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강은 깊이를 갖고
얼어붙은 겨울의 강은 두께를 갖는다.
어릴 적 물이 맑은 강원도 영월에서 자랐던 나는
강이 깊이를 가질 때면
그 깊이에 몸을 담그고 놀았고
강이 두께를 가지는 계절이 오면
그 두께를 밟고
강의 한복판을 썰매로 미끄러져 다니며 놀았다.
두께의 강은 깊이의 잠복기였다.
가끔 두께가 얇을 때면
잠복해 있던 깊이가 급성 바이러스처럼 일어나
두께를 걷어버리고 두께가 꺼진 자리로
사람을 삼켜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두께가 한창 두꺼울 때는
강의 한복판에서 발을 굴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개 깊이의 강을 기억하지만
계절을 갖는 곳에서의 강은
계절따라 깊이와 두께를 오고 갔다.
어릴 때 겨울이면 어김이 없던 그 두께의 강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날씨가 며칠 동안 영하를 크게 밑돌면서
간만에 그 두께의 강을 다시 만났다.
겨울강이 내주는 두께의 미덕을 빌려
오랜만에 강의 깊이를 발아래 밟아보았다.
어릴 때는 얼음 위에서 노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 나이 들어 그 겨울의 강에 다시 서보니
겨울은 강이 내준 두께를 밟고
깊이 위에 서 볼 수 있는 계절이었다.
4 thoughts on “겨울의 강”
한강을 밟아보셨군요.^^ 저희 어릴 땐 한강에 꽤 큰 나룻배가 다녔는데,
거센 물살에 움찔했던 기억이 나네요. 깊이 대신 두께를 주는 요즘 같은 한겨울이면
걷거나 썰매를 탔는데, 가끔 두께와 깊이가 만나는 데서 일이 벌어지곤 했지요.
찻길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저렇게 발자욱을 남겨봐야 할 텐데, 올겨울은 다 갔죠?
상당히 깊이 들어간 발자국이 있어서 그 발자국 따라 슬슬 들어가 보았죠.
화천 정도 가니까 겨울에는 얼음 위로 차도 다니더라구요.
얼어버린 강의 겨울 두께…
흐르는 강의 여름 깊이…
두께외 깊이…흡사 수학이 글로 표현되면 이런거네요..
오늘도 사진과 글이..쏙쏙!~~감사합니다~^^^
엣날 같았으면 여기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