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일요일에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열리는 생명평화미사에 갔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여 천주교의 사제단이 매일 오후 3시에 미사를 올리고 있는 이곳에선 이날 411번째 미사가 봉헌되었다. 이 날의 강론도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성남 단대동 성당의 이상헌(플로렌시오) 신부님이 맡았다. 요즘은 항상 이상헌 신부님이 일요일의 강론을 도맡아 하신다.
이 날 인용되어 신부님의 말씀을 열어준 성경의 문구는 예수가 눈 못보던 이에게 진흙을 개어 눈에 붙여주자 그가 그 진흙을 씻어낸 뒤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신부님은 얘기의 초점을 예수가 행한 일의 기적에 맞추지 않고, 이 얘기를 눈에 대한 얘기로 방향을 틀었다. 곧잘 사람들이 우리에게 육신의 눈과 마음의 눈이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헌 신부님은 육신의 눈과 달리 마음의 눈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질 않다는 것이다. 신부님의 얘기에 따르면 때로 그것은 세상을 보는 각자의 가치관이다. 어떤 사람은 보수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진보적 가치관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각자가 가중치를 두는 가치가 다르고, 그에따라 세상에선 곧잘 서로 다른 가치관이 충돌한다. 또 신부님은 때로 마음의 눈이란 육신의 눈으로 읽어내지 못하는 표면적 현상의 이면을 보게 해주는 또다른 내면의 눈을 가리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부님은 그 마음의 눈을 형성하는데 많은 것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가정 환경이나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많은 경험들을 그에 대한 한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신부님은 항상 세상을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두 시선 가운데서 신부님이 더욱 가치가 있다고 손을 들어준 것은 긍정적 시선이다. 아마 부정적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며 다만 긍정적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해도 안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했다.
신부님의 말씀을 가운데 놓고 내 머리 속에서 어떤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든 것은 그 지점이었다. 나는 그럼 강을 눈앞에 놓았을 때 어떤 시선이 긍정적 시선이고, 어떤 시선이 부정적 시선일까를 묻고 있었다. 강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며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긍정적 시각일까? 아니면 강을 살린다며 곳곳의 강을 파헤치고 보를 막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이 긍정적 시각일까? 나에게 있어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자명했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은 강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다. 부정적 시각이 아니라 그 사업은 아예 강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부에서 무슨 일만 하려고 하면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자들을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호도하려 든다. 그것은 출발 자체가 잘못된 주장이다. 강을 놓고 두 가지 견해가 부딪치고 있을 때는 강에 대한 정책을 놓고 그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긍정과 부정을 가를 수가 없다. 그때 어느 것이 긍정적 시선이고, 어느 것이 부정적 시선인가를 말하려면 강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사업이 아니라 바로 강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는 바로 강에 대한 무한 긍정의 시선으로부터 출발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자들은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알고 보면 자연에 대한 무한 긍정의 시선을 넘어 한없는 애정까지 가진 긍정론자들이다. 그 긍정적 시선에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서 운하예비음모가 보이고, 그들이 강을 살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포크레인 삽날에 찍혀 죽어가고 있는 강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긍정적 시선은 강에 눈뜨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부정적 시선이 가리고 은폐하고자 하는 음모까지 보여준다. 부정적 시선은 자신들만 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정을 호도하고 은폐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을 다 막으려 든다. 부정적인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두물머리에선 강을 긍정하고, 그곳의 땅에서 먹을 것을 거두어 그 생명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는 유기농업을 한없이 긍정하는 사람들이 그 긍정의 힘으로 부정의 어둠을 이겨내기 위하여 싸움에 나서고 있다.
미사가 끝나고 바깥으로 나오자 십자가를 돌아가며 조해붕 신부님과 신도분들이 강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강을 부정하는 자들이 포클레인의 삽날을 들어 강의 숨통을 옥조이고 있지만, 강을 긍정하는 이들이 기도를 모아 그에 맞서고 있었다.
11 thoughts on “강에 대한 긍정과 부정 – 이상헌 신부님의 강론”
예… 강의 긍정은… 강을 살리고 강을 유유히 흐르게 하여
작은 생명들 조차 강의 흐름안에서 숨 쉬게 해주는거 맞아요
정부의 반대편이 부정적이라는건 …아니고 말고요…
강을 죽임하여 무엇을 얻겠다고요??
긍정이… 말도 안되는 부정의 억지힘에 죽어가는게 … 얼마나 많은이들을
아프게 하는지요…
강론을 정말 잘 들으시고…강론의 ‘눈’을 옮겨 주시니 참 고마워요
매일 매일 오후 세시 미사인데…부끄럽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물이란게 이상해서 별다른 오염원이 없어도 막아놓기만 하면 썩더라구요. 제 고향에도 자랄 때 보가 한두 군데 있었는데 그곳은 예외없이 물이 깨끗하질 않았어요. 벼농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막은 보였는데 요즘은 홍수에 떠내려간 보를 막지 않고 그냥 펌프로 농사를 짓더군요.
작품 활동 열심히 하시는게 동참이세요.
이 신부님 이렇게 간접적인 강론만 들어도 맘에 드는 분이네요.궁극적인 긍정은 자신의 부정에 대해서 일말의 감출 것이 없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들은 강바닥을 겁없이 무한 긁어 팔 줄은 알았지
자신 안에 있는 ‘부정’의 요소를 파서 바라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 듯…
아니, ‘나만이 긍정’ 이라는 만고의 오류를 붙들고 있는 자들이니 진정 마음의 눈을 감은 것이겠지요.
내 안의 긍정과 부정, 타인 안의 긍정과 부정을 함께 인정할 수 있는 힘과 관용이 느껴지는 신부님의 강론이 정말 좋으셨을 듯해요.
겁없이 강바닥만 파대는 저 사람이 언론과 교계의 쟁쟁한 지도자들 앞에서 무릎꿇어 기도하는 태도 대신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꿇는다면 차라리 소망이 있을텐데…서글플뿐이예요.
사실 이 날 엄청 놀라운 얘기를 들었어요. 그게 feel님과 실님이 생각나는 얘기여서 나중에 두 사람 만나면 좀 물어보고 싶더라구요. 내가 항상 갖고 있던 예수의 딜레마가 있었는데 이 신부님은 그 점에 대해 많은 시사를 던지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나중에 기회되면 만나는 자리에서 한번 얘기해 볼께요.
종교가 원래 현실 속에서 분명하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맞는데 그렇치 못한 현실이 “어처구니 없음”이지요. 어떤이들에게는 종교가 현실이요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많은 종교인들에게는 요원해 보이기만 합니다.
사실 종교엔 별 관심이 없는데.. 이번 경우엔 말씀이 워낙 좋은 듯 싶어요.
신부님의 강론을 길게 기록하시면서 생각을 전개하신 걸로 볼 때,
듣기에 괜찮으셨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목사님들의 메시지도 몇 줄 옮기기가 버거울 때도 있는데,
들을 귀를 갖추고 열심히 경청하신 결과 같습니다.
개발론자들에게도 나름의 논리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연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막무가내가 답답한 현실이죠.
곧잘 신부님들의 이력을 캐곤 하는데.. 대개가 다 빈민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을 하던 분들이더라구요. 말씀의 기반이 다르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삶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기본기를 갖추신 분들이라고나 할까. 종교적 강론들이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종교적이면서도 현실 속에서 분명하게 길을 열어주기 때문에 자꾸 강론에 귀가 쏠리는 듯 싶습니다.
이상헌 신부님은 이 미사에선 준비된 신부님이란 별칭으로 불리고 있어요. 이 날은 미사끝나고 신부님이랑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시간도 아주 좋더라구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하니,, 우상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그러하다고 보여집니다.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에 진리를 안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과 같으니 그것이 삶과 자연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사건과 사물의 진상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의 진실한 의견을 듣지 못하고 다가오는 파멸의 냄새를 맡지 못하니 머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저들이 우상을 섬기더니 결국은 자멸하고 마는구나!”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명바구 지지하는 것도 내가 보기엔 우상을 섬기는 일이라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며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 손으로 자식들을 잘 키울 수 있을지,,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