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곤드레밥과 화암 약수터의 아침 산책 – 영월, 정선 기행 5

영월은 볼 것이 아주 많은 곳이다.
묵으면서 며칠 동안 여기저기 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천문대에다 각종 박물관이 있어 짧은 거리를 이동하며 구경할 수 있고,
또 많은 산을 끼고 있고 하루 하나씩 산을 골라 산행을 하는 재미도 괜찮다.
동강과 서강의 강변으로 나가
강이 만들어낸 풍경을 감상해도 이틀은 걸릴 것이다.
서울에서 내려가기에 교통편이 좋다는 것도 장점이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나면 2시간여밖에 걸리질 않는다.
숙박시설도 대형 콘도가 생기면서 많이 좋아졌고
펜션은 걸을 때마다 발에 걸릴 정도로 많다.
하지만 내겐 거의 일년에 한번씩 내려가는 고향이다 보니
하루를 묵고 나선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진박물관을 돌아본 걸음을 끝으로 영월에서의 하루 여정을 마감하고
정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정선 읍내로 들어가서 묵을까, 다른 곳으로 갈까를 고민하다
언젠가 한번 들렀던 화암약수로 가기로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정선에서

언젠가 고향에서 모임을 가졌을 때
차가진 친구를 살살 꼬드겨서 모임이 끝난 뒤
정선에 가서 나머지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행선지는 그렇게 잡았다.
태백까지 난 4차로의 편한 길로 가다가 정선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때부터는 2차로의 옛길이다.
그 길을 가다 잠시 차를 멈추었다.
정선의 남면 유평리이다.
차를 세운 것은 길가의 나무 한그루 때문이었다.
나무의 뒤로는 안개가 산을 넘어와 있었다.
나무의 뒤라고 했지만 사실 나무는 앞뒤가 없다.
나무는 그냥 마주한 곳이 앞이다.
우리는 길을 돌아온 끝에 나무 앞에 섰다.
자리에 붙박혀 있는 듯하지만
알고 보면 나무를 중심으로 안개가 흐르고 우리가 흐른다.
또 계절도 흐른다.
잎을 많이 떨어뜨린 것을 보니 계절이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고 있나 보다.
나무는 이곳에서 세상의 중심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정선에서

나무가 내려다보는 길건너의 아래쪽 풍경이다.
두 줄의 철로를 끌고 가던 기찻길이
동남천을 따라 흘러가다 기찻굴 속으로 숨는다.
정선으로 가는 철길이다.
하긴 오가는 철길이 따로 있지 않아
이곳에선 서울로 가는 철길이기도 하다.
내 마음은 철길을 따라 정선으로 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정선에서

운전으로 피곤한 그녀는 찻속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잠을 방해하지 않고 가는 방향으로 길을 따라 고개를 넘었다.
고개를 넘자 기찻굴을 빠져나온 철길이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또 굴이 철길을 숨겨준다.
기찻길을 속으로 품은 산을 흰 안개가 감싸고 돌며 굴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나도 그냥 속아주었다.
고개를 다 내려갔을 즈음 그녀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잠깐 눈을 붙이고
나는 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그녀의 차를 얻어타고 간다.
이 여행법이 아주 좋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정선에서

화암약수가 있는 곳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그곳의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여장을 풀고 난 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맛있는 곳을 물었더니 바로 아래쪽으로 있는 고향식당을 일러주었다.
자기네 여관의 전속 식당이라고 했다.
고향식당에서 다시 곤드레밥을 시켰다.
영월의 곤드레밥과는 다소 달랐다.
영월의 곤드레밥이 그냥 밥에 곤드레나물을 얹어준 느낌이었는데
이곳은 아예 밥을 할 때 곤드레 나물을 미리 넣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2인분 이상만 주문이 된다.
그러니까 이곳의 고향식당에선 혼자오면 곤드레밥 먹기가 어렵다.
곤드레밥 정식은 4인 이상이 와야 먹을 수 있다.
밥은 똑같고 반찬이 더 나온다고 한다.
맛은? 정선 곤드레밥이 몇 수 위였다.
영월에서 곤드레밥을 맛있다고 먹었는데
정선의 곤드레밥에는 비길 것이 못되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자꾸 생각나는 맛이었다.
해놓은 밥에 얹어주는 것이 아니라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해주는 밥이 정선의 곤드레밥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정선에서

반쯤 먹었을 때 누룽지를 내준다.
맛이 고소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데 누룽지를 잡을 때마다 손에 기름이 묻어났다.
그래서 미리 해놓은 밥이 아니라
2인용으로 금방한 밥이란 것을 알았다.
밥을 할 때 들기름을 넣고 한단다.
누릉지 사이사이에 함께 넣은 곤드레나물이 보였다.
나중에 먹다 남은 누룽지는 싸달라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정선에서

영월에선 곤드레 막걸리와 동강 막걸리를 마셨는데
여기선 메뉴판에 보니 각종 막걸리가 있다.
그래서 각종 막걸리를 갖다 달라고 했더니 어떤 걸 마시겠냐고 한다.
옥수수 막걸리를 달라고 했더니
정선의 아우라지 옥수수 막걸리라는 긴 이름의 막걸리를 가져다 주었다.
옥수수 막걸리는 연한 노란빛을 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쌀먹걸리와는 색깔이 다르다.
좁쌀 막걸리도 노란빛을 띄는데 옥수수 막걸리보다는 진하다.
이번 여행에서 마신 막걸리 중에선
정선의 옥수수 막걸리가 좋았고,
그 다음은 곤드레 막걸리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정선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에는 약수터로 약수를 마시러 갔다.
약수터로 건너가는 길에서 보니 계곡물이 보기 좋을 정도의 수량이었다.
손으로 쥐면 한손에 들어올 듯한 느낌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0일 강원도 정선에서

이곳의 약수는 그냥 일반적인 약수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하며 약간 비릿한 맛이 나서
비위가 약한 사람은 마시기 어렵다.
마시면 곧바로 반응이 오면서 배가 부글거린다.
나는 많이 마시진 못하고 조금 마셨다.
그녀는 이 약수를 아주 좋아한다.
한잔 드시고 숙소로 들어간 뒤 곧바로 화장실 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아침에 창문의 커튼을 젖혔을 때 바깥의 빗발이 굵었다.
조금 피곤했는지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하니 9시였다.
그녀는 계속 눈을 붙였고 나는 바깥으로 나와 아침 산책에 나섰다.
우리가 묵었던 화암장 여관도 온통 비에 젖어있었다.
낡고 오래된 여관이었지만 아주 깨끗했다.
비 때문에 손님이 없어 이층으로된 숙소였지만 우리 둘만 묵었다.
두 팀이 예약을 했는데 최소했다고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여관을 나서자 마자 담쟁이를 만났다.
허공으로 길을 가던 담쟁이 둘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하긴 허공의 길은 얼마나 막막할 것인가.
손을 잡고 가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의지가 될 것이다.
막막한 길에선 손을 맞잡는 것이 좋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바위를 내려가는 담쟁이 둘은 서로의 길을 각자 걸었다.
길이 분명하면 혼자가도 상관없을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어젯밤 약수를 마시러 들렀을 때
보기 좋은 수량으로 흘러내려가던 계곡의 물이
오늘은 엄청난 양으로 늘어나 있었다.
두 손으로 잡아도 대책없이 삐져나갈 듯한 느낌이다.
몸을 불린 계곡의 물은 도랑의 폭이 좁다며 하얗게 들끓는다.
좁아지면 넓은 곳을 찾게 되는 것은 자연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류의 넓은 곳을 찾아가는 물의 걸음이 바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비가 내리면 담쟁이들도
바위를 흘러내리는 초록빛 빗물이 된다.
그러니까 비가 내리는 날,
담쟁이는 비에 물든다.
그러나 아무리 흘러도 넘치는 법이 없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이끼가 잡아둔 초록빛 여름 위로
나무가 노란 가을 하나를 떨어뜨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밤새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를 계곡의 물이 알려준다.
여유로웠던 물가의 풀들도 물에 휩쓸려 시달리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여관에 묵은 것은 우리 혼자 였지만
지난 밤의 그 비를 다 맞으며 야영을 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제 이런 낭만적 불편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는가 보다.
정말 사방에서 빗소리가 가득한 밤이 되었을 것이다.
문패까지 달아놓은 텐트도 있었고
벌써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집도 있었다.
잘 갖추어진 야영장이라 샤워장과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산을 내려온 물이 길로 넘쳐나고
그 물의 한가운데 잎하나가 누워있다.
물들이 내려가다 옆으로 비켜간다.
하지만 물이 좀더 많아지면 같이 가자고 손을 끌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약수터가 둘인데 아래쪽의 약수터로 가는 길이다.
아래쪽에는 약수가 한곳에 둘이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약수터가는 다리의 철골 구조에
호박이랑 박, 그리고 수세미가 잔뜩 달려있었다.
특히 수세미가 많다.
서울 사람들은 오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다리를 건너가면 약수가 나오는데 이곳의 약수는 쌍약수라 불린다.
두 개라서 쌍약수이다.
쌍약수는 어젯밤에 들러서 마신 약수에 비하면 약간 맛이 연하다.
일단 한잔 마셔두었다.
지금은 아침이라 약수가 가득이지만
낮엔 사람들이 줄을 서기 때문에 이렇게 고여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4 thoughts on “정선의 곤드레밥과 화암 약수터의 아침 산책 – 영월, 정선 기행 5

  1. /나무는 그냥 마주한 곳이 앞이다/
    음… 참…좋네요 그냥 마주한 곳이 앞이다
    나무이든 바람이든…사람이든..이런 무심하고 자연스럽고 욕심없는 소통을
    동원님은 잘하고 계신듯 해요…
    좋은 주말 즐겁게 보내시길요~~

    1. 꽃은 앞뒤가 있는 듯한데.. 나무는 앞만 가진 듯 싶어요.
      오늘은 아주 날씨가 좋네요.
      두물머리 나가보려구요.
      일요일 즐겁게 보내세요.

  2. 도입부 열 줄은 영월 관광청 공식 브로셔 첫 장에 나오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영월 편이 끝나고 정선 편을 시작하셨는데, 정선도 장난 아니게 좋은 곳이군요.
    정선 편이 어떤 속살을 보여줄지 몰라도, 지금까지 읽고 보는 느낌으로는,
    영월은 약간 정적이고, 정선은 동적일 거 같다는 느낌을 주는데
    또 다른 어떤 아름다움들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1. 그냥 저로선 항상 그곳의 자연이 가장 좋은데…
      사람들은 뭘 보고 즐기려고 하니까 자꾸만 뭘 만드는 듯 싶어요.
      만들지 않고 내버려두었으면 싶은데 우리 나라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고향은 영월이지만 보존된 자연으로 보면 정선이 훨씬 더 좋은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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