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긴 손 — 김주대의 시 「강가에서」

2011년 4월 11일 경기도 팔당의 직녀봉에서 내려다 본 한강

강가에 선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인 김주대에 의하면 강은 유난스럽게 긴 손을 가졌다. 그냥 긴 손이 아니라 아울러 모두의 연인이 되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따뜻한 손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은 우리의 곁에 머물러 주지 않는다. 손을 잡아주고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대 기인 손 뻗어
손 잡아주고는
또 어디로 떠나는가
—김주대, 「강가에서」 전문

만약 우리가 불현듯 강에 가고 싶다면, 가서 강가에 서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내다 오고 싶다면, 그것은 아무 말없이 연인의 손을 잡고 그 따뜻한 체온으로 내 몸을 덥히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강가에 가면 언제나 강이 그 긴 손을 뻗어 우리의 손을 잡아주며, 그리고는 우리를 고집하거나 우리를 따라붙지 않고 다시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떠나지 않고 우리 곁에 남은 사랑은 슬프게도 곧잘 생활의 무게로 사랑을 뭉갠다. 우리의 손을 잡아주는 강은 그걸 잘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긴 손을 뻗어 우리의 손을 잡아주면서도 우리들을 고집하는 법이 없다. 손을 잡아주고 그 체온의 기억을 우리에게 남겨둔채 떠나는 것이 강의 사랑이다. 강가에 간다는 것은 불현듯 그 손의 체온이 그리워졌다는 뜻이다.
그러니 강가에 선다는 것은 먼길을 와 긴 손을 내밀며 내 손을 잡아주는 강의 손을 잡으러 가는 일이다. 나는 가끔 강가에 간다. 주로 팔당에 있는 두물머리 강가에 간다. 그때마다 나는 강의 손을 꼬옥잡고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이리라.
내가 그의 시를 읽으며 이 얘기를 했더니 김주대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강도 암컷, 수컷이 있어요. 잘 잡아야 돼요. 바다로 막 들어가는 놈은 수컷, 계곡에서 막 빠져나오는 놈은 암컷. 왜 그런지는 알죠? 제가 직접 말하기는 좀 곤란해요.”
나도 그의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말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그가 일러준 말이 사실이니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라 남자의 손을 잡고 싶은 사람은 바다가 가까운 곳의 강가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며, 여자의 손을 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계곡을 막 빠져나온 물이 강으로 합류하고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그렇다면 앞으로 가급적 계곡 가까운 곳의 강가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은 또한 중성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 내 친구들은 모두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강에 몸을 담그고 놀았으며, 그때면 강은 손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들을 모두 그 품 깊숙이 포옹해주곤 했다. 강은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남자였고, 여자를 원하는 사람에겐 여자였다.
그러니 강의 암수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냥 편한대로 강을 찾으면 된다.
강가에 선다는 것은 강의 손을 잡는 일이다. 강가에 서면 잠시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떠나는 강이 우리 앞에 있다, 언제나, 예외없이.

7 thoughts on “강의 긴 손 — 김주대의 시 「강가에서」

    1. 언제 암수 구별을 확실하게 하면서 춘천쯤 가봅시다.
      거기 청평사 계곡이라고 있는데.. 요즘은 길이 좋아서 금방 가는 것 같아요.

  1. 혹 풍경님은 강가에서 긴 이별을 하셨던건 아닐까.
    난 긴 이별보다 짧은 이별이 좋은데…
    이 시를 보니, 강가에서의 이별은 너무 길어서 슬프다.

    1. 무슨 드라마야, 도대체. 드라마가 어디 한두 개야.
      근데 이 시를 읽고 나니 강이 정말 나를 위해 먼길을 달려오고, 그 다음엔 다시 길을 떠나는 운명의 연인 같더라.
      손잡고 같이 살자고 하는 연인이 아니라
      손잡아 주고 떠나는 연인은 서글프면서도 아련하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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