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가리왕산 언저리 걷기 – 영월, 정선 기행 9

가리왕산 휴양림에서의 이른 아침 시간은
홀로 산책을 하며 보내고 이어 함께 아침을 먹었다.
영옥씨 생일이어서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끓여먹었다기보다 즉석 식품이어서 덥혀 먹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생일의 당사자가 덥혔다.
축하는 우리가 해주었다.
날씨는 흐려 있었지만 아무래도 개일 듯이 보였다.
12시까지는 방을 나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산에 갔다 오면 12시는 훌쩍 넘길 듯하여
일단 아침 먹고 모든 짐은 차에 실었다.
하루 더 묵고 싶어 빈 방이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빈 방은 없다고 했다.
아침에 돌아본 바로는
그냥 야영장의 자리도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인기가 많은 곳으로 보였다.
나중에 고향 친구에게 물었더니
지금은 여기저기 묵을 곳이 많이 들어섰지만
한동안 이곳에선 영월도 놀러가서 묵을 곳이라고 하면
이곳 가리왕산 휴양림 밖에 없어 찾는 사람이 엄청 났었다고 한다.
언젠가 휴양림에 하루 묵었다가 물이 제대로 나오질 않아
아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전혀 그렇질 않은 듯하다.
숙소를 나온 우리는 일단 가리왕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아침 산책을 할 때 내가 건너던 나무 다리를
이제 모두가 함께 건넌다.
이 다리를 건너 조금 올라가면 정자가 하나 나온다.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우리는 시작하자마자 휴식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나무의 나이테를 이끼가 푸르게 덮었다.
그럼 다시 청년 시절로 돌아간 건가.
나무는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이끼가 덮이니 다시 푸른 청춘이다.
이끼가 덮인 푸른 숲속을 걸어가는 우리도 푸른 녹음에 물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초입의 숲길은 간간히 나무 사이로 계곡의 물줄기를 보여주면서
약간의 오르막으로 우리를 이끌며
거의 평지에 가까운 완만한 각도로 흐른다.
나는 이런 숲길이 좋다.
숨이 턱으로 치받치는 가파른 산길은 부담스럽다.
높이 올라가서 트인 경관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런 숲길을 천천히 걸어 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었으면 좋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담쟁이가 자신의 잎을 나무에게 빌려주었다.
나무는 담쟁이가 빌려준 이파리를 푸른 날개로 삼았다.
날개가 자리한 곳이 겨드랑이여서 바람이 불 때마다 간질간질하다.
우리가 지나갈 때는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출발할 때의 마음은 온김에 가리왕산 정상까지 가보자는 것이었지만
결국 우리의 걸음은 곧 끊기고 말았다.
등산로가 계곡을 건너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사람들이 건너다녔을 돌다리가 계곡물 속으로 잠겨 있었고
물살이 거세 건너가기는 좀 무리인 듯 보였다.
우리만 발길을 돌린 것은 아니고 올라온 사람들이 모두 발길을 접었다.
다리를 하나 놓아줄만도 한데 이곳을 이대로 방치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위쪽으로 더 험한 곳이 있는 듯싶다.
물이 얼마나 불어날지 밤새 지켜보았을 돌탑 두개와 잠시 시선을 주고 받다
그냥 아래쪽으로 나있는 임도를 따라 걷기로 하고 산을 내려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이렇게 녹음이 우거졌을 때는 산을 다닌 경우가 드문 것 같다.
항상 봄이나 가을, 아니면 겨울에만 산으로 나서곤 했었다.
초록이 짙은 시절에 오니 길을 걷는 느낌이 아주 좋다.
날이 적당히 흐려 그다지 덥지도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여기저기 이끼 천지이다.
나무의 휘어진 곡선을 타고 자리를 잡은 이끼이다.
계곡에 든 듯 아늑할 듯한 느낌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비에 젖은 나뭇잎 하나가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마치 바위를 파고 들어 너의 화석이라도 되겠다는 듯이.
그래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 화석처럼 심어지고 싶어하긴 하지.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쑥부쟁이 하나가 허리가 꺾여 풀밭 위에 누웠다.
그러나 꽃들은 모두 다시 머리를 위로 들었다.
머리를 들었으니 곧 꺾인 몸을 일으킬 것이다.
몸을 일으켜 주면 다시 머리가 숙여질 듯하여 그냥 내버려두었다.
쑥부쟁이는 몸이 꺾여도 머리를 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임도를 따라 숲속으로 올라가 본다.
서서히 하늘이 벗겨지고 있다.
산안개가 내려와 산의 봉우리 하나를 꿀꺽 삼키고 있었다.
매일 봉우리로 아침 식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봉우리는 녹차 아이스크림맛이 날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임도를 따라 걷다가 고여있는 웅덩이에서
떨어진 호두를 잔뜩 발견했다.
종명씨가 꺼내어 껍질을 깠다.
생긴 것이 둥글지를 않고 조금 길쭉길쭉하여 이게 호두맞나 싶었지만
종명씨가 호두가 맞다고 확인해 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이제 날은 완전히 개였다.
비행기 한대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아주 천정부지로 하늘을 찌르는 구나.
며칠만에 날이 맑았다고 신나서 저러는 건가.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산의 능선과 우리가 걷는 길이 모두 가운데로 모여들어
소실점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면 이 풍경의 소실점에 도착하면
그곳에 모인 소실점의 풍경을
손에 집어들고 올 수 있을까.
종명씨와 아들 영기가 빠른 걸음으로 풍경의 소실점을 향하여 걸어갔으나
나중에 돌아온 둘은 풍경의 끝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뒤에 남은 우리는 그 둘이 풍경의 소실점으로 가는 분명히 보았다.
그러니 그들의 몸에 풍경이 점찍히듯 배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어젯밤의 비로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만난다.
길을 함께 내려오던 물줄기가 커다란 바위를 만났다.
커다란 바위는 함께 내려온 물의 길을 좌우로 나누어준다.
물줄기는 바위를 가운데두고 둘로 나뉘었으나 곧 다시 만났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물줄기가 굵을 때는 걸음이 거칠 것이 없는 듯한데
물줄기가 작고 가늘 때는 걸음이 조심스러워 보인다.
이끼가 덮인 작은 돌들 사이로 물줄기가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을 들으며 피어난 이끼.
무슨 아픈 사연이 있길레…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햇볕이 나자 맺힌 빗방울들이 잎을 떠나기 싫어 잎의 뒤로 숨었다.
하지만 해가 자리를 옮기면서 숨어있던 자리에서도 들키고 말았다.
그래도 여전히 맑다.

가리왕산의 임도를 걷는 것으로 등산을 대신한 우리의 오전 시간은
걸음의 속도가 달라 뿔뿔히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게 되었다.
정선 읍내에 있는 아라리촌을 찾아 점심을 먹으려 했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라 가는 날이 쉬는 날이었다.
머리를 굴리다가 우리가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던
화암약수터의 고향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모두가 만족스러워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점심을 한 뒤에는
화암약수터의 산책길을 잠시 걷고 약수도 조금 마셨다.
그 다음엔 정선의 소금강을 돌아보고 영월로 넘어가기로 했다.
소금강의 풍경중 하나이다.
소금강은 차를 두고 그냥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 곳이다.
두 번 차를 세우고 경치를 구경했다.
길가에서 전봇대를 치워 경치를 가로막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정선에서

소금강을 거쳐 몰운대에 도착했다.
몰운대의 그 유명한 소나무를 다시 만났다.
바로 앞으로 민둥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금은 민둥산역으로 이름이 바뀐 예전의 증산역으로 넘어가면
영월까지 이어지는 4차로의 새로운 길이 나온다.
친구에게 부탁하여 영월 삼옥리에 있는 콘도에 숙소를 잡고 영월로 향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9월 12일 강원도 영월에서

저녁은 내 고향 문곡리의 바로 밑에 있는 가느골로 들어가 송어회를 먹었다.
송어회가 이렇게 맛있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송어회를 여러 번 먹어 보았고,
고향에서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맛이 좋았다.
손님이 어찌나 많은지 어느 정도 기다려야 했다.
이번 여행에서 먹는 것은 거의 다 성공적인 것 같다.
사먹고 다니는 여행도 괜찮은 것 같다.
숙소의 방이 둘이었는데 침대방을 그녀와 내가 꽤찼다.

4 thoughts on “정선의 가리왕산 언저리 걷기 – 영월, 정선 기행 9

  1. 아휴…. 따님이 무사하다니 다행이네요
    요즘 일본이 아주 그냥…불안하네요
    이끼가 살고 있는 나무…사진이 참 좋네요
    더불어 더부룩하게 사는 모습….^^

    1.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오늘 인터넷으로 한참 동안 얘기나누었어요.
      곧 귀국하니까 한동안은 곁에 두고 맘편하게 지낼 수 있을 듯 싶어요.
      간만에 시골갔더니 모든게 다 좋더라구요.

  2. 그러니까 산을 걷거나 오르는 방법에는 휴양림 산책, 언저리 걷기, 등정 등
    적어도 세 가지가 있는 셈이군요. 그중 둘을 하셨으니 가리왕산을
    웬만큼 보신 것 아닐까요. 언저리 풍경도 근사합니다.
    사진을 봤다, 시어를 봤다 저도 언저리의 언저리를 맴돌다 갑니다.

    1. 차가 다니는 임도가 있는데 몇대가 지나가기는 했어요.
      차를 갖고 슬쩍 들어가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더군요.
      오대산가도 그런 길이 있는데 여름 한철 잠깐 동안만 개방을 하거든요.
      편리한 것에 많이 길들여져 있어서 그런지
      산에 가서 걸을 생각을 잘 안하고
      차로 산을 올라갈 생각을 자꾸 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래도 걷는 것이 천번만번 낫지만요.
      차는 풍경을 휙휙 바깥으로 내던지며 가는 것 같기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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