도 나타났다.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발을 헛딛으면 몇 바퀴 구르기에는 아주 좋아 보였다.
길은 간간히 경관을 열어준다. 내가 좀전에 내려갔던 바닷가가 보이고 산 허리를 따라 새땅끝으로 가는 왼쪽 길이 보인다. 청산도의 길은 길을 가면서 종종 길이 보였고, 그건 참 매력적이었다. 내가 거쳐온 길이나 가야할 길을 길게 조망할 수 있는 길은 그렇게 흔치 않다.
산길을 가다 강아지를 한마리 만났다. 얘, 너 혼자 왔니, 이 산길을. 강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앞장을 섰다. 조금 걷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 둘이 나타났다. 개를 데리고 오신 거냐고 물었더니 그냥 동네에서 따라온 개란다. 두 사람이 물병을 꺼내더니 손에 물을 따라 강아지의 목을 축여 주었다. 어디서부터 오냐고 했더니 범바위에서 출발했단다. 그곳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 말에 내가 세 시간 동안 벗어날 수 없는 깊숙한 숲길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닌가 싶어 갑자기 큰 걱정이 되었다.
조금 걷자 이번에는 나비가 나타났다. 내 앞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날면서 잠깐 함께 동행해 주었다.
범바위면 저 멀리 보이는 섬의 끝에서 이곳까지 걸어온 것이다. 지금이야 청산도의 지리를 어느 정도 꿰고난 뒤끝이라 이렇게 가늠이 가지만 이때만 해도 초행길이라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어디 민박을 잡아서 들어가라고 했더니 그녀가 빨리 오라고 재촉을 대답으로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초행길이라 길을 알 수가 없는 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돌아가려니 이미 걸어들어온 길이 너무 깊다. 나는 다시 또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평상시 같으면 바위가 의자 삼아 내민 등짝에 엉덩이를 걸치고 잠시 쉬었겠지만 그냥 걸음을 계속 옮겨놓았다.
몇 걸음 옮기다 보니 표지판이 나타나고 그녀가 차를 세워놓은 주차장이 바로 곁에 있다고 알려준다. 이거 뭐야, 다 거기서 거기네, 이 섬은. 알고보니 마음을 급하게 가질 필요없이 여유롭게 걷다가 언제든 마음을 접고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섬이 청산도였다. 길은 바다를 마주하며 계속 산허리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나는 길만 보내고 슬쩍 내가 출발했던 곳으로 빠져 나왔다. 다 온 것 같다고 전화를 하고 걸음을 옮겨놓았다. 길에서 가지만 남은 나무 하나가 손을 흔들어준다. 가지는 조밀하건만 그래도 잎이 없는 가지는 느낌이 앙상하다. 곧 봄이 오면 나무는 푸른 손짓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겨울은 앙상한 손짓의 계절이며, 봄은 푸른 손짓을 시작하는 계절이다. 손을 펼쳤더니 빈 나뭇가지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모아 허공에서 하이화이브 한번 했다.
청산도의 당리이다. 산을 둘러싸고 있는 길이 마치 산자락으로 몰려온 파도처럼 보인다. 마을 왼쪽으로 주차장이 있고, 그녀가 지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 네 명이 돌담길을 걸어온다. 곁은 지나는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이곳의 아이들인지 설날을 맞아 놀러온 아이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이 길은 영화 서편제에서 나왔던 길이기도 하다. 영화에선 반대 방향으로, 그러니까 아이들 방향에서 내 쪽으로 촬영이 되었다.
일단 민박집을 찾기로 하고 구정리란 마을로 들어갔으나 그곳의 민박 두 곳 모두 묵기에 여의치가 않았다. 한 곳은 기름이 없어 방을 따뜻하게 덥힐 수가 없다고 했고, 다른 한 곳은 내일 아침 여덟 시에 집을 나가야 한다고 했다. 서울갈 일이 생겨서 그렇단다.
그곳에선 산너머의 권덕리로 가보라고 했다. 그곳엔 민박집이 많아서 얼마든지 묵을 곳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희망적인 메시지도 함께 건네주었다. 권덕리에서 두 곳에 들린 뒤 <낚시인의 집>이라고 되어 있는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는 4만원을 불렀지만 나는 3만원을 내밀었고 아주머니는 3만5천원을 새로운 액수로 제시했다. 3만5천원에 묵기로 했다. 생활하는 공간에 함께 묵는 민박이 아니라 민박을 위하여 별채로 집을 지어놓은 민박집이었다. 네 채 정도의 독립된 시설이 있었는데 이 날 모두 찼던 것으로 보아 아주 인기있는 집 같았다.
처음에 들어가 엉덩이를 방바닥에 부쳤을 때는 방이 그다지 따뜻하질 않았다. 둘 다 잠시 눈을 부쳤다. 그녀에게 우스개 소리로 숙박비는 점점 올라가는 데 시설의 수준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욕조는 없었지만 그래도 샤워하는데 지장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