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학기를 마친 딸이 휴학을 한 뒤로 요즘은 알바를 하고 있다.
매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때 돌아온다.
일찍 나가는 날은 9시까지 출근을 하고
늦게 나가는 날은 두 시간이 늦은 11시까지 출근을 한다.
일찍 나가는 날은 일찍 돌아오고 늦게 나가는 날은 늦게 돌아온다.
하루 일하는 시간은 점심 시간 빼고 8시간이다.
한달에 8일을 쉰다.
이틀나가고 쉬고, 사흘나가고 쉬곤 한다.
쉬는 날은 대중이 없다.
이틀을 연이어 쉬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몸이 부대낄 정도로 힘든 알바 같지는 않다.
그래도 힘이 많이 드는지 쉬는 날이면 정신없이 잠을 잔다.
깨우지 않으면 오후 세 시도 좋고 네 시도 좋고
기록이라도 세울양 잠을 자기도 한다.
쉬는 날 공부도 좀하고 그러는게 좋지 않냐고 했더니
아빠는, 쉬는 날 쉬어야지 공부는 무슨 공부냐고 나왔다.
하긴 쉬는 날이 쉬라고 만든 날인 건 맞다.
딸의 얘기는 듣고 보면 별로 틀린 얘기가 없어서
그 얘기 들은 뒤로는 잠을 자거나 말거나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하긴 잠처럼 달콤한 것이 어디에 있으랴.
그렇게 한달을 다닌 끝에 드디어 월급을 받았다.
백만원을 조금 넘는다.
그다지 큰 금액은 아니다.
딸이 벌어온 백만원을 들여다 보면서 든 생각은
돈이란 그것이 88만원이건 백만원이건
그것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란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돈도 그것 자체가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는 뜻이다.
돈의 액수가 많을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며
돈의 액수가 낮다고 그만큼 가치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곧바로 고개를 갸우뚱거릴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의 머리 속에선
돈의 가치란 많을수록 높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내가 가끔 카메라 렌즈에 욕심을 내는데
내가 사려고 하는 렌즈가 60만원짜리 단렌즈이면
백만원은 그것을 사고도 40만원이나 남는 액수가 되며
내가 사려는 렌즈가 2백만원짜리면
백만원은 겨우 그 액수의 절반밖에 채워주지 못하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가 되어 버린다.
일을 다니고 한달 일한 댓가로 백만원을 받는 딸의 태도는
그 백만원의 가치를 스스로 높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많이 준다.
그건 돈의 절대적 액수로 일의 만족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일 자체를 즐기면서
돈은 마치 그것에 따라온 뜻하지 않은 보너스처럼 여기는 듯하다는 의미이다.
사실 3년전 일본으로 건너가자 마자 딸은 곧바로 알바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뒤로 3학년 1학기를 마칠 때까지 내내 알바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가 너무 힘들지 않는가를 물을 때마다
딸은 여기선 대학생들이 다들 알바를 한다고 답했다.
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도 알바를 하고
학비가 부족한 가난한 유학생도 알바를 한다는 것이다.
다들 하는 알바라 특별히 고생으로 느껴질 여지가 없다고 했다.
하긴 모두가 부자면 딱히 부자고 뭐고 없을 것이며
모두가 가난하면 또 가난이고 뭐고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알바를 하면서 일본어의 존대어 하나는 확실하게 배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내 머리 속을 지나간 장면은
손님이 왔는데 “뭐 사려고 그러니?”하고 반말로 묻는 장면이었고
존대어를 몰라 손님에게 그렇게 말하는 곳이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니
엄청 웃기긴 웃겼다.
요즘 알바를 하는 곳은 화장품을 판매하는 면세점이다.
집에 들어와선 그날 있었던 얘기들을 곧잘 한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왔었는데 일본인이냐고 물었다는 얘기하며
재미난 얘기들이 많다.
딸은 화장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화장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여러가지 만족으로
자신이 받는 돈의 가치를 높이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딸을 보면 일 또한 가치중립적이란 느낌이다.
그러니 일의 가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딸이 다니고 있는 대학을 다녔다.
그는 졸업은 하질 않고 중간에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루키도 학교 다닐 때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손님들을 유심히 관찰했고
나중에 소설을 쓸 때
그때의 관찰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가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크게 높였다는 생각이 든 대목이었다.
한국에서 알바를 하지 않고
일본에서 알바를 한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암암리에 노동을 천하게 보는 시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공부할 나이에 아이가 알바를 하고 있으면
그것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도
노동을 천하게 보는 시각을
암암리에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곤 하다.
정상적이라면 일하면서 공부하니 더욱 뿌듯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일 자체는 가치중립적인데
사회는 암암리에 일의 서열을 매겨놓고
어떤 일이 그 서열에서 낮게 위치하고 있으면
그 일을 하는 노동 자체를 천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이건 돈이건 항상 가치중립적으로 대하고
그 일과 돈의 가치를
개인들이 어떻게 채우고 풍요롭게 가꾸어가는지에 주목하는 사회가
아주 바람직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행히 일본 사회가 일과 돈에 대한 시각에서는
우리보다 더욱 가치중립적 측면에 가까웠던 듯 싶다.
사회적으로 잘못 재단된 시각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딸이 큰 짐 하나를 덜고 대학 시절의 알바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딸이 벌어온 백만원은 내게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딸의 백만원은 딸에서 끝나지 않고 내게서도 뜻깊은 돈이었다.
8 thoughts on “백만원의 월급”
참 대견한 따님 이네요. 사실 학생시절 경험하는 아르바이트는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되지요. 학생에겐 자괴감 없이 그런 일을 해볼 수 있는 특권이 있죠. 저도 아르바이트 많이 했어요. 과외, 각종설문조사원, 음식점 배달, 바텐더, 주물공장, 잡상인, 군고구마 장사… 힘들었지만 재밌었어요. 솔직히 대학생 신분이 아니라 정식 직업이었으면 그렇게 재밌게 일하지는 못했을것 같아요.
저는 알바한 것이 하차라고 창고에 짐 들어오면 그거 내리는 일이랑.. 세차.. 등등 하다가 몸을 다쳐서 그뒤로는 힘이 드는 일은 하지 못했다는. 말씀대로 정식 직업이 아니라서 좀더 여유롭게 일을 대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일 자체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아이가 좀 달리 보이더라구요. 태도에 따라 같은 일도 달라진다는 느낌이랄까. 많이 대견하더라구요.
일하고 피곤해서 쉬는 날은 잔다는 말씀을 들으니
참 따님이 장하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 사이 렌즈 얘기도 살짝 끼우신 쎈스…ㅎ
원래 약속했던 금액하고 차이가 나서
어제는 월급 명세표를 좀 보자고 했다고 하네요.
10만원 정도 더 나온다고 하더군요.
아홉달 고생하면 천만원은 모을 것 같습니다.
친구들하고 대화할 때도 많이 웃깁니다.
친구중 하나가 딸을 보고 너도 우리랑 똑같구나.
10분 공부하고 50분 쉬는 걸 보니 우리랑 똑같애라고 하니
딸은 공부는 원래 쉬어가면서 하는 거야라고 나오더라는. ㅋㅋ
한마디로 — 대견하다^^^^
딸의 초롱초롱한 눈만큼^^^세상을 바라보는 자신감도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아이에게도 전해주리다^^
한국사회의 불편한 모습들을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모습—
한마디로 멋있다^^^
거의 3년 동안 떨어뜨려놓고 살다가 요즘 매일 저녁상을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 재미가 아주 커.
이제 우리보다 더 어른같은 것 같어.
그저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이 부모 노릇 같다.
부모가 부족한 걸 아이가 잘 채우면서 자기 삶을 열어가는 듯.
이만육천십원 우수리도 넣으셔야죠.^^
아이가 일하는 걸 보는 부모 마음은 애틋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복합적이죠.
노동의 댓가로 돈뿐 아니라 여러가지를 얻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문지는 이제 품안의 자식이 아님을 스스로 선포하는 것 아닐까요?
일본 갈 때 이미 독립한 거 같아요.
가끔 달관한 사람처럼 보여서
어디서 도를 닦았나 싶기도 하고 그래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