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가 삶을 끌고 가는 사람들 – 임종진 사진전 반티에이뿌리웁 학교

Photo by Kim Dong Won
왼쪽이 임종진 작가
오른쪽은 열렬한 팬

경복궁 근처의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임종진 사진전에 다녀왔다. 전시된 사진에는 프놈펜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는 반티에이뿌리웁 학교의 사람들이 담겨 있었다. 지뢰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쳐주는 장애인 재활센터로 일종의 직업훈련소 비슷한 곳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반티에이뿌리웁이란 말은 비둘기 센터로 옮길 수 있으며, 학교의 이름에는 희망과 평화에 대한 바람이 담겨있다고 한다.
설명을 덧붙여 듣지 않아도 그냥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사진 속의 사람들이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빈번하게 등장하여 사람들의 보행을 대신해주고 있는 휠체어가 그것을 말해주고, 사진 속 사람들의 팔을 따라가다 보면 팔은 그 끝에서 손을 잃어버리고 뭉툭하게 마무리되고 만다. 목발로 발을 대신하고 있는 사람들도 사진 속에서 자주 부딪쳤다.
그렇다고 임종진의 사진이 반티에이뿌리웁 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의 장애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종진 사진전 – 반티에이뿌리웁 학교』는 웃음과 미소에서 시작하여 웃음과 미소로 마무리되고 있다.
실제로 작가가 권하는 대로 사진을 관람하는 동선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가장 먼저 휠체어에 앉아 두 손을 이마에 모으고 사진을 찍는 순간 작가에 내주었던 한 여인의 미소를 만나게 된다. 설명에 의하면 여인의 이름은 소피아라고 했다. 그녀로부터 시작된 미소는 사진을 둘러보는 동안 계속하여 반복되고 이어진다. 그러다 마지막 자리에서 우리들이 만나는 것 또한 웃음과 미소이다. 마지막의 사진 속에선 1년의 기술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떠나는 날, 졸업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졸업장을 흔들며 보여주는 웃음와 미소로 사진이 가득 채워져 있다. 처음 마주했던 휠체어 여인의 미소가 잔잔하게 사진에 담겨 있었다면 마지막에 마주한 졸업생들의 웃음은 이제 넘쳐나서 사진바깥으로 쏟아져 나올 듯한 태세이다.
사진을 보는 내내 내 시선을 가져가서 놓아주지 않은 것은 바로 사진 속 그들의 웃음과 미소였다. 그 웃음과 미소는 보통의 웃음과 미소가 아니었다. 그 웃음과 미소는 삶의 깊은 비밀 하나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그 웃음과 미소의 비밀에 관한 얘기를 한 시인에게서 얻어들은 적이 있었다. 그 시인의 이름은 김주대였다. 첫사진을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미 그의 시 한편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내가 턱에 걸린 휠체어를 밀어주자
휠체어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덜컥, 웃는다
휠체어를 밀어준다는 것이 그만
여자의 이마 안에 감춰진 미소를 민 모양이다
휠체어에 앉은 여자의
안면 쪽으로 밀려 나온 미소가 들어가지 않는다
미소가 앞장서 간다
휠체어를 미는 사내가
여자의 미소에 웃으며 끌려간다
미소가 웃음을 끌고 가는 언덕길 오후
—김주대, 「미소가 웃음을 끌고 가는 언덕길」 전문

어느 날 시인은 휠체어를 밀고 턱을 넘어가고 있는 한 사내를 보았나 보다. 턱을 넘어가기 위해 힘을 주면서 휠체어는 마치 놀이기구처럼 덜커덕하고 빠르게 턱을 넘었고 그 통에 휠체어에 앉은 여자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리고 그 순간 여자가 웃었다. 시인은 그 장면을 보면서 사내가 휠체어를 민 것이 아니라 “여자의 이마 안에 감춰진 미소를 민 모양”이라고 말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렇다. 휠체어에 앉아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 이후로 여자의 미소는 그녀의 이마 속으로 깊숙이 숨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녀의 삶에선 웃음이 걷혔을 것이다. 그런데 휠체어를 밀고 가던 사내가 용케 그 미소를 밀어내는데 성공한다. 아마도 여자의 미소를 바깥으로 밀어낸 것은 턱을 넘어갈 때의 빠른 속도감은 아니었을 것이다. 알고 보면 그것은 휠체어의 여자에 대한 사내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바깥으로 밀려나온 미소는 이제 다시 여자의 안으로 들어가질 않는다. 아니 이제는 오히려 미소가 앞장을 선다. 여자의 미소는 여자의 미소로 그치지 않고 사내의 웃음마저 불러낸다. 사내는 더이상 휠체어를 밀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여자의 미소가 사내를 끌고 간다. 휠체어를 밀고 가는 삶은 힘겹고 고달프지만 미소와 웃음으로 끌고 가는 삶은 행복하다. 그것이 어느 날 김주대 시인이 그의 시 한 편을 통하여 내게 들려준 값진 삶의 비밀이었다.
임종진의 사진 속에서 나는 그 삶의 비밀을 다시 만났다. 아니, 그의 사진 속 웃음과 미소는 더욱 값진 것이었다. 그것은 누군가 밀어내준 미소가 아니라 반티에이뿌리웁의 사람들이 스스로 바깥으로 밀어내고 끌어낸 미소이고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의 이마 속에 감춰졌던 웃음과 미소를 얼굴로 밀어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다리를 못쓰게 되어 휠체어에 앉게 되었을 때 소피아의 얼굴에선 웃음이 지워졌을 것이다. 그녀의 웃음은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사는 나라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생각하면 그녀의 웃음을 다시 바깥으로 밀어내줄 사람도 없었던 것이 그녀의 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그녀는 반티에이뿌리웁 학교에서 그녀의 내면 깊숙이 가라앉았던 웃음을 그녀 스스로 그녀의 얼굴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재봉틀이 드르륵드르륵 거리며 돌아가고 기술 하나를 배워 무엇인가를 만들어냈을 때, 마치 턱을 넘어갈 때 휠체어 위의 여자가 보여주었던 미소처럼 그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돌았을 것이 분명하다. 소피아는 자신의 휠체어를 스스로 밀어 턱을 넘고 스스로에 대한 사랑으로 미소를 삶의 앞에 세우기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했음이 분명하다. 기름때 묻은 손으로 기계를 풀고 조립하며 그들은 단순히 기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내가 되어 턱을 넘어가며 자신의 속에서 미소를 얼굴의 바깥으로 밀어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임종진의 사진 속 사람들의 웃음과 미소는 다시금 내게 중요한 삶의 비밀 하나를 일깨운다. 바로 그들이 장애를 밀고 가야 하는 고달프고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웃음과 미소를 앞에 세우고 삶을 그 미소와 웃음으로 끌고 가는 놀라운 사람들이란 것을.
임종진의 사진 속에서 만나는 반티에이뿌리웁 학교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장애인들이 기술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던 미소와 웃음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깥으로 밀어내고 그 미소와 웃음으로 삶의 행복을 끌고 가게 되는 학교이다. 사진을 보던 나는 그들의 미소와 웃음에 감염되어 목발을 짚고 서 있는 한 청년의 불편한 다리 앞에서도 그의 다리에 안타까워하기 보다 그의 환한 웃음에 감염되어 어느새 나도 웃고 있었다. 소피아가 잠시 재봉틀에서 손을 놓고 미소를 보여줄 때 나는 그녀가 평생 묶여 살아가야할 휠체어의 삶에 대해 안타까워하기 보다 어느새 그녀의 미소에 감염되어 나도 미소로 사진 속 그녀의 미소에 답하고 있었다. 그의 목발 한번 가져다 준 적이 없고, 그녀의 휠체어 한번 밀어준 적이 없는데도, 그는, 또 그녀는 그들의 웃음과 미소로 나까지 끌어주고 있었다.
반티에이뿌리웁의 사람들이 그들의 웃음과 미소로 나를 이끌고 가는 전시실의 저녁 시간이었다.

**전시회는 다음의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
-전시회: 임종진 사진전 – 반티에이뿌리웁 학교
-전시 기간: 2012년 6월 19일(화) – 2012년 7월 1일(일)
-전시 장소: 류가헌(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5분 거리)

*** 전시된 사진 중 작은 사진은
전시 마지막 날인 7월 1일의 늦은 오후에
작가의 사인을 담아 판매한다고 한다.
물론 수익금은 아주 좋은 일에 쓰일 예정이다.

6 thoughts on “미소가 삶을 끌고 가는 사람들 – 임종진 사진전 반티에이뿌리웁 학교

  1. ㅋ 시가 참 좋네요(ㅎㅎㅎ)
    근데 저기 사진 속 사진들(바퀴살 보이는) 멋지네요…
    작가의 표정도 참 수수하고요…그 옆에 여자분은 누구라요?

    1. 에쁜 여자 사진 작가였으면 시인을 딸려보내고 싶더만요.
      저 옆의 여자분요? 저도 잘 모르는 분이예요. 이상하게 잘아는 여자분 같은데 저런데 가면 모르는 분이 되더라구요. ㅋㅋ

  2. 이럴 땐 블로그도 아이패드의 어떤 e매거진들처럼 사진창을 누르면 관람자의
    동선에 따라 사진 슬라이드가 제공되면 좋겠다 싶어요. 그 미소들을 볼 수
    있게 말이죠.^^ 물론 전시장에 가서 보는 게 도리겠지만요.
    제목만 봤을 땐 무슨 반 에프티에이 사진전인가 싶었다는.. ㅋㅋ

    1. 아직 시간이 며칠 남았어요. 두 분이 토요일에 구경가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 이곳이 서촌에 자리잡고 있어 동네 구경도 재미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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