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만에 청량리역을 찾았다.
강원도 영월에서 자란 내게 서울은
서울역이 아니라 청량리역이 종착역이었다.
때문에 서울을 드나들 때마다
내가 서울에 도착하고 서울을 떠나는 곳은
언제나 청량리역이었다.
청량리역과의 인연은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청량리역에서 걸어서 가도
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의 대학을 다녔다.
대학 다니는 4년 동안 청량리역을 수없이 구경했다.
타고 다니던 버스의 종점이 청량리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종점에서 타야 앉아서 집까지 갈 수 있었기에
종종 청량리역까지 걸어내려가 버스를 타곤 했었다.
그 시절의 청량리역은 당연히 지상에 있었다.
20여년만에 다시 찾은 청량리역은 지상에 있지 않았다.
지금의 청량리역은 허공으로 높이 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상당히 높이 올라가서야
청량리역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사실 역보다 롯데 백화점의 덩치가 훨씬 커서
역은 한쪽으로 찌그러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역은 예전에 기차가 다니던 철로의 위,
그 텅빈 허공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상의 역이 이제는 허공의 역이 되었다.
허공의 역이 되어버린 청량리역을 들어갔다 나왔더니
그때부터 주변으로 보이는 높은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도
모두 허공의 집으로 보였다.
땅이 부족한 도시에선
이제 지상에만 집과 건물을 짓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때문에 도시에선 허공에 집을 짓는다.
높이올라가도 끝을 모르고 집을 올릴 수 있는 허공만이
원없이 집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그러고보니 이제 아파트로 이사를 한 나도 허공의 집에 산다.
옛날에는 역을 들어서서 기차표를 끊고 나가면 곧바로 철로였으나
이제 허공의 역이 되어버린 청량리역에선
그 철로가 역의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였다.
20여년만에 찾은 청량리역은 허공의 역에서 나를 맞아주었고,
그 때문에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도시에선 사람들이 수많은 시간을 허공에서 산다.
공중으로 붕 뜬 허공의 삶이 도시를 사는 우리들의 삶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불안할 수밖에 없는 삶이다.
춘천으로 떠나는 열차의 낭만으로 가득차 있곤 했던 지상의 청량리역이
거대한 롯데백화점의 한켠에서 허공으로 떠 있었다.
4 thoughts on “허공의 역”
소위 민자역사군요 ㅠㅠ.
역건물 공짜로 짖는 대신에 역사 지상공간을 제공해주는 댓가로,
백화점은 비싼 부지 구입대신에 역사 건물과 백화점 건물 동시에 건축하면
이런 역위에 공중에 붕붕 떠있게됩니다.
아마 영등포역사도 마찬가지고..이런역이 종종 있습니다만,
역은 역으로써의 기능이라기 보다는 기형적인 쇼핑공간이 되어 버렸죠.
유럽엘 가보면 역사 건물이 수백년을 이어오면서 건물 자체의 조형미와 미학적인 스토리를 가지는게 보통인데,,,이나라 사람들의 역사 건물은 당체…허허로운 상업화의 화려하지만 영혼이 초최함만 들어서 있죠.
여튼 한국이란 나라의 상업적 얄팍함이란 ,,,,ㅠㅠ
원래의 역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 많이 서운하더라구요. 어딘가에 보존은 해놓은 것인지.. 설계를 잘하면 원래의 건물을 그대로 두면서 공존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영등포도 한번 가봐야 겠네요. 도대체 얼마나 바뀐 것인지..
서울 사람인 저희도 경기도나 강원도를 가려면 우선 찾게 되는 역이었죠.
지하철이 안 다니던 땐 참 멀게만 느껴졌는데, 지금은 사통팔달 지하철망이 연결해
주는 바람에 생각보다 가까운 곳이 됐죠. 아주 가끔씩 지하철로 가 보곤 하는데,
정말 역 풍경이 낯선 딴 곳이 되고 만 것 같습니다.
런던은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고 하던데.. 우리는 20년전 기억인데도 거의 모두 사라져버린 느낌이더라구요. 20년 지나면 여기서 또 변할까 그것도 궁금하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