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이제부터는 나의 영역이니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를
두껍게 수직으로 세워놓고
속이 보지 않도록 밀봉해버린
완고한 경계선이다.
생명은 그 벽에선 자라질 못한다.
흙으로 덧칠을 해두어도
물들이 곧장 미끄러지는 벽에선
생명이 갈증을 풀 수가 없다.
우리는 그 밀봉된 경계선의 안에서 보이지 않게 산다.
길은 우리는 모두 빨리 가야 하니
우리의 앞을 비키라고 소리치며
아스팔트를 땅위에 두껍게 바르고
바퀴 앞에 납짝 엎드려 차들을 영접하는
속도 만능의 세상이다.
생명은 그 길에서도 자라질 못한다.
속도는 그 앞을 얼쩡거리는 것은
모두 밟고 지나간다.
생명은 벽이 수직의 높이를 버리고
길의 속도가 비켜간,
벽과 길의 사이에서 자란다.
우리는 가끔
벽을 버리고, 길을 비켜나서
산에 간다.
산에 가서 숲을 걷고 있을 때,
알고보면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푸른 생명이다.
2 thoughts on “벽과 길 사이”
사진을 보면서 어떤 글이 이어질지, 어떤 해석이나 느낌을 전해줄지 궁금했는데
자주 그렇듯이, 제 예상과 약간 다르게 전개되네요.
수직, 밀봉, 완고, 경계 같은 단어들이 전달하는 뉘앙스가 평소 잘 생각하지 않던
것들이라, 흥미로운 묵상이 됐습니다.
산에 가는 날, 걸어다니는 푸른 풀로 하루 살다가 오는 듯 싶더라구요.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풀들이 그래서 반가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풀을 도시에서 봤더라면 그런 생각 못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