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자연휴양림과 정선 시장 – 영월, 정선 기행 6

화암 약수터에서 아침 산책을 끝낸 뒤 숙소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식당이 문을 연 것 같으니 아침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난 어제 저녁의 곤드레밥이 좋아 다시 그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침을 정선 읍내로 나가서 해결하자고 했다.
여행의 묘미가 다양하게 먹고 다니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괜찮겠다 싶어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화암약수터로 들어갈 때 건넌 다리 위에서 보니
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시뻘건 흙탕물이 되어 있었다.
어릴 때도 항상 비가 와서 큰물이 나면 이렇게 흙탕물이 흘렀었다.
이때 물고기를 잡아 먹으면 물고기에서 흙냄새가 났었다.
하루 지나면 좀더 맑아지면서 원래의 투명한 맑음으로 돌아간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안개가 산과 산 사이로 끼어들며 산의 윤곽을 선명하게 살려주고 있었고,
그 풍경에 익어가는 가을논의 빛깔이 더해져 차창밖의 그림이 아주 좋았다.
그냥 차를 세우고 논으로 파고든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길에 눈을 맞춘 그녀는 무심하게 정선으로 차를 몰아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서울에서 내려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는 일행이 있었다.
그녀의 친구인 영옥씨의 가족이다.
함께 만나 가리왕산을 가기로 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 스키 활강 코스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곳의 원시림이 상당 부분 파괴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전에 눈에라도 담아두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은 가리왕산의 장전계곡이다.
진부 아래쪽에 있는 것으로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에 가리왕산 휴양림을 입력했더니
차는 정선을 지나쳐 자꾸만 내 고향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진부와는 반대 방향이다.
그리고는 겨우 차 한 대가 다닐만한 좁고 이상한 산길로 들어섰다.
결국 중간에 차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네비게이션이 믿을게 못되는 구나.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큰길로 나온 뒤,
사실 큰길이라고도 할 수가 없지만 좌우지간 샛길을 빠져나온 뒤,
길가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고 가리왕산 휴양림을 찾아갔다.
가서 얘기를 들으니 우리가 가고자 한 곳은 이 산의 너머란다.
산의 동쪽으로 가야하는데 서쪽으로 온 것이었다.
어쩐지 내 고향쪽으로 자꾸 가더라니.
그런데 비때문에 예약이 취소된 덕분에 비어있는 방이 있었다.
어차피 영옥씨 일행이 합류하면 함께 묵을 큰 방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그곳에서 묵기로 했다.
네비게이션이 엉뚱한 곳을 일러준 덕분에 반대쪽으로 가긴 했지만
덕분에 방을 구했다.
8인용 방이 하룻밤에 8만5천원이었다.
비가 오니까 이런 것은 좋구나.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휴양림의 바로 아래쪽에 화동리라는 마을이 있다.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그 마을로 내려갔다.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식사할 곳은 마땅치 않았다.
동네의 수퍼에 들어가 컵라면을 먹었다.
그 수퍼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이 많이 불어나 있기는 해도
여긴 가리왕산이 가까워 그런지 물이 맑다.
위쪽으로 흙이 쓸려내려올만한 밭이 없다는 얘기가 되리라.
물은 아래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그녀를 뒤로 남겨두고 길을 따라 슬슬 먼저 걸어가며 동네를 구경했다.
나무와 산, 풀밭의 한가운데 집이 있다.
내가 자란 고향도 저런 얕으막한 산을 마을 주위로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다.
가볍게 올라 몇 시간씩 놀곤 했었다.
아마 이 마을의 누군가도 나와 똑같은 추억을 저 산에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내려가다 보니 그녀가 차를 갖고 내려와 다시 차에 올랐다.
정선으로 나가서 시간을 보내다
그곳에서 영옥이네 가족과 합류하여 읍내서 좀 놀자고 했다.
나가다 보니 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자꾸 나무에게 눈길을 가는 것은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어릴 적 내 친구이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를 타며 놀았고
또 그냥 나무밑의 그늘 속에만 있어도 그 품에 들은 듯 했었다.
나무가 친숙할 수밖에 없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세우고 나무 사진을 하나 찍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내가 동네의 나무 사진을 찍는 동안 그녀가 차를 돌려 나온다.
멀리 뒤쪽으로 가리왕산이 보인다.
숙소를 잡을 때 물었더니
중봉이란 봉우리까지 다녀오는데 여섯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여섯 시간이란 얘기로 미루어 만만한 산은 아니다.
내일 갈 수 있으려나 싶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정선 읍내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다.
강가의 무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선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의외로 시장 규모가 크다.
정선 5일장이 열릴 때면
서울에서 기차로 여기까지 와서
정선 구경을 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영월에서 먹었던 배추전이랑 메밀 전병을 좀 먹고 가려고 했더니
너무 바빠서 차려줄 수가 없단다.
할 수 없이 1회용 접시에 받아서 들고 다니며 먹었다.
시장 한가운데의 좌판도 인기가 대단하다.
서울에선 어느 시장을 가도 바쁘다는 이유로
자리에 앉지도 못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은데
시골 내려오니 영월에 이어 자리에 앉지도 못한 경우가 벌써 두 번째이다.
하지만 들고 다니며 먹는 재미도 괜찮기는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중간에 영옥씨네 가족으로부터 정선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두 부부와 아들이 함께 내려왔다.
정선의 강변에서 얼굴보기는 처음이다.
나는 술친구가 생겨서 더 없이 반가웠다.
술을 맘에 맞는 벗과 마시면
그 맛이 갑자기 두 배 세 배로 뛰어오른다.
폐단이라면 맛을 쫓다 그만 과음하게 된다는 것이지만
무엇이나 어디에나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1일 강원도 정선에서

일단 함께 정선 시장으로 다시 들어가 시장 구경을 했다.
나물도 좀 사고 눈에 뜨이는대로 이것저것을 샀다.
시식도 할 수 있어 반찬가게의 반찬들도 맛을 좀 보았다.
술친구 만난 기념으로 시장안의 마트에서
정선의 옥수수 막걸리 한 병을 챙겼다.
그리고 사람이 잔뜩 몰려 있던 시장 한가운데의 좌판에서
배추전과 메밀 전병을 안주로 마련했다.
대목이라 그런지 들어가서 술마실 곳이 마땅찮았다.
그냥 정선의 동강변으로 나가 강바람을 덤으로 즐겨가며 목을 축였다.
멀리 정선에서 벗을 만나니 일정이 술과 술로 술술 풀려가기 시작했다.

2 thoughts on “가리왕산 자연휴양림과 정선 시장 – 영월, 정선 기행 6

  1. 차를 타고 가다 맘에 드는 풍경에 내려 걷다가 지칠 때면 기사가 와서 태워 주는,
    이런 럭셔리 여행 아무나 못하는 거 아시죠?^^
    말로만 듣던 가리왕산은 천오백 미터가 넘는 큰 산이네요.
    집과 서울 근교의 세자릿수 산에만 익숙한 저로선 맘 먹고 도전해 보고픈 산인데,
    정선장과 함께 점찍어 두고 기회를 엿보게 하시네요.

    1. 진부가 바로 위쪽으로 오대산을 두고, 아래쪽으로 가리왕산을 두고 있으니 서너 번 내려가도 될 것 같아요.
      이 산의 장전계곡이란 곳이 사진찍는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인데 주민들의 환경의식이 높아서 카메라 들고 나타나면 별로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아무래도 사람들 발길이 많아지면 자연은 망가지는 거니까요.
      내년 여름엔 장마 시작되면 그 비와 함께 장전계곡이라도 한번 다녀오고 싶어요.
      계곡은 물을 찍으러 가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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