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무우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2월 4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무우 하나가
제 몸의 절반을 싹뚝 잘라
어딘가로 버리고
길가의 밭에 누웠다.
그러자 한창 때
목숨을 캐던 밭이
이제는 등에 배고 누운 강이 되었다.
밭은 강이 되어도 잔잔하여
바람이 등을 밀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날이 맑으면
밭대신 하늘의 구름이 몸을 움직여
밭 또한 함께 밀고 갈 것이다.
구름이 서쪽으로 밀려가면
그만큼씩 밭은 동쪽으로 밀린다.
무우는 가만히 그 자리에 누워
이리저리 밀리며 밭의 강을 떠돌다
다시 밭속으로 깊이 잠수하고 말 것이다.
그때쯤 잠시 강이 되어 무우를 싣고 일렁였던 밭은
다시 삶의 터로 되돌아갈 것이다.
농부가 씨를 뿌려 거두는 동안
가끔 버려진 무우가
밭에서 강과 밭을 오간다.
무우는 결코 버려지거나 썩어 없어지지는 않는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12월 4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10 thoughts on “버려진 무우

  1. <반쪽 잃은 무우> (사진 2)

    저 높은 곳에서 늘
    지켜봐 주신 당신,
    오늘은 키 낮추어
    날 눈여겨 보십니다.

    만신창이가 된 몸
    측은하다는 듯이…
    애썼다는 듯이…

    그러나
    저는 봅니다.
    당신의 깊은 눈망울에서
    샘물처럼 찰랑이는
    사랑을 …

    그토록 잡으려 애쓰던
    지푸라기마저 놓아버리고
    이제,
    가장 낮은 자세로
    당신 앞에 섰습니다.

    당신은 나의 사공,
    나는 빈 나룻배.
    저를 온전히 맡깁니다.

    맑고 바람 불어 파도마저 살랑이는 날
    그 어느 하루를 택하여
    당신 곁으로 날 인도해 주소서.

    저는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1. 처음 보았을 때 무우는
      밭을 잠시 물로 일렁이게 하는 힘이었는데
      어느 날 삶을 견디는 힘이 되고,
      오늘은 가장 낮은 자리의 감사가 되었군요.

  2. 반쪽 잃은 슬픔은 가슴에 호수 하나를 남기고…
    세월의 흔적은 검버섯으로 남았다.
    누구를 원망하리.
    삶은 견디어 내는 것.
    오늘도 가슴 호수엔 바람 불고
    가끔은 구름도 다녀가더라.

    1. 사진에 너무 잘 어울리는 걸요.
      대단한 신공이세요.
      원래 제가 사진에 무엇을 찍어붙이는 것이 전공인데
      아무래도 사진만 제공하고 댓글을 기다려야 할 듯.

  3. 무안內은 심히도 무안無顔하여, 수줍어 보이기도 창피해 보이기도 하여 볼 낯이 없습니다. 그야 말로 무안스러울 지경이고요. 겸연쩍고 부끄러워 무색無色하기까지 하지만, 무심無心하지 않은 유심有心하고 유정有情한 님에게 목격되어 이렇게 아름다운 시어로 부활하였군요. 염화미소拈華微笑로 사진과 글귀을 대합니다.

  4. 언뜻 무의 노래 가락이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무가 이런 심오한 자기세계를 갖고 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는 버려진 무를 보는 거지만, 실은 무가 우리를 보고 있었네요.

    1. 두물머리에 요즘 무우가 많이 버려져 있더라구요.
      사진찍는 데 손이 좀 곱기는 했어요.
      따뜻하다 해도 겨울은 겨울이더군요.
      한동안 겨울 풍경을 읽으면서 이 계절을 지내야 할 듯해요.

  5. 어머..저 아이가 무였어요?
    무라고 안쓰셨으면 못알아 보겠어요
    버려져 썩고 있는 무도 역설적으로 생명을 주시는 동원님…
    두물머리… 그립네요^^

    1. 여기는 농부님들이 있어 계절마다 풍경이 다른 듯 싶어요.
      대개 자연은 자연만 있는데
      이곳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이랄까.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듯도 싶고..
      도토리님과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같이간 곳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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