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의 노적도 – 6일간의 설여행 Day 4-2

청산도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흘러가다 보면 도청리, 지리, 진산리 등의 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 가운데서 가장 동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진산리이다. 진산리는 청산도에선 해뜨는 마을로 불린다. 청산도에 들어와 갈 곳을 찾아 헤매고 있던 우리의 차는 바로 그 진산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직 바다에 아침 해가 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해뜨는 마을이란 이름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갯돌이 구르는 진산리 해변에서 차를 세우고 우리가 마주한 것은 정말 아침해였다. 해가 떠있는 것이 동쪽이란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북쪽으로 자리하고 있다보니 해가 떠있는 곳이 마치 남쪽처럼 느껴진다. 멀리 보이는 섬은 항도라고 불린다. 방파제로 본섬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진산리의 아침해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아침해를 눈앞에 두고 뛰고 있던 가슴에는 치밀어오른 울화가 덮여있었다. 때로 아름다운 자연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분노를 걷어내고 눈앞의 자연으로 마음을 채워 세상을 새롭게 열어준다. 실제로 언젠가 그런 경험이 있다. 둘이 백담사를 가던 날, 늦은 출발로 화를 낸 나의 신경질 때문에 그녀의 기분이 상했지만 홍천에서부터 펼쳐진 하얀 눈풍경은 그녀의 마음을 풀어놓았고, 그 풍경 때문에 나도 그녀 앞에 납짝 엎드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곤 백담사를 나올 때쯤 서로 화를 풀었었다. 그러나 오늘 진산리 해변의 아침해는 마음 속으로 들지 못하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진산리 해변의 방파제에서 차를 내리니 멀리 노적도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노적가리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을 얻었으리라. 저 섬까지 걸어갔다 오면 서로 화가 풀려 있을까.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바닷가의 암벽을 따라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바로 아래쪽에서 아침 식사 거리를 찾던 물새 한마리가 느닷없는 나의 등장에 놀라 황급히 바다로 몸을 피한다. 내가 신경질 끝에 치밀어 오른 화로 여전히 분노에 차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걸음이 급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가다보니 길이 끊긴다. 바닷물이 깊숙이 들어와 길을 가로막았고, 굳이 노적섬까지 가려면 암벽의 위로 올라가 길을 찾아 보아야 한다. 아마 내가 낸 신경질도 지금의 바다처럼 우리 둘 사이를 파고들어 서로를 갈라놓았으라. 신경질은 둘 사이의 길을 끊어버린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잔잔한 물결이 튀어나온 바위에 끊임없이 부딪치고 있다. 부딪친 물결은 다시 동심원으로 퍼져 나간다. 부딪친다는 것은 일종의 갈등인데 갈등을 부드럽게 동심원으로 무마하다니. 바위는 산전수전 다 겪으며 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나는 그것이 잘 안된다. 부딪치면 울화가 먼저 앞선다. 눈앞의 바위는 끊임없이 둥글게 둥글게 동심원을 그려내고 있었지만 나의 굳은 마음은 사정없이 부딪는 물결을 밀어내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바위는 밀려온 물결로 동심원을 그리고 그 위로 아침해가 꼬리를 길게 내린다. 꼬리가 긴 것을 보니 해는 여우과에 틀림이 없다. 그냥 꼬리도 아니고 온통 반짝반짝 거리는 빛나는 꼬리이다. 바닷가의 바위와 해는 둥글게 무마하고 반짝이며 꼬리를 흔드는 여우같은 몸짓에 비로소 하루가 환하게 열릴 것이라고 내게 속삭인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물러서질 않고 있었다. 청산도가 마음의 울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자연으로 채워줄만큼 아름답지는 못했던 것일까.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절벽을 따라 조금 올라갔더니 산 속으로 이어지는 작은 숲길이 보였다. 딱 한 사람 걸어갈 수 있는 길이었다. 나는 그 길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나무가 너무 빽빽하여 작은 소로 이외에는 어디로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길이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경질 내고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선 안나타나면 뒤에서 걱정하는 사람은 생각도 안하냐며 소리를 빽 질렀다. 난 사진 찍으러 들어가는 걸 다 봤으면서 뭔 딴소리냐고 했다. 한참 걸릴테니 가까운 마을에 가서 사진찍고 있으라고 했다.
길은 간간히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을 바다쪽으로 흘려주면서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다. 두 번째로 아래로 흘려준 길이 나타났을 때 앞으로 흘러가는 길을 버리고 아래로 향하는 길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 길을 내려가자 바다가 나타났고 눈앞에 노적섬이 훨씬 큰 덩치로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서로 가까이 다가서서 서로를 알려고 애쓰면 상대가 나를 품고도 남을만큼 크나큰 가슴으로 눈앞에 설텐데… 싸웠을 때는 서로를 알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로부터 등을 돌리고 도망치듯 서로를 밀어내며 멀어진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진산리 바닷가의 길은 바닷가의 바위를 따라가선 노적섬까지 갈 수가 없었다. 이어져 있는 듯 보이는 가까운 바위 너머도 바위를 올라서면 바위 사이를 헤집고 깊숙이 들어와 있는 바닷물로 끊겨 있었다. 바로 눈앞의 길을 짐작할 수 없는 것이 진산리 바닷가의 길이었다. 물은 깊었고 골은 넓어 건너 뛸 수도 없었다. 결국 들어간 길을 돌아나와 길게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수는 없다. 감정의 골을 만들면서 둘의 사이를 벌여놓은 다툼이 있었다면 이 겨울에는 어쩔 수가 없다. 물에 들어가서 그 골을 건너 하나되기에는 이 겨울의 바다가 너무 춥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바위는 살기 어려운 곳이다. 그래도 그 사이에 한 해를 살다간 생명이 있다. 서로의 다툼도 삶을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바위없는 섬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단 말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리라. 다툼없는 사이도 상상할 수가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그래도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진산리 해변에선 누구도 볼 수 없는 노적섬의 뒷모습은 보고 가야지. 아니 이쪽이 이마인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항상 노적섬의 뒷통수만 보는데 나는 이마를 마주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가면 그냥 또 이마를 마주하고 히히덕거리면서 좀전의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야 하리라.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 해변에서

항쪽으로 걸어나오니 배 두 척이 나란히 서 있다. 풍경에 마음의 빛이 투영된다. 아마 둘의 사이가 좋았을 때라면 두 척의 배가 다정하게 보였을 것이다. 둘의 사이가 어긋나 있는 지금의 순간, 참 질기게도 얽혀있다로 읽힌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에서

방파제까지 걸어나오니 그녀는 안보인다. 전화를 걸었더니 마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다. 마을로 걸어갔다. 멀리 마을의 골목길을 내려오던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에서

강아지 두 마리가 밭과 밭 사이의 둑길을 따라가며 놀고 있었다. 우리는 둘 모두 강아지에게 카메라를 맞추었다. 강아지들처럼 즐겁게 뛰놀다 가면 정말 생이 재미나는 것을 가끔 개만도 못하게 처신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진산리에서

싸움의 뒤끝은 쉽게 풀리질 않았다. 둘의 언성이 다시 크게 높아졌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다시 혼자 터덜터덜 반대편에 있는 마을 입구로 걸어들어가 버렸다. 논둑길이 휘어지면서 산으로 흘러간다.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자꾸 어긋나고 있었다. 논둑길의 곡선은 유연했지만 내 마음은 자꾸 각을 세우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도청항에서

차를 몰아 다시 들어왔던 항구로 나왔다. 그녀가 점심을 먹자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준비가 되면 식당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식당 바깥에서 사진을 찍다가 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는 동안 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성게알 비빔밥을 꾸역꾸역 입속으로 집어 넣었다. 바깥에서 울리는 농악 소리에 나는 바깥으로 나와 설날을 맞아 집집을 돌고 있는 농악패를 잠시 쫓아다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2월 4일 청산도의 도청항에서

항구로 배가 들어온다. 다시 풍경에 마음이 투영이 된다. 항구의 빨간 등대와 흰 등대가 지척의 거리에서 하루 종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눈길 한번 안주고 있다. 서로 다툰 것이 틀림없다. 등대도 다툴 때가 있다. 하필 오늘이 그날이다. 등대라도 맘풀고 우리를 달래주면 좋으려면 우리가 다투면 그날따라 항구의 등대도 토라진다. 우리가 풀어지면 항구의 등대도 마음을 풀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갈등은 예견된 것이었다. 청산도에 대한 안내의 어디서나 진산리는 해뜨는 마을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마을에 대해 “진산리가 해뜨는 마을이면 다른 마을은 해가 뜨질 않는 거냐? 원래 해는 어느 마을에서나 다 뜨는 거 아니냐?“고 했고, 그녀는 그 말을 ‘해뜨는 것을 보기에 좋은 마을’이라고 받았다. 나는 해뜨는 것을 독점한 듯한 말을 문제삼았고, 그녀는 그 문제를 말에 대한 적절한 해석으로 바로 잡았다. 나는 말에 대해 아주 민감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풀어줄 해석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주고 받을 때 우리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우리 앞에 말을 둘러싸고 우리가 해석력을 부재를 적나라하게 노출하게 싸우게 되리라는 것을.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뭔 일로 싸웠을까가 궁금할 것이다. 싸움의 원인은 말의 오해로부터 시작되었다.
진산리 해변에 도착했을 때, 아침해가 꼬리를 길게 끌며 바다 위에 떠 있었고 멀리 노적섬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을 방파제가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아침해와 노적섬의 풍경 사이로 방파제가 초대받지 않은 방해꾼처럼 끼어들어 바다를 가로막는 것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방파제까지 가서 그 위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은 딱 한마디였다.
“저리로 가자.”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아침해가 우리에게 내밀 바다 풍경을 가로막고 있는 방파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가 우거진 방풍림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그 뒤에서 방파제로 흘러가는 길 하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곳으로 가자고 한 것은 그곳이 방파제로 가는 지름길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끊어진 길이었다.
그러니까 ‘저리로 가자’는 내 말 속에는 ‘지금 아침해가 그려내는 풍경이 상당히 좋은데 방파제가 가로막고 있어서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아. 그런데 보니까 소나무 방풍림 속으로 난 흙길이 방파제 쪽으로 가는 지름길 같어. 그러니까 저 길로 방파제까지 가서 사진을 찍자’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 어느 누가 ‘저리로 가자’는 말 속에서 그 긴 말을 해석해 내겠는가.
내가 ‘저리로 가자’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을 때 그녀가 본 것은 소나무가 우거진 방풍림이었다. 그녀는 저 정도면 그냥 걸어서 들어가도 되는데 왜 굳이 아스팔트 길도 아니도 흙으로 되어 있는 길로 꾸역꾸역 차를 몰아 방풍림의 속까지 차를 갖고 들어가는지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그녀도 ‘지금 내가 보기에는 네가 가자고 하는 곳이 저기 방풍림의 소나무 숲속으로 보이는데 저 정도면 걸어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로 보여. 그런데 왜 굳이 차를 타고 들어가려고 해. 걸어 들어가면 안될까’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러했다.
“이런데 왔으면 좀 걸어다녀. 뭘 저런 데까지 차를 타고 가려고 해.”
그녀가 내 말을 해석해내지 못했듯이 나도 그녀의 말을 전혀 해석해내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시 말하여 나를 이런 풍경좋은 섬까지 와서 걷지도 않고 차나 타고 다니려는 사람으로 곡해하는 말로 받아들였다. 곡해는 분노를 부르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그 말에 울컥한 나는 벌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에이에 덧붙여 곧바로 씨로 시작하여 발로 마무리되는 짧은 욕지거리를 입에 올리고 말았다. 그녀에게 그것은 듣는 사람으로서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다.
진산리로 들어올 때 해뜨는 마을이란 말을 사이에 두고 말을 놀려먹는 여유있는 꼬투리 잡기와 그에 대한 여유로운 해석력으로 그 순간을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던 두 사람은 그 자신들 사이에서 난이도 높은 해석력이 문제되는 말이 던져지자 곧바로 갈등의 늪에 발목이 잡혀 버렸다. 그것이 바로 그날 밤까지 이어진 싸움의 시작이었다.
나는 숲길로 걸어들어가고 그녀는 진산리 마을에서 사진을 찍으며 잠시 떨어져 지낸 시간으로 이번 문제가 봉합되는가 싶었지만 그러나 마을을 걸어나오며 주고 받은 얘기 끝에 우리의 싸움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그녀는 내가 화를 낸 것이 잘못이고, 자신이 그 화를 감내하며 참는 것은 너무 억울하고 또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내가 화를 낸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니 그냥 잘못했다고 말하면 이번 사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나는 그럼 그렇게 화를 내게 만든 원인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나는 내가 말한 ‘저기로 가자’는 말은 어떤 이념적 판단을 내포하지 않은 아주 건조한 말이라고 했다. 그것은 곡해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녀는 그 말을 이념적으로 곡해를 했다. 그녀가 한 ‘이런데 와선 좀 걸으라’고 하는 말은 어떤 판단을 내재한 말이다. 그건 말하자면 이념적 판단이 들어가 있는 말이다. 내 말은 오해의 여지가 없는데 오해를 했고, 그녀의 말은 충분히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인데 그녀는 그런 말을 내게 했다. 그것이 내 주장이었다. 그녀는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 해결되는데 그렇게 하면 안되겠냐고 했고, 그렇게 하면 문제야 해결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그냥 내가 수많은 세상 남자들 중의 하나이지 나는 아니지 않느냐고 나는 말했다. 둘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그녀는 말은 그저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말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밝혀졌으니 서로 물러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한 나는 말은 그냥 말이 아니라 말에는 어떤 사람의 잠재의식이 배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이 작은 말에서 꼬투리를 잡아 그 사람의 잠재의식을 엿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들이 그래서 엉터리라고 맞섰다.
나중에 그녀는 갑자기 화를 벌컥내는 짓좀 하지 않으면 안되냐고 했고, 나는 어떤 이념적 판단이 들어간 얘기는 좀 하지 않으면 안되냐고 했다. 둘은 서로 양보할 줄 몰랐다. 나는 서울로 돌아가자고 했고, 그녀는 그건 너무 하지 않냐고 했다.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마음이 가로막으면 풍경도 눈에 들지 못한다. 말의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은 그날 저녁까지 계속된 뒤에야 겨우 풀렸다.
나는 곰곰히 생각한 끝에 우리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 긴장을 완전히 해제시킨 청산도의 바다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배안에서 나오지 않고 선실 바닥의 따뜻한 곳을 찾아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때 나는 내내 바다에 들뜬 마음으로 배 위에 서 있었다. 그건 뭍을 버린 자가 갖게 된 낭만이었다. 그 낭만적 아침은 내게서 긴장을 제거시켜 버렸다. 약간의 긴장이 있어야 신경질도 제어가 되는데 나는 듣기 싫은 말을 들었을 때 나를 제어할 수 있는 긴장을 청산도 들어오는 바다 위에서 모두 놓아버린 상태였다. 나는 섬의 낭만에 휩싸여 모든 긴장을 놓고 섬의 풍경에 들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녀가 던진, 나와는 전혀 맞지도 않는 작은 말 한마디는 내 화를 돋우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나는 좋은데 와서 잔소리에 긁힌 심정이 되었다. 그녀가 머리를 끄덕거려 내 말에 동조를 해주었다.
그녀는 나보다 더 심했다. 그녀는 사실 청산도가 아니라 서해안 고속도로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들뜬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긴장이 풀려있었다. 설을 준비하지 않고 설날 연휴에 어디로 떠난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도발에 그녀는 하늘을 날 듯한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지나칠 정도로 넘쳐나 길이 막히면 금방이라도 차를 공중으로 집어들고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을 듯 보였다. 그 들뜬 마음은 그녀에게서 긴장을 제거해 버렸다. 긴장이 제거되면 그녀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제어하질 못한다. 그녀는 빠르고 편한 차의 속도에 편승하여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도 차로 가는 현대인이나 들어야할 말을 내게 생각없이 던지고 말았다. 우리 모두 긴장이 풀어서 서로 제어가 되지 않고 있었다.
얘기가 이쯤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우리는 합의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얘기를 모두 한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이번 일을 누구의 잘못으로 못박지도 않고, 또 누구의 사과도 요구하지 않고 서로 물러나기로 했다. 민박집을 잡고 날이 까맣게 어두워진 뒤끝이었다. 우리는 서로 포옹한 뒤 잠들었다.

2 thoughts on “청산도의 노적도 – 6일간의 설여행 Day 4-2

  1. >>>둘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에고! 어쩌다가 성이 나셔서 그 맛있는 성게알 비빔밥을 꾸역꾸역 드셨나요.
    호사다마였나 봐요.

    1. 정말 세상에 다 좋은 일이 없고..
      또 세상에 다 나쁜 일이 없는 듯 싶어요.
      고통 속에도 행복이 있고..
      행복 속에도 고통이 있는게 삶인 듯 하다는.
      세상이 흑과 백의 두 개로 나뉘어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이 이어져 있다는 게 정말 맞는 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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