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섬을 띄워 사람을 맞는다 – 남해안 여행 1 남해 양아리

내가 4박5일로 여행을 떠난 것은
이번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딱 두 번이었던 것 같다.
그 두 번의 여행은 모두 그녀와 함께 였다.
아주 오래 전 그녀와 나는 완도에 가서 차를 배에 싣고
제주도로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흘을 보냈다.
이번에는 일정만 4박5일로 정해놓고
일단 남쪽으로 떠나기로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오래 전의 4박5일 여행은
완도에 가서 차를 배에 실었지만
이번에는 자전거를 차에 싣고 떠났다.
내 자전거는 접어서 차의 트렁크에 실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물론 그녀의 자전거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자전거는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잔뜩 챙긴 짐들은
자전거 옆의 한 귀퉁이에 옹색하게 끼여 가야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떠나기 전 서울의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우리는 9월 5일 오전 10시쯤 집을 떠났다.
전국적으로 비가 올 것이란 소식이 있었지만
서울을 떠날 때 올려다본 하늘로는
그 예보가 믿기질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나는 처음에는 통영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우리가 처음 쉰 곳은 충주휴게소였다.
오전 11시 25분경이었다.
그녀가 휴게소에서 차를 세우고
새우처럼 몸을 오그린채 잠시 잠을 청했다.
나는 휴게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달개비 꽃이 나비처럼 날아오르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꽃도 날고 꽃잎도 날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가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여자가 항상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거울을 보는 일이다.
잠에서 깬 그녀 역시 가장 먼저 거울을 본다.
우리는 충주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으며
12시 30분경,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남으로 향했다.

Photo by Kim Dong Won

오후 3시경 그녀가 피곤하니
잠시 쉬었다 가자고 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영산휴게소였다.
그녀가 자는 동안
나는 휴게소 옆의 늪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휴게소 주변으로 철조망이 높게 쳐 있었지만
나는 뒤쪽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물어
뒷편으로 나가는 작은 비밀의 문을 찾아냈다.
늪의 이름은 장척늪이다.
늪에 떠있는 하얀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낚시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꽃의 이름을 물으니
마름이라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 아저씨는 나와 나이 차이가 12살 차이였다.
12살 위. 나는 12살 아래.
아저씨가 내가 쥐띠란 것을 곧바로 맞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물속에 잠긴 마름의 뿌리를 건져
그곳에 영근 열매를 내게 보여주었다.
껍질을 벗기니 열매의 하얀 속살이 나왔다.
먹어보니 아주 상큼한 맛이었다.
이 열매를 가리켜 말밤이라고 한다고 했다.
밤맛이라서 그렇게 부르나 보다.
연한 것은 그냥 먹고
너무 익어서 딱딱한 것은 삶아서 먹는다고 했다.
옛날 가난하던 시절에 참 많이 먹었는데
지금은 먹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한 조각을 얻어 그녀와도 그 맛을 나누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차가 진주를 지날 때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진주는 그녀의 고향이다.
그녀에게 고향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곳이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가 7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상경한 곳으로 먼저 기억되는 곳이다.
7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 어머니의 고생이
진주를 지날 때,
그녀의 눈 속에서 눈물로 번졌다.
그때 바깥에선 빗줄기가 날리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우리는 바다를 찾아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가다가 빗속을 걸어가고 있는 농부 아저씨를 만났다.
걸어내려 오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아저씨가 우리에게 던진 첫마디는
“짝이가?”라는 것이었다.
“부부인가?”라는 말보다
왜 그 말이 그렇게 정겹게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아저씨는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셨다.
회 한접시 먹고 가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섬이다, 섬!
우리의 눈에 바다가 들어온 것은 저녁 6시경.
왜 바다와 섬은 우리의 가슴을 들뜨게 하는 것일까.
우리는 간혹 연이나 풍선에 실어 우리의 소망을 하늘 높이 날려보낸다.
우리들이 띄워보내는 그 소망의 풍선이나 연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바다는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는 바다가 보고 싶다.
바다는 기다림과 반가움을 섬으로 띄워
바다를 보고픈 우리의 마음을 맞는다.
섬은 그러니까 우리를 반기는 바다의 마음인 셈이다.
그래서 바다를 마주하고 섬을 본 순간,
우리의 마음은 설렌다.

Photo by Kim Dong Won

우리는 바다를 끼고 남해를 달렸다.
길가의 나무와 칡넝쿨 사이로
바다와 섬이 내비친다.
빗줄기는 여전했지만
우리는 비에 젖는다기보다
이제 일렁이는 바다와
바다가 띄워놓은 섬의 반가움에 젖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내려오다 중간에 정한 첫 목적지는 남해 금산.
우리가 그곳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 30분경.
언젠가 우리는 남해 금산의 보리암에서
그 앞쪽의 마을을 내려다보며
저 마을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바로 그때 가보고 싶었던
그 마을에 와 있었다.
우리는 금산의 앞자락에서
양아리란 곳으로 들어갔다.
그냥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찻길이 예뻐보인다는 것이
우리가 그리로 들어간 이유였다.
그림처럼 예쁜 마을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에게 묵을 곳을 물었더니
우리 집에서 자도 된다고 했다.
우리는 할머니네 집에서 여장을 풀었다.
할머니가 옥수수를 내주셨다.
옥수수를 챙겨가지고 다음 날 내내 먹으며 다녔다.

Photo by Kim Dong Won

방의 창으로 멀리 산의 윤곽과 건너편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밖에는 풀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서울에선 밤마다 방에 갇혀 잠을 자는 느낌이었는데
이곳에선 풀벌레 소리 때문인지
자연 속에 묻혀 잠을 청하는 느낌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모기장을 내주었다.
8시 30분쯤 우리는 남해에서의 첫밤 속으로 잠이 들고 있었다.
아늑한 밤이었다.

4 thoughts on “바다는 섬을 띄워 사람을 맞는다 – 남해안 여행 1 남해 양아리

  1. 즐거운 여행되셨어요?^^
    통통이님은 자고 일어나시면 거울을 먼저 보시는군요.
    전 왜 먹을것부터 찾게 될까요.^^;;
    진짜 자고 일어나면 허기가 져서 우유라도 마셔야 정신이 차려져요.ㅋㅋ
    아..저 옥수수도 너무 맛나게 생겼네요.
    여행기는 계속 되는거죠?^^

    1. 이번 여행을 한 열 번은 우려 먹겠죠, 뭐.
      통통이 왈: 이 옥수수는 통째로 속까지 다 먹는 거야?
      나의 대답: 한번 먹어볼 수 있으면 먹어 보셔.
      그런데 정말 속까지 연하긴 연하더군요.

  2. 저도 나중에 신랑이랑 같이 이스트맨님처럼 여행다닐고예요~~(언제..??)
    그때 자문 좀 구할께요~(긍까 언제..?!?!)
    물론 맨 입은 아닐겁니다~~우호호호~~
    ^ㅁ^

    1. 당연히 그러셔야죠.
      결혼하면 모든 일을 그만두고
      그냥 둘이서 여행만 다니세요.
      그럼 뭐 먹고 사냐구요?
      세상에서 제일로 달콤한 거.
      사랑만 먹고 살아도 한 10년쯤은 견딜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이걸 장담은 못한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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