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의 춘당지 풍경

창경궁에는 연못이 하나 있다.
연못의 이름은 춘당지이다.
창경궁이 닷새 동안 밤에도 문을 연다고 하여
오후 늦게 궁을 찾아 해가 진 뒤까지 머물렀다.
춘당지의 풍경이 가장 좋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아침 나절에 빗발이 날렸다.
비가 저녁 때까지 계속된다는 얘기에
사실 창경궁 간다는 계획을 접고 말았다.
하지만 비는 예상과 달리 금방 걷혔다.
비가 지나간 뒤의 하늘은 평소보다 훨씬 맑았다.
마치 비가 하늘을 씻고 지나간 듯했다.
비에 씻긴 창경궁 춘당지의 하늘도 마찬가지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구름은 원래 하늘을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아래 연못이 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구름 하나가 하늘에서부터 비스듬한 각도로
창경궁의 연못을 향하여 다이빙을 했다.
완벽한 대칭 다이빙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바람이 자면 연못의 물은
종종 수면을 경계로 삼아
세상을 접었다 편다.
물이 풍경을 접었다 펴면
수면을 경계로 같은 풍경이
위아래로 서로를 마주본다.
풍경은 수면을 경계로 마주보면
훨씬 더 아름답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수면은 때로 물이면서 거울이다.
하지만 위험한 거울이다.
너무 들여다보다 홀리면
빠져죽기도 한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이다.
나무는 뿌리가 지상에 묶여
물에 뛰어들지는 못한다.
이 맘 때의 나무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더더욱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남들만 볼 수 있다면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해도
그 아름다움은 너무 잔인하다.
때로 아름다움은 자기 확인을 필요로 한다.
철쭉이 자리를 잘 잡았다.
잔인한 아름다움을 피하여
마음껏 자기 확인을 할 수 있는 자리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연못의 섬과 지상의 풍경이
마치 복제하듯
그 풍경을 물 속으로 내렸다.
원래 복제를 하면
기계적인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그런 복제의 냄새는 하나도 나질 않았다.
기계 복제로는 꿈도 못꿀
자연 복제의 위력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오늘은 연못의 잉어들이
나무를 타고 올라
구름 사이를 헤엄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하늘을 지나는 구름도
창경궁의 연못 춘당지를 거울로 이용한다.
구름은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지나가는데
주변의 나무와 꽃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자뻑으로 보면
나무와 꽃이 증상이 더욱 심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야간 개장으로 밤이 되면
연못가의 길을 따라
청사초롱에 불이 들어온다.
걷는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낮엔 그냥 산책로였으나
밤엔 불이 밝혀준 빛의 길이 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바람이 청사초롱을 흔들고 지나갔다.
바람도 연못을 한바퀴 돌고 있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3년 5월 2일 서울의 창경궁에서

연못이 있으면
때로 모든 것이 두 개가 된다.
하나는 바깥에 있고,
똑같은 모습의 또다른 하나가
연못 속에 있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내게 있으나
그 나는 또 누군가의 마음에 담겨 있을 것이다.
춘당지의 연못가를 따라 걷다보면
누군가의 마음에 담긴 내가 보일지도 모른다.

2 thoughts on “창경궁의 춘당지 풍경

  1. mirroring, diving, copying 같은 단어들이 주루루 떠오르게 하시네요.
    작은 호수와 연못이 이리 좋은 일을 하다니, 상을 주어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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