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어서 – 고향의 추억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7월 3일 강원도 영월의 문곡에서

대도시는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 파헤친 뒤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지으면서 모습을 바꾸어 간다. 그래서 대도시에선 예전의 모습이 아예 통째로 없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풍경이 들어선다. 모습을 바꾼 곳에 가면 위치에 대한 기억만 있을 뿐, 과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단서를 잡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이런 변화가 도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시골도 모습이 많이 바뀌곤 한다. 내 고향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고향은 내가 자랄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우리가 자랄 때 내 고향은 어디나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돌어서’라 불리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첨부된 사진에서 병창의 아래쪽 부분을 우리는 돌어서라고 불렀다.
돌어서라는 명칭은 두 가지 말의 결합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로 ‘돌아간다’와 ‘소’이다. 우리 동네 문곡리를 감싸고 내려가는 물은 돌어서에 이르러 거대한 절벽에 부딪치고, 그곳에서 절벽을 따라 방향을 튼다. 말하자면 돌어서는 물이 왼쪽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서’는 ‘소’의 변형으로 보인다. 폭포가 쏟아지면서 아래쪽에 생긴 깊은 곳을 가리켜 흔히 소라고 하는데 이곳 돌어서는 물이 절벽에 부딪치면서 아래쪽을 파내며 지나간 탓인지 물이 아주 깊었다. 그러니까 물이 돌아가면서 생긴 소, 즉 물이 아주 깊은 곳이란 뜻에서 원래는 돌어소라고 해야 하지만 어와 소를 잇기보다 서가 잇기 편해서 돌어서란 이름을 얻은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하긴 우리들이 자랄 때는 소나 서나 그게 그것이긴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예비군이란 것이 생기고 나서 가끔 어른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제식 훈련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어른들은 하나 둘 셋 넷이 아니라 하나 둘 서이 너이라고 소리를 맞추었고, 그러면 우리는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곤 했었다. 그러니 소가 서가 된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높이와 깊이를 즐기며 놀았다. 우리들이 높이를 즐긴 방식은 이곳의 병창에 기어올라 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더 높이 오를수록 기세가 더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깊이가 높이를 받쳐줄 정도로 깊지는 않아서 정말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물속으로 먼저 들어간 이마가 물속 바닥을 들이박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바닥은 부드러운 모래로 되어 있어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물론 가장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아이 중 하나였다.
깊이를 놀 때는 하얀 돌멩이 하나를 가장 깊숙한 곳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물속으로 잠수하여 눈을 뜨고 그 돌을 건져오는 것이 깊이를 갖고 놀 때의 우리들 방법이었다. 우리는 물고기들처럼 물속에서 눈을 뜨고 헤엄을 쳤다.
지금은 물의 좌우로 풀들이 뒤덮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이곳의 풍경은 이와는 전혀 달랐다. 이곳은 풀은 하나도 없고 자갈이 하얗게 깔린 물가였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우리의 걸음에 자리를 비켜주었던 풀들은 우리가 오랫 동안 고향을 비워놓은 사이에 우리가 걷던 길을 그 자신들이 걸어가기 시작했고, 그 걸음은 물가에까지 이르러 물가를 완전히 풀로 뒤덮어 버렸다. 이곳에서 오래 전의 기억을 들출 수 있는 우리들만이 지금의 무성한 풀밭 아래쪽이 자갈밭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가장 변화가 심한 곳은 돌어서 자체이다. 돌어서는 홍수 때마다 떠내려온 자갈이 야금야금 밀고 내려가 이제는 깊이를 모두 잃어 버렸다. 여전히 물길이 돌아가고 있는 곳은 맞지만 이제는 자갈로 다 메워져 바지만 걷으면 절벽까지 걸어들어갈 수 있는 얕은 곳이 되었다. 그곳이 깊은 소였다는 것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이 아니라면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곳 돌어서의 병창에 관해선 또다른 기억이 있다. 어느 해 이곳 병창에 구렁이가 상당히 많이 나타났었다. 구렁이들은 병창을 타고 움직였으며, 우리들은 그 구렁이들을 향하여 우우 소리를 지르며 돌을 던지곤 했었다. 어떤 구렁이는 우리가 던진 돌에 맞아 아득한 높이를 추락한 뒤 물을 헤엄쳐 허겁지겁 도망쳐야 했다. 배를 허옇게 뒤집으며 물가에서 생을 마감한 구렁이도 있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뱀에 대해 적개심이 심했나 모르겠다. 그때 우리에겐 뱀하고 눈이 마주친 다음에 확실하게 뱀을 죽여놓지 않으면 뱀이 우리 몰래 집까지 따라온다는 쓸데없는 속설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 우리들의 적개심을 부채질한 것 중의 하나로 그러한 속설도 큰 작용을 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시골에서 자라며 접했던 뱀들은 대개는 굵기가 가는 뱀들 뿐이었는데 그때 내가 이 병창에서 본 구렁이들은 정말 굵기가 팔뚝만한 엄청나게 큰 것들이었다. 그해 엄청나게 큰 홍수가 났었다.
씁쓸한 추억 또한 이 병창에 서려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나는 언젠가 이 병창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죽으려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뛰어내리진 못했다. 호텔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홍콩 배우 장국영은 죽기 전에 절친한 친구에게 죽고 싶을 때는 뛰어내리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말했다지만 절벽 위에 섰을 때 내 앞에선 죽고 난 뒤의 내 일그러진 죽음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아울러 밑에서 내 동생이 울먹이며 오빠, 그만 내려와라고 소리친 것도 내가 마음을 접는데 큰몫을 했다. 어른들은 돌어서 물이 깊어 뛰어내려도 죽지는 않는다고 했으며, 아는 척하면 정말 뛰어내린다며 그냥 모른 척하고 가자고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이 오히려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더듬어보니 정말 고향의 곳곳에 어린 날의 추억이 수없이 서려 있는 듯하다. 하긴 20년을 그곳에서 자랐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제 가끔 고향의 기억을 꺼내 정리해 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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