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12

올해는 거의 일년내내 딸과 함께 지냈다.
지난 해 휴학을 하고 국내에서 알바를 한 덕택이었다.
아이 하나로 집안이 꽉찬 느낌이었다.
지금은 두 달 동안 미국에서 보낸 어학연수에 이어
유럽을 여행 중에 있으며 내년 1월말에 돌아온다.
올해는 또 내 생애 처음으로 최고급 렌즈를 하나 장만했다.
역시 사진은 카메라와 렌즈가
8할을 차지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멀리 여행을 떠나진 못했다.
그러나 사진 생활은 계속되었으며
왜 내가 같은 대상을 앞에 두고도
여지껏 이런 느낌을 가지지 못했을까를 종종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진은 새로운 대상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기 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익숙한 대상이 내게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해의 마지막 날에 12장의 사진을 마련한다.
달마다 한장씩을 골라 12개의 얘기를 엮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월 21일 경기도 하남의 한강변에서)

1
우리는 많은 경우 실제가 아니라 느낌으로 산다.
그러니까 생명이 아니라 생명감,
말하자면 생명을 느낄 수 있는 감각적 현상으로 살아간다.
겨울이 밀어닥친 벌판은 황량하다.
그 황폐함은 그곳에서 생명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다고 그곳에 생명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무는 살아있고
심지어 하루해살이 풀도
그 풀이 떨어뜨린 씨앗으로 봄을 기다리며
생명의 잠재태로 그곳에 엄연히 살아 있다.
때문에 겨울이 거두어갈 수 있는 것은 알고 보면 생명감 뿐이다.
세상을 황폐하게 쓸어버리지만
겨울은 생명 자체에는 손을 대지 못한다.
겨울은 그러고보면 생명체들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봄에 우리들에게 안겨줄 생명감을 지키는 계절이다.
한강변에서 마주한 1월의 들판은 아직 황폐했다.
그러나 그 들판은 사실은 곧 그곳에서 피워낼 생명감을 손에 움켜쥔
무수한 생명들로 자욱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2월 19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 집 베란다에서)

2
시골살 때 따로 화분을 마련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화단을 마련한 집은 더러 있었다.
서울엔 집집마다 화분이 있는 듯 싶다.
화분에 꽃 하나가 피면 며칠간 호들갑을 떨며 좋아한다.
시골살 때 눈길도 못받았던 고양이 시금치가 화분에서 꽃을 피우자
반가움으로 치면 도가 넘는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환대를 받곤 한다.
서울은 자연이 결핍된 세상이다.
화분이 그 결핍을 메꾸려는 안간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연없이 살아가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리라.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3월 22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3
강은 강가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론 만족하질 못했다.
강은 종종 강가의 풍경을 그 품에 안고 싶어했다.
문제는 바람이었다.
강이 강가의 풍경을 조금이라도 안아보려 할라치면
바람이 강의 품으로 뛰어들어 자신과 놀아달라고 보채기 일쑤였다.
바람이 보채면 놀아주지 않고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바람을 곤히 재우는데 성공한 날,
드디어 강은 강가의 풍경을 원없이 그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가끔 자던 바람이 몸을 뒤척이긴 해도
길고 오래 잠에 드는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 강가의 풍경은 길고 오래 강의 품에 들 수 있었다.
풍경이 강의 품에 안겨있는 그런 날은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도 평온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4월 19일 경기도 하남의 산곡천에서)

4
한 가수가 노래했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세상의 엄마는 고개를 가로 저을지도 모른다.
그건 아니라고.
사람이 아니라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세상의 딸들이라고.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5월 1일 경기도 성남의 남한산성에서)

5
5월의 산은 푸르다.
생명감으로 가득찬 빛깔이다.
5월의 산에 가면 우리도 그 생명감에 물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6월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6
위의 것은 아래로 떨어진다.
중력의 힘 때문이다.
때문에 무엇을 위에 두고 마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머리 위에 거울을 두면
모든 것이 머리 위로 있어도 절대로 떨어지질 않는다.
데이트 중이던 연인이
머리 위의 거울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했다.
중력도 무력하게 만드는
자신들의 놀라운 사랑이었을 것이다.
머리 위의 거울은 연인들에게
사랑은 중력도 넘어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7월 17일 서울 천호동에서)

7
다리 굵다 부끄러워 하지 마라.
너의 몸 어느 부분이
그렇게 너를 떠받들고 한 세상을 살아 왔겠느냐.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8월 23일 서울 지하철 뚝섬역에서)

8
지하철이 오고가고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역은
항상 시끄럽고 복잡했으나
책을 읽고 있는 그녀에게로 눈을 돌리는 순간
세상은 조용해졌다.
그녀가 책을 읽고 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숨을 죽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9월 18일 경기도 하남의 미사리 한강변에서)

9
좀 늦거나 빠르고는 있어도 계절은 거의 어김이 없다.
가을을 앞두면 코스모스가
이제 곧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봄은 진달래나 개나리가 열어준다.
조금만 걸어도 등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은
여름이 코앞까지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징표이다.
눈발이 날리면 그건 겨울 소식이다.
계절이 있어 삶이 좀 견딜만하다.
모든 계절은 이 계절을 견디면
다음 계절은 좀 나아질 것 같은 희망을 배달한다.
해마다 어김없이 네 번의 희망이 사람들을 방문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0월 13일 강원도 영월의 잣봉에서 본 어라연 풍경)

10
영월에서 어라연의 풍경을 보려면 잣봉에 올라야 한다.
두 시간 정도 올라야 하는 등산길이다.
사람사는 세상의 이치도 똑같을지 모른다.
그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한 20년 등산길을 오르듯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쉽게 얻어지면
많은 발길 때문에 금방 망가져 버린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1월 14일 서울 명일동의 삼익아파트에서)

11
비워두었던 가지 사이의 하늘을 푸르게 채우며
여름을 넘겼던 나무는
하늘을 붉게 태우며 한해를 마무리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2년 12월 27일 서울 잠실의 한강변에서)

12
우리는 모두 계절을 앓는다.
특히 봄과 가을을 심하게 앓는다.
자연도 계절을 앓는다.
강변의 갈대숲은 가을이 오자
초록을 버리고 갈색으로 갈아입으며 계절을 앓았고,
바로 그 곁의 강물은 겨울이 오자
투명을 버리고 하얗게 얼어붙어 계절을 앓았다.
세상 모든 것이 심하게 계절을 앓는다.

6 thoughts on “Photo 2012

  1. 유난히 덥기도 하고, 춥기도 한 해였죠. 몇몇 순간, 공간에 함께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공간을 통해 느끼고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새해에도 건필, 건사(寫)를 기원합니다.

    1. 1월과 4월의 사진은 사실은 사시는 곳의 근처이고.. 5월하고 10월에는 사진찍던 곳에 함께 있었죠. 새해에는 말씀대로 더 많이 써보고 더 많이 찍어보려고 합니다. 배운 것으로 치면 저도 고마운 마음이 못지 않습니다. 가끔 뵙겠습니다. ^^

  2. 어이쿠….왜 진즉에 이런 사진 못만났을까요.ㅎㅎㅎ
    사진 담는 것도 좋아 하지만 사진 감상하는 걸 더 좋아 합니다.
    게다가 감성 돋는 텍스트가 있다면 더더욱.^^.

    사진 담아 놓으면 한해의 정리가 일목 요연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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