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과 16일의 이틀에 걸쳐 김장을 했다.
김장철만 다가오면 항상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올해 김장은 언제하느냐는 어머니의 걱정이다.
가끔 그 걱정으로 김장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머니의 걱정이 없으면 한해쯤 김장없이 건너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처지로는 김장을 해야
항상 어머니의 마음에서 걱정을 덜어드릴 수가 있으며,
김장을 하고나면 어머니는 말할 수 없이 편안해지신다.
이틀 정도의 시간이 반짝하고 나자 그녀가 김장거리를 사러가자고 했다.
그리하여 이틀 동안에 걸쳐 올해의 김장을 했다.
김장이 끝나고 나자 어머니가 아주 만족스러워 하셨다.
우리에겐 간혹 귀찮아지기도 하는 연례 행사지만
어머니에겐 마음의 위안이다.
올해는 주로 김장의 재료들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고 얘기를 꾸몄다.
11월 15일날 가락시장에 가서 김장 재료를 샀다.
배추 20포기가 그날 산 재료의 중심이었다.
사온 무우가 모자라 근처의 가게에서 중간에 하나 더 사와야 했다.
파도 좀 모자랐다.
큰묶음으로 한단이 추가되었다.
배추를 다듬고 쪼개어 절이는 것은 그녀와 어머니가 했다.
배추속으로 들어갈 양념 채소들을 씻는 것도 어머니가 하셨다.
올해는 내가 한 일이 별로 없다.
태양계에선 태양이 중심이지만
김장을 할 때 그 중심은 배추이다.
올해의 배추는 강릉 배추를 골랐다.
겉은 배추였으나 속은 노란 꽃이기도 했다.
꽃이 달콤하고 아삭했다.
쑥갓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올해 처음 알았다.
하나는 김장의 속으로 쓰는 것,
다른 하나는 갓김치용 쑥갓.
이것은 김장의 속이 될 쑥갓이다.
아마도 김장의 속으로 쑥 들어갈 것이다.
요것은 갓김치용 쑥갓이다.
색과 모양이 조금 다르다.
김장을 돕지 않았다면 아마도 쑥갓을
쑥이 갓을 쓰고 양반 행세를 하려들면서
세상에 나오게된 허위의식에 쩐 나물 정도로 오인했을 것이다.
김장 속에는 참 들어가는 것도 많다.
이것은 미나리이다.
미나리는 물에서 자라서 그런지 투명한 느낌이 난다.
맛도 투명한 느낌이다.
김치를 먹을 때 만약 내가 1퍼센트라도 투명해지는 느낌이 든다면
그건 이 미나리 덕택일 것이다.
파는 내 곁에 있을 때는 나의 눈물을 빼먹더니
배추 속으로 들어가선 배추의 맛이 되었다.
달리 파를 딱 꼬집어 구별해 낼 수는 없었으나
나는 내 눈물을 빼먹던 그 옛기억 때문에
복수라도 하듯 배추속으로 숨은 파맛을 자근자근 씹어먹었다.
무우는 색깔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예쁘다.
다리가 무우 닮았다며 못생긴 다리로 놀리는 것은
도저히 이해 불가이다.
다리는 먹지도 못하니
무우가 더욱 억울할 일이다.
김장은 육지 것들의 향연이 아니다.
그 향연에는 바다의 노래도 보태진다.
언듯보니 새우들이 와 있었다.
저렇게 많이 모인 것을 보니
새우는 합창으로 참가하는 것이 틀림없다.
찹쌀죽도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갓 맛이 흩어지지 않고
배추에 찰싹 달라붙어야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찹쌀죽은 맛도 붙여준다, 그것도 아주 찰지게.
나는 절인 배추를 물에 헹구어 씻는 일을 했다.
씻다 보면 항상 물어보게 된다.
언제까지 씻어야 되?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도 매년 똑같다.
맑은 물 나올 때까지.
정치도 똑같은 거 아닌가 싶다.
맑은 물 나올 때까지 좀 깨끗이 씻어내고
영 희망없는 것들은 청산해 버리고
그런게 정치 개혁이 아니겠는가.
김장에도 정치의 답이 있다.
속은 그녀와 어머니가 넣었다.
배추는 이미 속이 차 있는데도 또 속을 채운다.
우리는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하는데
배추는 꽉찬 듯 보이는 자리를 조금조금씩 벌려서
맛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더 이상 자리 없다 버티지들 말고
배추처럼 자리좀 벌려서 같이 살자.
그게 맛난 세상이 아니겠는가.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알타리도 담그었다.
알탄 기분이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계탄 기분이었다.
그럼 그 계가 닭계인가?
그냥 갓 담궈도 맛있는데
저 속에 또다른 숙성의 맛이 있다.
시간을 보태 또다른 맛을 빚어내는 것이
바로 김치가 선물하는 숙성의 신비일 것이다.
아마 잘 익어가면서 숙성이 되면
그때쯤 시간이 함께 씹힐 것이다.
우리는 잘익은 김치를 먹을 때
시간도 함께 맛본다.
김장하는 날의 뒤끝에는 만찬이 기다린다.
돼지고기 편육도 그 만찬의 하나이다.
막걸리에 동태탕과 굴전이 합류했고
김장끝의 식탁은 풍요롭기 이를데 없었다.
기분좋게 취했다.
마늘하고 고춧가루하며 각종 양념들아 미안하다.
너네들도 찍으려고 했는데
배추씻고 들어왔더니 이미 양념으로 버무려졌더라.
너네들의 얘기는 내년을 기약하자.
3 thoughts on “김장과 재료”
웬만한 동영상 다큐보다 훨씬 맛있게 보이는 김 감독님의 김장 중계입니다.
잘 익혀두세요. 한 번 먹으러 가겠습니다.^^
해가기 전에 한번 모여야 할 듯 싶습니다.
제가 술생각나면 불러서 동네에서 한두번 모이기는 했지요.
겨울이니 회에 막익은 김치로 저녁 한번 함께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
요리사님께 물어봤어야 하는 건데.
파는 사람이 그리 말하더군요.
김치를 내가 하면 김치 다큐는 누가 찍고.
다 자기 몫이 있는 법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