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이끼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3월 8일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 들어가는 길에서

눈은 이끼를 품안에 안고
젖을 물렸다.
젖나올 데가 따로 없는 눈은
제 몸을 녹여
한 방울 두 방울 물을 만들고
그 물을 이끼의 뿌리로
꿀과 젖처럼 흘렸다.
이끼가 젖을 반쯤 먹었을 때
눈의 몸은 절반이 사라졌고
이끼가 젖을 다 먹었을 때쯤엔
눈의 몸은
이제 하나도 남아있질 않았다.
젖을 물려 키운 이는 사라졌지만
품안의 젖을 먹고 큰 것들은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아
세상을 푸른 생명으로 물들였다.

6 thoughts on “눈과 이끼

  1. 시를 읽고 사진을 다시 보니, 문득 눈에도 얼굴이 있고 팔도 달려 있어 보이네요.
    처음엔 특유의 장난스러운 해석이다 싶었는데, 아니네요.
    제대로 볼 줄 아는 눈과 헤아리는 마음이 전해집니다.
    이런 걸 내공이라고 한다죠.^^

    1. 사진이 그냥 평범한 일상적 풍경도 유심히 들여다보며 생각하게 해주는 매력을 갖고 있는 듯 싶어요. 예전에 찍은 사진들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나구요. ^^

  2. 촛불은 타다 남은 제 흔적을 남기지만
    눈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완전한 사랑이란 가진 것 다 주고,
    이제 더 이상 내게 없는 것을 말한다.

    불완전 연소와 완전한 해빙.
    미진한 사랑과 완전한 사랑을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지금 창 밖엔 눈이 오고 있다.

    1. 생명의 흔적이 끊기는 계절에
      온산하에 촛불을 밝히듯 오는 것이 눈인지도 모르겠어요.
      눈이 오면 환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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