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함께 살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어긋난지 오래되었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지.
우리가 어긋났다는 것은 문이 닫혔을 때,
그것도 비스듬히 보아야 겨우 알 수 있으니까.
문이 닫혔을 때의 우리는
은밀한 비밀 같은 순간의 우리들인지라
거의 사람들 눈에 띄는 법이 없지.
우리는 하나인 듯 붙어 있지만
알고보면 사실 참 묘한 존재지.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열 때 가장 멀리 벌어지고
그렇게 가장 멀리 벌어질 때 우리의 세상이 열리곤 하지.
처음엔 우리들 자신도 혼동을 하곤 했었지.
우리들이 너무 죽이 잘맞아
우리의 세상이 열리는 줄 알았으니까.
우리가 죽이 맞으면 세상을 열 생각도 않고
우리를 닫아걸고 우리끼리만 지내게 된다는 걸 우리도 몰랐었지.
우리가 사실은 어긋난 사이란 것을 깨닫는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지.
그걸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도 문이 닫히길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지.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지.
우리가 사실은 어긋난 사이란 것을.
그때부터 우리는 닫혀있을 때보다
열려있을 때를 더 좋아하게 되었지.
우리의 세상이 열려있을 때는
누구도 우리가 어긋난 사이란 것을 눈치챌 수가 없지.
문이 닫히고 나도 정면으로 마주하면
우리가 어긋났다는 것은 전혀 알 수가 없지.
가끔 문이 닫힌 뒤에도
사람들이 우리의 앞을 어정거릴 때가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정면을 올려다보다 갈 뿐이지.
세상은 다들 어긋나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어긋나 있는 사이를 또 이상하게 보곤 하지.
그러다 보니 적당히 묻어두는게 세상살이에 아주 편하지.
이제 우리가 어긋난 사이란 것이 확연해지는 것은
우리 사이가 가장 크게 벌어져 문이 열렸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가장 가까이 붙어있을 때이지.
그러니 조금이라도 어긋남을 줄이려면
우리는 가급적 우리의 세상을 열어두고 지내는 시간을 늘려야겠지.
만약에 당신들이 똑같은 이유로 불타는 금요일을 입에 올리며
금요일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있다면
우리들이 같은 이유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것은
바로 야간 개장이지.
야간 개장은 어긋난 우리가 우리의 오늘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지.
우리가 이미 어긋난 사이이면서도 함께 사는 것은
세상을 열고 닫는데는 별 불편함이 없는데다
서로를 빈틈없이 맞추며 살아간다는 것이
원래부터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세월의 힘으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지.
말하자면 문이란 열고 닫으면 되는 것이지
꼭 맞을 필요까지야 있겠냐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지.
하지만 조심은 해야 한다고 하더군.
너무 어긋나면 열고 닫기도 어렵다고 들었거든.
그렇지만 우리는 문을 열고 닫기에는 아무 불편을 못느끼면서
적당히 어긋나 아직까지는 잘살고 있지.
2 thoughts on “어긋난 문”
문 철학 또는 개폐 철학도 나름 일리가 있는데요.
삐딱한 시선이 아니었으면 볼 수 없었을 장면을 잡아내셨네요.^^
어쩌다 이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문이 닫혀있더라구요.
문 세 개 중에 두 개가 어긋나 있더군요.
앞에서 보면 모두 멀쩡하고..
요거 재미나네 하면서 사진을 찍어두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