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비가 내리는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간다.
의외로 재미난 장면들이 많다.
세 가지 장면을 건졌다.
투명 우산과 불투명 우산이 지나간다.
불투명 우산은
비를 피해야 한다는 데서
욕망을 멈춘다.
투명 우산은 비를 피하면서
동시에 내리는 비를
머리 위에서 모두 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다.
피할 수 있으면 됐다는 하나의 욕망과
피하면서 동시에 보고 싶다는 두 가지의 욕망이 지나간다.
우산을 가지지 못한 자는 반보가 급하고
우산을 가진 자는 반보가 여유롭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사이에는
걸음의 여유에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반보에 불과하다.
우산이 하나밖에 없다고 탓하지 않을 일이다.
비오는 날,
하나밖에 없는 우산은
둘의 우정을 그 우산 아래서 하나로 묶어준다.
12 thoughts on “비와 우산이 만들어낸 세 가지 풍경”
forest님은 알겠고 your tree님은 동원님이지요?
그럼 두 분은 부부?
ㅎ
자꾸 풍경 풍경 하셔서 제가 괜히….ㅎ
forest님이 숲같은 분이고..
저는 그 숲에 사는 나무 한 그루.
그런데 무슨 숲에 나무가 한 그루 밖에 없다는. ㅋㅋ
물론 지금까지는.
오늘의 글과 사진은 참 좋다.
난 사진을 읽어내는 이런 글들이 좋더라.^^
사진을 읽는 게 아니고 풍경을 읽는 거야.
그래서 풍경을 읽으면서 사진을 찍게 되는 거구.
사진만으로 글을 쓰긴 무지 어려워.
사진으로 나중에 글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 사진이 어떤 다른 것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
사진 자체만 갖고 글을 엮어내는 건 거의 불가능해.
그건 잘 찍은 좋은 사진들 들여다보고 있으면 거의 확실하게 느낄 수 있어.
세계적 작가의 사진이라고 해도 사진은 그냥 보는 것일뿐 글로 이어지지는 못해.
사진이란 것이 별게 아니란 얘기도 되지.
사진을 잘 찍고 싶으면 사진에 너무 집착하지마.
어느 시인도 그랬어.
시를 잘 읽어내고 싶다면 문(文)에 기대지 말라고.
자꾸 거꾸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좀 길게 말했어.
아! 사진이 아니라 풍경을 읽으신 거였군요. (끄덕끄덕)
풍경을 읽을 때 사진이 나오고 그 사진에서 이야기를 건져올리는 것이군요. (심하게 끄덕끄덕) ^^
맨눈으로 풍경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시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죠.
그밖에는 풍경을 읽어내려면 풍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해독해주는 판독기가 필요해요.
카메라는 말하자면 그 판독기 정도되요.
이상하게 카메라를 들지 않으면 풍경이 읽히지 않는데 카메라를 드는 순간 이제 풍경이 읽히기 시작하죠.
좋은 카메라는 해독력이 좀더 뛰어나요.
(만날하는 소리 또 반복이예요. 좋은 카메라하고 렌즈가 있으면 된다니까요. ㅋㅋ)
나도 오늘꺼에는 심하게 끄덕끄덕~^^
요즘 좋은 카메라와 좋은 렌즈를 사용해 보셨으니 어련하시겠슈.
사실 그동안 내가 즐겨 사용했던 50mm 단렌즈는 매우 질좋은 렌즈이지만 찍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는.
한마디로 싸고도 좋은 렌즈인데 찍기는 쉽지 않은 렌즈지.
그래서 네가 힘들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그 좋은 걸 같이 나가면 나는 한번도 만져볼 수 없다는 거.ㅠㅠ
담에는 너가 찍어.
번갈아 가며 찍자.
예전 카메라는 한번도 달라고 안하더니 이번 카메라랑 렌즈는 상당히 욕심내는 군. ㅋㅋ
이거 근데 찍어보니 무슨 마법의 렌즈 같다.
풍경의 독해력이 장난이 아닌 듯.
다른 건 저도 쳐다보고 있노라면 대강 생각이 미칠 것 같은데,
투명우산에게 저런 또 다른 욕망이 있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게 높은 곳에 살게 되니 베란다에서 누리는 또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1층에선 사실 이렇게 보기가 어렵거든요.
한번쯤 달리 살아보는 것도 좋은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