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은 내 고향이고, 고향은 내가 살던 곳이다.
살던 곳과 놀러가는 곳은 많이 다르다.
그곳에서 살던 사람이 고향을 내려가면 돌아보는 곳도 다르다.
때문에 놀러간 사람이 한번 보고 싶다고 하는 곳을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은 자주 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광객처럼 고향을 돌아다녔다.
오늘은 영월의 서부시장과 청록다방,
그리고 동강 사진전이 열리는 사진 박물관을 돌아본다.
고향을 내려간 걸음은 많았지만 사실 나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들이다.
영월에는 두 개의 시장이 있다.
중앙시장과 서부시장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서부시장이다.
내가 이곳에서 먹어보고 싶었던 것은 배추전이었다.
무려 열일곱 집이 이 음식을 내놓고 장사를 한다.
메밀전병과 배추전이다.
하나에 천원씩을 받는다.
배추전은 간을 한 배추로 부친다.
어릴 적 잔치가 벌어질 때면 맛볼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이 음식에 대한 나의 향수는
음식 자체보다 잔치 때의 즐거움이 함께 겹쳐져 있는 듯 싶다.
배추에 간이 배어 있어 간장을 찍지 않고 먹어도 먹을만하다.
메밀전병은 어릴 때도 이런 음식을 해먹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처음 먹어보았는데 맛이 괜찮았다.
또 하나 이곳에서 흔하게 눈에 띄는 음식이 올챙이묵이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올챙이묵 역시 올챙이가 없다.
생긴 모양이 올챙이를 닮았지만 재료는 옥수수라고 한다.
이것 역시 어릴 때의 기억 속에는 없다.
영월이 하도 넓다보니
같은 영월이라고 해도 지역마다 또 음식에 대한 추억이 다르다.
올챙이묵을 그릇에 담고 국물을 얹어준 뒤,
김치 썬 것과 같은 것을 곁들여준다.
열일곱 집이나 되지만 집마다 맛이 다르다.
처음 먹을 때의 올챙이묵은 집을 좀 잘못 고른 느낌이었다.
열일곱 집이나 되다 보니 어디가 맛있는 집인지 점찍기가 쉽지 않다.
사실 고향 친구들은 여기로 뭘 먹으러 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놀러온 사람에겐 구경하며 이것저것 음식 사먹기에 좋은 곳이다.
집에 따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은 상당히 많은가보다.
그냥 시장의 음식점인데도 아무 곳이나 빈자리에 앉으려 했더니
예약이 있다고 앉지 못하게 했다.
허걱, 시장에 예약이라니.
추석을 하루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많이 바빴다.
택배로도 보내준단다.
요즘은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나 택배로 팔지 않는 것이 없는 듯하다.
청록다방은 영화 <라디오 스타>의 무대가 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곳이다.
그녀가 한번 가보자고 해서 들렀다.
그냥 평범한 시골 다방이다.
수염과 긴 머리 때문인지 다방 여종업원이 자꾸만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다방에 들어가기 전에 영월의 동아서점에 들러 책을 두 권 샀다.
그녀는 문재인의 <운명>을 골랐고
나는 김이듬의 <말할 수 없는 애인>을 집어들었다.
이런 시집이 이런 시골 서점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
언젠가 경남 하동으로 여행을 하면서 동네의 서점에 들른 적이 있는데
서점에서 아예 시집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책 두 권을 샀다.
잠시 다방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바깥에선 비가 내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마즙을 한 잔 마셨다.
우유처럼 보이지만 맛은 마즙맛이었다.
사실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이런 게 바로 마즙맛이구나 하면서 마셨다.
그녀는 커피를 시켰다.
책을 보다가 나는 잠시 졸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피곤한 끝에 쉬려고 들어온 다방이었는데
한참을 앉아서 쉬고 나니 다리의 피곤은 많이 풀렸다.
중간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에 있냐고 해서 청록다방에 있다고 했더니
거긴 나이든 사람들이 가는데 거길 뭐하러 갔냐고 했다.
관광객들에겐 영화 촬영지이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냥 나이든 사람들이 많이 가는 다방일 뿐이다.
다방에서 나오니 빗줄기가 굵어져 우산없이는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영월에선 매년 동강 사진전이 열린다.
말은 동강 사진전이지만 동강 모습만 보여주는 사진전은 아니다.
외국의 작가들도 참여하는 일반적인 국제사진전이다.
사진 박물관을 찾아 사진전을 구경했다.
3000원의 입장료에 세 곳을 볼 수가 있다.
사진을 돌아보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그녀가 그 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었다.
그는 여전히 우리들 마음 속의 대통령이다.
건물 안의 사진전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안내를 맡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듯 보이는 학생이 내게 물었다.
혹시 사진 찍지 않았냐고.
그래서 남의 사진을 내가 왜 찍냐고 답했다.
카메라 갖고 있어서 물어본단다.
너무 적극적으로 일을 하니 좀 부담스럽다.
그녀는 또 빈과 빈 사이에서도 사진을 한장 찍었다.
현빈와 원빈을 끼고 사진을 찍으니 아주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사진전을 안내하는 분이
별관의 로비에서 창으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주 좋다고 했다.
그곳에 서니 잎이 막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창엔 빗물이 잡혀 있었고
그 중 하나는 길게 자취를 남기며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창의 빗방울 하나하나에도 잠시 창밖의 나무가 담겨있을 것이다.
창에 나무가 담기고, 그 창에 맺힌 빗방울에도 나무가 담기고,
그 창의 풍경은 내 추억의 한 순간으로 담기고 있었다.
4 thoughts on “영월의 서부시장과 청록다방, 그리고 동강 사진전 – 영월, 정선 기행 4”
음식 얘기를 하시니까 정말 같은 강원도 출신 사람이란 동질감이 확!!그냥!
메밀전병…저도 평창장에서 사다 먹어 봤어요^^
마지막 사진 참 멋지네요
저런풍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떨어지는 물방울과 풍경 그리고 부딪히고 슬쩍 지나가는 가는 바람이 느껴지는…
비오는 날 돌아다니니까 오히려 사진찍기는 더 좋은 것 같았어요.
다만 카메라 관리가 힘들어서 그게 좀 그렇긴 했지만요.
영월을 가까워서 이제 시간나면 휘익하고 한번씩 갔다가 오려구요.
서울에서 볼 땐 강원도 시장들은 다 동부시장쯤 될 것 같은데, 서부시장이네요.^^
영월, 정선이 강원도에선 영서 지방이라 그런 건가요?
고향을 외지 관광객 동선으로 돌아보는 것도 한번쯤 해볼 만 하겠어요.
저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게서 자랐지만, 늘 다니는 곳만 다니게 되거든요.
시골 서점에서 그런 제목의 시집을 팔고 있다는 것에 한 번,
여행지 책방에서 두어 권 구입해 주셨다는 것에서 다시 한 번 놀라고 갑니다.
서점과 두 분 모두, 참 잘했어요.^^
영월 출신의 시인이 꽤 여럿 되는 듯 싶어요.
그곳 태생의 시인들이죠.
저도 좀 놀랐어요.
그래도 아직 문지 시집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말예요.
종종 놀러가면 그곳의 서점에서 시집을 한 권 사곤 하는데
예전에는 그게 가능했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시집이 시골에선 멸종되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