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대선기간 중에
김용판 전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공작 의혹이 제기되자
12월 16일 밤 11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댓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수사 결과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만약 그때 김용판이 사실대로
댓글이 발견되었고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박근혜가 당선되었을까.
이런 의혹의 시선으로 보면
박근혜는 거짓으로 당선된 대통령이며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으로
대통령의 자리를 강탈해간 대통령이다.
그것을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있다.
8월 17일 토요일엔 시청앞의 서울광장에서 모였다.
한 청년이 서울광장의 잔디밭에 앉아 있다.
촛불집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청년이 기다리는 것은 단순히 촛불집회가 아니다.
청년이 기다리는 것은 국가기관의 부정한 개입없이
공정하게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민주주의 세상이다.
엄마와 아들이 만화책을 읽으며
촛불집회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는 알고 있다.
재미나게 즐기면서 끈질기게 모여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와 아들이 촛불집회를 기다리고 있다.
아들은 청량음료를 하나 마시는 중이다.
아들에게 올 민주 세상은
그 어떤 음료보다 더 청량할 것이다.
엄마와 딸이 촛불집회를 기다리는 동안
딸은 엄마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둘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무엇이 그리 재미난지 깔깔대고 웃었다.
보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모두가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촛불 집회는 집회 자체가 민주주의 세상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촛불 집회에 나온 가족에게
촛불 집회는 패밀리 비즈니스이다.
물론 투자는 민주 세상에 한다.
한 어머니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촛불집회에 나왔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애가 뭘 안다고 이런 자리에 데리고 나오냐고.
모르는 소리이다.
엄마는 소풍가듯 아이들을 데리고 집회에 나온다.
민주주의 세상에서 집회는
즐거운 소풍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좋은 엄마를 둔 아이는 몸으로 그것을 체험한다.
세상이 어둡고 암울하여
민주주의가 길을 찾지 못할 때
한국에선 사람들이 촛불을 켠다.
처음엔 한사람이 켜지만
나중에는 그 하나가 수만명의 촛불로 번진다.
지금 세상은 암울하다.
그러나 촛불 하나를 밝히면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
많은 사람이 함께 밝히면
희망이 더더욱 커진다.
민주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모이면
처음보는 사람도 모두 촛불로 하나이다.
사람들은 그냥 촛불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밝힌 촛불을 머리 위로 치켜든다.
촛불이 일제히 일어선다.
사람들의 민주에 대한 열망으로
촛불은 우리들의 머리 위로 날아오른다.
그때가 장관이다.
언제부터인가 촛불은 컵에 담겼다.
바람을 막기 위해서이다.
케익도 컵에 담길 때가 있다.
촛불은 컵케익보다 더 달콤하다.
8월 17일 토요일엔 4만의 촛불이
서울광장에 모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촛불이 전부가 아니다.
오지 못한 사람들이 보낸
마음의 촛불이 있다.
나도 혼자였지만
서너 사람의 마음과 함께 했다.
촛불을 두 개 밝힌 분들도 계시다.
열망이 너무 뜨거워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모녀는 둘이 촛불 하나를 밝혔다.
둘의 마음이 똑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때 우리는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그래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이었다.
그러다 우리는 촛불이 되었다.
촛불이 된 뒤에도
여전히 바람과 우리의 관계는 걸끄러웠다.
바람은 촛불을 꺼트리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촛불은 촛불을 서로 나누며
바람이 꺼트린 촛불도
모두 다시 촛불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하여 촛불은 어떤 바람도 꺼트릴 수 없는 촛불이 되었다.
그 촛불이 이제는 파도가 되고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파도를 일으키며
촛불이 자리한 광장을 거대한 물결로 휩쓸고 지나간다.
곧 촛불의 파도가 한국의 전역을 휩쓸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면 민주 세상이 다시 밝아올 것이다.
8월 17일 서울광장의 촛불 집회에서 나는 그 파도를 보았다.
8월 17일 서울광장의 촛불집회는
마치 록 페스티발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가수 이수진이 “고래사냥”을 불렀고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합창하며 들고 뛰었다.
우리는 민주 세상이 축제가 되리란 것을
모두가 예감하고 있었다.
촛불을 밝힌 우리의 아이야.
지금은 촛불로 민주 세상을 열어야 하지만
네가 크고 나면 그때의 세상에선
오래전 촛불의 전설을
네 아이에게 두런두런 들려주며
촛불을 기념하는 축제의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이번 주의 촛불 집회는 토요일이 아니라
8월 23일 금요일, 서울광장에서 열린다.
4 thoughts on “촛불 단상, 2013년 8월 17일 토요일 시청앞 서울광장”
뙤약볕을 무릅쓰고 모인 한 분 한 분이 다 귀하게 보입니다.
이른 시간부터 현장을 살피고 마음을 더해 남겨주신 생생한 글과 사진들로
현장감은 물론이고, 그 너머에 있는 촛불들의 시원까지 느끼게 됩니다.
다행이 날씨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모두가 이제 날씨는 살만하다고 했거든요.
혼자와서 앉았다가 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런건 많이 알려야 합니다..
너무나도 뻔한 거짓말에 대하여 지적하지 않는다면,계속 거짓이 반복될거니까요..
더운날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서울경찰청장 정도만 해도 이미 크게 성공한 건데
도대체 무슨 성공을 바라고
자기 지위를 이용해 정권에 줄을 대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인간의 욕심에 회의가 느껴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