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간다고 하면 대부분은 자연을 찾아가는 것이지만
요즘은 놀러간다는 것이 오락이나 유흥거리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정선만 해도 놀러가면 그곳의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 즐기는 것으로 시간 보낼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많은 듯 싶다.
심지어 패러글라이딩이나 산악 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는 듯했다.
가장 유명하기로는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철로를 활용한
레일 바이크가 아닌가 싶다.
온김에 우리도 한번 타보기로 했다.
그냥 가면 가는대로 타고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를 않았다.
열차처럼 떠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떠날 때 약간의 간격을 두고 모두가 줄줄이 함께 떠난다.
우리는 4시 20분의 출발 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다.
타고 간 레일 바이크는 기차가 가서 끌고 온다.
우리가 타고갈 레일 바이크를 끌고 기차가 막 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출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1시간 가량 기다렸다.
상당히 인기가 있는 듯하다.
비가 오는 데도 마련되어 있는 레일 바이크가 거의 동이 났다.
2인용과 4인용이 있다.
대개는 젊은 연인들이었다.
비가 오는데 지붕도 없어서 비옷을 사야했다.
비오는 날 와서 타주면 비옷 정도는 서비스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비오는 와중에 그 불편을 마다하고 와서 타는데
오히려 비옷의 부담까지 져야한다니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줄은 있지만 차례차례 타기보다
그냥 알아서 마음에 드는 바이크에 오르는 형편이어서
앞쪽 바이크로 오르면 되는데 우리는 뒤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앞쪽의 상당수가 출발한 뒤
뒤쪽은 조금 가는가 싶더니 멈춰서서 도무지 갈 생각을 않는다.
덕분에 철로 옆의 산에서 피어오르는 산안개는 원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얘기를 전해 들으니 앞쪽에서 사고가 났단다.
뒤쪽 바이크가 앞쪽의 바이크를 들이받아 철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고 한다.
절대 추돌하면 안된다는 얘기를 미리 들어두긴 했지만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려나 싶었는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보다.
40여분을 기다린 것 같다.
이 멋진 담쟁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그 길고 긴 정체 때문이었다.
아니면 그저 순식간에 이곳을 지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불편도 있었다.
아랫배의 방광에서 포화 상태라고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속에서도 쪽팔림을 무릅쓰고
철로변 숲으로 들어가 수풀로 하반신을 가린 뒤 실례를 해야 했다.
아래쪽 경치 구경하는 척하긴 했지만 다들 눈치채었을 것이다.
막힐 때는 좀더 숲이 무성한 곳에서 막혀야 한다.
이런 것 탈 때는 타기 전에 맥주마시면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술친구 만나서 좋기는 했는데 그 댓가로 품위를 내려놓아야 했다.
드디어 바이크가 다시 출발을 하고 첫 터널을 만났다.
이곳에서부터 내리막길이라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힘들지는 않았고 속도도 상당해서 달리는 맛도 있었다.
아무 겁없이 터널의 블랙홀 속으로 뛰어들었다.
기관사나 누렸을 장면을 눈앞에 두고 구경하며 가는 재미는 아주 좋았다.
터널의 입구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사람들도 많이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터널의 바깥 세상이 푸른빛의 초록 중력으로
어둡게 가라앉은 터널 속의 우리들을 빨아낸다.
아니면 터널이 가시처럼 뛰어들어 어둠을 휘젓는 우리들을 토해내면
그 바깥에 우리들을 헹구어 어둠을 씻어내줄 초록빛 세상이 있다.
철로 옆의 폭포를 눈깜짝할만큼 짧은 순간으로 후딱 지나친다.
속도감 때문에 타는 재미는 있는데
동시에 그 속도감 때문에 경치를 후딱 해치우는 느낌이다.
경치는 후닥닥 해치우면서 가면 안되는데…
경치는 천천히 몸에 새기듯이 음미해야 하는 것인데…
앞의 바이크가 사이를 벌리면 벌어진 간격이 발길을 재촉하게 만들고
뒤의 바이크가 따라 붙으면 좁아진 간격이 또 페달을 바쁘게 밟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녀가 브레이크만 담당하고 내가 밟았는데
내가 별로 힘들지 않다고 하자
페발을 밟는 것도 그녀가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열심히 사진만 찍으면서 갔다.
역시 무엇이든 운전은 그녀가 잘하는 듯.
가다가 뒤를 돌아본다.
앞쪽 못지 않게 경치가 좋다.
타는 것도 좋지만 적당한 곳을 골라 슬쩍 이곳으로 새어 들어온 뒤
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뒤쪽의 바이크가 속도를 많이 늦추면서 간격이 벌어졌다.
덕분에 풍경과는 더욱 조화롭다.
기찻길옆 오막살이를 지난다.
오막살이는 아닌 듯하지만 그렇게 크지는 않으니 오막살이라고 해두자.
아기는 잘자고 있는지 모르겠다.
저녁밥을 짓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산안개와 뒤섞여 구별이 가지 않지만 약간 색이 다르다.
건널목에서 마을버스를 먼저 보냈다.
마을버스 아저씨가 환한 웃음을 보내주었다.
우중에 줄줄이 레일 바이크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니
많이 흐뭇하신 건지.
물론 우리도 받은 웃음을 웃음으로 건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고 기념 사진을 하나 찍었다.
무려 1시간 정도를 기다렸다고 한다.
사고 처리에 시간이 많이 걸린 듯하다.
우리가 출발한 곳은 구절리역이고 도착한 곳은 아우라지역이다.
후딱 내려온 것 같은데 그래도 거의 20리 길이라고 하는 듯하다.
기다리다 보니 우리를 태우고 갈 열차가 들어온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기차가 우리를 태우고 철교를 건너 다시 구절리로 돌아간다.
멀리 대형 초승달이 다리 위로 내려앉아 있다.
아우라지이다.
요렇게 사람들 눈길 끄는 곳은 모두 펜션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도시인들은 사람이나 자연이 아니라 이런 겉모습에 많이 현혹된다.
요런 집은 이곳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일 것이다.
논둑이나 밭둑을 따라 걸어들어가는 집은 가는 길의 걷는 맛이 다르다.
내 고향에는 이렇게 논이나 밭의 한가운데 있는 집은 없었지만
찻길을 버리고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넌 뒤
논둑길을 걸어 동네를 오가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아주 좋아했었다.
폭은 사람만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좁지만
그래서인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냄새가 잔득 밴 길처럼 느껴진다.
길에도 차의 기계 냄새가 밴 길이 있고,
사람들의 걸음으로 다져진 길이 있다.
작은 소로에서 어떤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타고 갔던 레일 바이크는 돌아올 때는 열차의 꼬리가 되었다.
어찌나 긴지 몸통이 굴을 한참 들어왔는데도
꼬리는 여전히 터널의 입구 바깥이다.
우리는 정선의 구절리에서 모두 토막토막잘라진 꼬리를 만났다.
잘린 꼬리는 우리가 발로 건드리면 여전히 살아서 파닥파닥 움직였다.
우리는 그 꼬리에 올라타고 아우라지역으로 내달렸으며
아우라지역에서 그 토막난 꼬리들은 하나로 길게 이어져 다시 꼬리가 되었다.
갈 때는 토막으로 흩어진 꼬리 여행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도마뱀 열차를 타고 돌아왔다.
4 thoughts on “정선 레일 바이크 – 영월, 정선 기행 7”
<손을 맞잡은 담쟁이> 사진을 보고…
한 줌 흙도 없고, 의지하고 넘어야할 ‘벽’마저 없을 때
우린 손이라도 맞잡아야 한다.
허공의 길은 막막하나, 또 하루 삶을 견디다 보면
의지하고 타오를 수 있는 또 하나의 벽이 나타나리니…
그때, 우리는
그 벽의 이름을 ‘절망’이라 부르지 말자. <선>
화암 약수터의 그 담쟁이 말이군요.
그곳은 참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었어요.
황동규 시인이 그곳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고 하던데
아마 시적 감성을 자극한 풍경을 많이 만났을 듯 싶어요.
사진보다 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뭔가 하나 이벤트가 있을만한데, 하는 지점에서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시는군요. 레알 마드리드, 아니 레일 바이크는 저희도 한 번 탔으면 했는데,
아무래도 정선 행 날짜 잡아야겠네요.^^
보통 이런 건 타는 풍경 몇 장 찍고 마는데 타보기는 처음이에요.
바닷가가면 유람선은 자주 타게 되더라구요.
레일 바이크는 양평에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용문까지 전철을 새로 만들 때 생긴 거 같아요.
정선은 가면 역시 산하고 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