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시반.
집으로 가는 버스가 천호대교를 건넌다.
바깥 공기는 차고 시리다.
버스 속은 따뜻하다.
사람들이 고개를
아래쪽으로 낮게 묻고 불편한 잠을 청해도
냉기를 날카롭게 세워
잠을 찔러보는 추위의 심술은
버스 속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바깥은 추웠고
버스 안은 따뜻했다.
그러자 우리의 숨결이 차창에 엉겨붙어
창이 뿌옇게 흐려졌다.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 밤에도 우리의 시야에 선명했던 도시는
따뜻하고 편안한 버스 속에선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을 외치는 것들만 선명할 뿐
이제는 온통 뿌연 세상이다.
따뜻한 버스 속에서
숨을 쉬면 쉴수록 세상은 뿌옇게 흐려졌다.
언제나 그렇듯 길동에서 버스를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바람의 냉기가 서늘한 세상으로 나서자
뿌연 세상이 그제서야
제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발가벗고 서 있었다.
종로에서 길동까지 오는 동안
나는 편안하고 따뜻했지만
숨을 쉴 때마다 내 숨결이 창에 엉겨붙어
세상이 흐려졌다.
아마도 지하철을 타고 들어왔더라면
편하고 따뜻한데다가 빠르기까지 했겠지만
그나마 흐릿한 세상도 볼 수 없었지 않았을까 싶었다.
세상이 춥고 어려울 때,
너무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 있으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이 발등의 불인 사람들을 어쩌랴.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세상은 춥고 어려운데
바깥으로 나와 세상을 살펴보고 돌봐야할 자들이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 죽치고 앉아
5년의 세월을 저희들 끼리만 히히덕 거리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랴.
5년으로 족한 줄 알았던 그 세상이
다시 5년을 더 달리기 시작했다.
가다가 한겨울 추위가 매서울 때
그들의 버스에 펑크나 났으면 좋겠다.
4 thoughts on “숨결이 엉겨붙은 뿌연 차창”
빵꾸나길 바라는 버스 번호를 알려주세요.
혹시 승차하면 그네까지 타고 논다는 그 버스인지요?
바로 그 버스죠.
번호는 삼공-연장노선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일찍 잠을 청해 심야버스, 심야식당 같은 데 익숙치 않은
저로선 신기한 풍경입니다.
따뜻하고 편안한 곳을 찾고 즐기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지나치면 세상이 보이지 않아 꼴통이 되고 화석화 된다는 경계를 삼아야겠습니다.
택시를 탈 때와 달리 버스를 탈 때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서있는 사람의 피곤함도 눈에 들어오고…
이 버스는 종로에서 밤 1시반에도 탈 수 있는 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