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는 카메라의 눈이다.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자신이 본 세상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미지를 글자로 옮겨간 것이 상형문자라면
카메라가 렌즈를 통하여 받아들인 세상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진은
가장 구체적인 상형문자이다.
사진을 상형문자로 보면
카메라는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읽어준다.
카메라가 세상을 보고 읽을 때
바로 눈이 되는 것이 카메라의 렌즈이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카메라는
그 렌즈가 고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좀더 고급스런 카메라들은
렌즈를 갈아끼울 수가 있다.
흔히 DSLR 카메라라고 불리는 카메라가 그렇게 렌즈를 갈아끼운다.
그런 렌즈 교환식 카메라에선 렌즈가 달라지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나는 모두 여섯 개의 렌즈를 갖고 있다.
경험을 통하여 알게된 렌즈와 세상의 대화법은 렌즈에 따라 모두가 제각각이다.
50mm 단렌즈.
표준 렌즈라 불린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습과 가장 가깝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 그래서 표준이란 말이 붙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표준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반듯하다.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니 멀리 있는 것은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너무 가까이 있는 것은 뒤로 좀 물러나서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과 적절한 거리를 갖고 있으며 밀고 당기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치우침없는 균형감은 아주 뛰어난데 답답하다.
그러나 이 표준 렌즈는 매우 강력한 매력 하나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약간의 빛만 있어도
세상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세상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밝은 눈,
그것이 이 표준 렌즈의 강력한 장점이다.
그것을 가리켜 전문적으로는 F값이 1.4라고 말한다.
F값은 말하자면 렌즈가 갖는 눈의 밝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렌즈는 F값이 낮을수록 어둠 속에서도 총명한 눈을 반짝인다.
개중에는 1.2짜리도 있지만 흔치가 않고 가격이 거의 천문학적이다.
도덕적으로 완벽하여 항상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고
그리고 눈이 밝기 이를데 없어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살피는데 게으름이 없는 렌즈,
그것이 바로 표준 렌즈이다.
105mm 마이크로 렌즈.
얘는 표준 렌즈와 달리 호기심이 말할 수 없이 크다.
무엇이든 자세히 들여다 보려고 한다.
꽃을 보면 꽃속의 수술과 암술을 궁금해하며
벽에 금이 가 있으면 눈을 들이밀어 그 틈새를 엿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이 단점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가까이 보려하기 때문에
그 옆의 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그만큼 주변을 놓친다는 얘기이다.
말하자면 얘는 집중하는대신 주변을 넓게 보는 시각이 부족하다.
28-300mm 줌렌즈.
흔히들 고배율 렌즈라고 부른다.
얘는 밀고 당기기의 천재이다.
세상을 모두 다 안고 싶을 때는 멀리 밀어서
세상을 넓게 펼친 뒤 한눈에 살펴보고
어느 한 곳이 궁금할 때는
가까이 당겨서 그곳만 자세히 들여다본다.
얘에게 세상은 표준 렌즈나 마이크로 렌즈로 바라볼 때처럼
일정 거리에 떨어져 있지 않다.
세상을 멀리 넓게, 혹은 가까이 자세하게 보고 싶으면
얘는 세상을 밀거나 당겨서 눈에 담는다.
그런 측면에서 유연성이 매우 뛰어난 아이이다.
10-20mm 줌렌즈.
얘는 광각 줌렌즈이다.
한마디로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이 얘의 특기이다.
산과 바다를 모두 한눈에 담으려고 한다.
많은 것을 담다보니 항상 풍경들의 조화를 중요시한다.
말하자면 얘의 눈에 좋은 세상이란
한눈에 보기에 모두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연유로 무엇 하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데는 매우 취약하다.
집중력 부족이 심각한 문제인 셈이다.
18-70mm 줌렌즈.
얘도 28-300mm 렌즈처럼 어느 정도 밀고 당기기에 능하다.
그렇지만 28-300mm 렌즈에 비하여 세상을 좀더 선명하게 본다.
28-300mm 렌즈가 밀고 당기기에는 보다 능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선명도에선 18-70mm 렌즈를 따라가지 못한다.
사실 이 렌즈와 10-20mm 줌렌즈는
지금의 내가 사용하는 카메라와는 잘 맞질 않는다.
그것은 렌즈가 눈이고 카메라가 그 렌즈가 들어설 얼굴이라면
이들 렌즈가 눈으로 자리할 카메라라는 얼굴이
모두 똑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여도
렌즈가 자리하는 카메라는 그 얼굴이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큰 얼굴에 자리하면 이들 두 렌즈는 그만 좁쌀 눈이 되고 만다.
카메라의 세상에선 좁쌀 눈으로 보면 세상이 그만큼 작게 보인다.
10-20mm 렌즈와 18-70mm 렌즈는 사실은 내게선 좁쌀 눈이다.
10mm나 18mm로 세상을 보면 눈이 작아 주변이 보이질 않는다.
표시된 것은 10-20mm와 18-70mm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24-70mm 줌렌즈.
10-20mm 렌즈나 18-70mm 렌즈와 달리
이 렌즈는 내가 가진 카메라의 얼굴에 딱 맞는 눈이다.
얼굴과 조화를 이루는 정상적인 눈이다.
그렇지만 이 렌즈를 예전의 카메라에 달면 튀어나온 문어 눈알이 되고 만다.
그러면 졸지에 24-70mm가 아니라 36-105mm의 렌즈가 된다.
50mm 표준 렌즈도 예전의 카메라에선 표준이 아니다.
75mm 정도의 렌즈가 되고 만다.
카메라에 따라 같은 눈이 잘 맞기도 하고 돌출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좁쌀 눈이 되기도 한다.
카메라는 우리처럼 눈이 유연하질 못하다.
때문에 세상을 볼 때마다 보고 싶은 필요에 따라
때로는 반듯하게 균형을 잡고 밝게 볼 수 있는 눈을 끼워야 하며
또 때로는 밀고 당기며 세상과 힘 겨루기를 할 수 있는 눈을 끼워야 한다.
물론 코를 들이밀고 대상을 파고 들 수 있는 눈이 필요할 때도 있다.
카메라의 세상에선 얼굴은 하나이나 눈은 여럿이다.
그 눈들은 각각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대화한다.
난 종종 렌즈를 바꿔끼워가며 그 눈의 대화를 엿보았으나
요즘은 거의 24-70mm 렌즈 하나에 세상보는 눈을 맡겨놓고 있다.
가장 편한 렌즈이다.
마치 내 눈을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12 thoughts on “렌즈와 세상의 대화법”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거꾸로 글을 주욱 읽어 내려가다가 다시 되돌아와 여기 서 있네요.
렌즈에 대해 저는 참 아쉬움이 많습니다.
마이크로렌즈도 가지고 싶고 망원렌즈도 광각렌즈도 가지고 싶으나
여적까지 18-55 표준렌즈 달랑 한 개 밖에 없다는… ㅠ.ㅠ
때론 가까이 다가가면 민망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망원렌즈 갖고 싶던데요.
사진에 대해서는 느낌만 있을 뿐 저는 뭐라 말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네요.
보이는 모습에 혹은 보고 싶은 모습에 셔터 누르기… 기술보다 주위 환경이 사진을 만들어 주는… 좀 진화해야 할낀데요…
렌즈는 욕심내면 끝이 없는 듯 싶어요.
저는 단렌즈가 저렴해서 그냥 50mm로 한동안 찍었어요.
50mm가 사진은 정말 잘나오더라구요.
정말 갖고 싶은 렌즈는 85mm 렌즈인데 너무 비싸서 아직까지는 구경만 한번 했어요.
렌즈와 카메라에 대한 비유 때문에
좀 더 알게 되었어요.
전 s모드로 3년을 찍다가, ㅎ. 해님한테 가서 교정받고 지금은 해님이 해주신 대로 또
줄기차게 찍고 있어요…ㅎ 무식하면 용감하다고…제가 딱….
카메라란 것이 모르고 찍을 때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경우도 많은 듯 싶어요.
전 처음에 카메라샀을 때는 자동 플래시가 한낮에 터지는 바람에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역광이 되면 자동으로 터진다는 걸 한참 뒤에 알았죠. 물론 지금은 꺼놓고 쓰고 있지만요.
하도 복잡해서 카메라도 속속들이 알기가 어려운 듯 싶다는.
방금, 이멜을 봤어요.
플성 목소리 맞습니다.
이수성 딸이든 아니든 그 건 상관없다시네요, 그러면서 이지연 존재를 좋아한다는…
그 많은 일들을(이지연의 얘기)를 누가 믿겠냐는…
이젠 우린 할 일 다 한 거 같습니다.
동원님 말씀처럼…후에…만나게 되면 포옹이나 해줍시다.
고민을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 ^^
알겠습니다.
동원님, 어제 제 방에 비밀댓글을 주셨는데 보는 순간 울컥. 햇어요.
그 뭐랄까…우린 친구라 서로의 것들을 잘 챙겨 주잖아요?
안느가 뭐뭐…하고 가시를 보여 줬는데 잘 살펴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어젯밤…동원님 댓글 보고나서 플성께 멜을 용감하게 썻어요.
마지막 메일이라 적었어요.
그리고 몇 자(소상히는 적지 않고) 이지연은 이총리 딸이 아니다, 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나니 맘이 가벼워졌습니다.
손에 가시가 빠진 기분이랄까… 멜을 읽은 플성 몫은 그 분의 것이겠지요.
우린 (동원, 얄라님) 그래도 모른척 하진 않았죠? 그거면 된 거 같습니다.
이젠 맘이 홀가분해졌어요.
동원님, 친구란 뭘까…하고 고민했던 날들이 곪으며 터졌습니다.
우린 이제 예전처럼 아무일 없 듯, 그렇게 또 가면 되겠지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위의 카메라를 보며, 동안에 제게 건네 준 사진들…감사드려요.
유일하게(^^) 제 사진은 동원님께서 찍어주신 게 다네요.
감사를 … ^^
또 놀러갈께요.
Mac 챕터와 더불어 제가 좋아하는 카메라 렌즈 챕터네요.^^
저도 입문하고 싶긴 한데, 귀차니즘과 간편함에 익숙해 오래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무게는 안 다루셨는데, 배낭에 넣고 다니셔도 제법 어깨가 뻐근하실 것 같은데요.
처음에 DSLR 카메라사고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갔다 와서 찍어온 사진을 보는데 가슴 마구 쿵쾅쿵쾅 뛰더라구요. 이게 사진이 카메라가 좋아야 하는 거구나를 실감했더랬죠. 더 좋은 점은 카메라가 있어서 백담사를 가게 되었다는 점인 듯 싶어요. 카메라 없었으면 거길 갔었을까 싶거든요.
이게 그러니까, 사진 때문에 블로그하는 거랑 비슷하구만요.^^
승재씨도 카메라 사면서 블로그 시작한 걸로 알고 있어요. 기록이라는 것이 쌓이니까 그때부터 상당히 유용한 느낌이 많이 들어요. 사진은 기록이기도 해서 쌓아놓으니 여러모로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