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 시와 단상 2

Photo by Kim Dong Won
시인 이원

– 시의 구절들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 의미의 제한을 받는다. 때문에 시를 읽을 때는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할 수가 없다. 시 한편이 전체적 맥락이 되기도 하고, 때로 시집 한 권이 어떤 맥락을 시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 전체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싯구절을 따로 떼어내고 싶은 욕망을 느끼곤 한다. 맥락 속에 있을 때는 맥락이 제한하는 의미를 살피기 위해 눈치를 보아야 하고 의미가 잘 짐작이 되지 않을 때는 머리를 싸매게 된다. 때문에 싯구절을 살살 꼬드겨서 가출을 충동질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렇게 하여 맥락을 버리고 뛰쳐나온 싯구절을 만나면 나는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싯구절과 논다. 이원의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를 읽으며 싯구절과 놀았다.

p.3 – 이원은 그의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돌이킬 수 없는 한순간이 있었다”고 말한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란 말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죽음이다. 물론 그 말이 실제로 죽음을 지칭한 것인지는 분명치가 않다. 시집을 읽어가면서 어떤 죽음의 이미지들을 빈번하게 만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시적 이미지들은 분명한 사실적 정보를 건네주질 않는다. 누군가 돌아가셨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었다라고 적으면 보다 사실이 분명해지지만 시인은 그렇게 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한순간”이 죽음 속에 밀봉되는 것을 견디질 못한다. 우리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세상이 좀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게하면 실제로는 어떤 사실이 그 분명한 정보속에 밀봉이 된다. 사실이 하나의 정보로 밀봉되면 그 사실에서 꼼짝을 못할 수도 있다. 「시인의 말」에 적어놓은 시인의 얘기들은 하나 같이 밀봉되어 있질 않았다. 밀봉되지 않은 시인의 말은 내 머릿속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p.3 – 이원은 또 그의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거울을 볼 수 없었으므로 거울을 들여다봤다”고 말한다. 이 진술은 앞뒤가 맞질 않는다. 거울을 볼 수 없었다고 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기 두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거울을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일까? 내가 고쳐쓴 문장은 앞뒤가 부딪치지 않는다. 혹시 그 당시 시인의 마음은 이렇게 매끄럽게 흘러가는 문장에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도저히 거울을 들여다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그런 상황인데도 마치 아침이 오면 해가 뜨듯이 어느 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 아니었을까. 앞뒤가 맞지 않는 그 모순의 상태를 문장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문장의 앞뒤가 부딪치는 모순의 문장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시인의 문장은 모순의 문장이라기 보다 우리들이 문장을 통하여 시인이 처한 모순을 몸소 겪게 되는 체험의 문장이다.

p.9 – 이원은 그의 시 「시즌 오프」에서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들렸다/아이들은 어둠 속에 없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를 그대로 읽지 않고 시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 일이 있은 뒤로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곤 했지만 어둠 속을 살펴보면 아이들은 없었다로 읽었다. 그 일은 어떤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같은 시에서 또 그는 “얼룩을 따라 벽이 번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문장도 나는 시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얼룩을 따라 벽이 번지는 듯한 환시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로 읽었다. 때로 시는 벌어진 일을 분명하게 보여주질 않는다.

p.10 – 이원은 「의자와 노랑 사이에서」라는 그의 시에서 “새는 긴 칼자국”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새가 날아갈 때마다 허공이 잘릴 것이다. 그러면 보이지 않지만 허공은 상처 투성이가 된다. 새들이 우르르 떼로 날아오르면 허공은 난자당한다.

p.10 – 이원은 「의자와 노랑 사이에서」라는 그의 시에서 “해가 타들어가며 서쪽을 열 때”와 “맨발이 달빛을 꾹꾹 밟을 때”의 어떤 시간대를 말한다. 나의 세상에선 해가 기울면서 맞게 된 저녁 시간과 맨발로 돌아다닌 달빛비치는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사실은 같은 세상인데 시인의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 같다. 시인은 무료하고 지루한 우리의 세상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뒤바꾸어 놓곤 한다.

p.14 – 이원은 그의 시 「책을 펴는 사이 죽음이 지나갔다」에서 “금요일이 지나면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지나면서 또다시 화요일이 오는 것을 믿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사실 믿을 수가 없다. 금요일날 술퍼마시고 다 죽었을 것 같은데 화요일까지 오다니.

p.14 – 이원은 그의 시 「책을 펴는 사이 죽음이 지나갔다」에서 “교차로의 좌회전 신호를 따라 가도 사방이 다시 들어선다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왼쪽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또 사방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틀었다고 방심하지 마시라. 왼쪽으로 틀은 방향에서 사방을 만나고 그곳에서 세상이 모두 우측으로 돌아선 일을 우리가 근래에 겪었다.

p.18 – 이원의 시 「해변의 복서 1」을 읽다보면 시인은 “아무도 없는 해변”에 서 있다. 그 “해변에는 몸들이 떼어 놓고 간 발자국”만 무수하다. 해변을 따라 조깅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알고보니 빠른 속도로 발자국을 떼어놓는 중이었다. 떼어놓은 발자국을 파도가 줏어가기도 했다.

p.23 – 이원은 그의 시 「그리고 바다 끝에서부터 물이 들어온다」에서 “빛을 빠져나온 것들은 모두 칼질이 되어 있다”고 말한다. 난해하게 들리지만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잘 익은 과일을 딴 뒤에 접시에 깎아 놓은 장면을 상상하시면 되시겠다.

p.25 – 이원은 그의 시 「브로콜리가 변론함」에서 “부끄러워요는 치욕스러워요와/같은 말”이라고 얘기한다. 부끄럽거나 치욕스러우면 우리는 어딘가로 숨고 싶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쥐구멍이지만 사실 쥐구멍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이원은 그래서 자기의 안으로 숨는다. 시인은 “부끄러워/얼굴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고” 또 “몸 안으로 팔을 집어넣”는다. 우리는 부끄럽고 치욕스러울 때 우리 안으로도라도 ‘사라져버’리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안으로 숨을 때면 부작용도 있다. “얼굴이 꽉 차서 속눈썹 하나/깜빡여지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p.32 – 이원은 그의 시 「반쯤 타다 남은 자화상」에서 “음계 솔. 파도를 계속 놓치는 중”이라고 말한다. 무슨 얘기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음계 파와 도를 쳐야하는데 계속 솔만 치고 있었다는 것일까. 어쨌거나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음계 파와 도를 연이어 계속치면 파도가 칠까를 생각했다. 또 반대로 파도의 음계는 파와 도일까도 생각했다. 이건 나중에 음악하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겠다.

p.34 – 이원은 그의 시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에서 “어쩌자고 길부터 건너놓고 보니 가져가야 할 것들은 모두 맞은편에 있다”고 말한다. 그 길이 한번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이면 정말 난감할 것이다. 이 구절을 읽는데 문득 그 마지막 길을 건너기 전에 미리 조금씩 준비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살면 미리 조금씩 준비하고 길을 건널 수 있기에 호상(好喪)이라고 부르나 보다.

p.34 – 이원은 그의 시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에서 “첫 페이지는 비워둔다/언젠가 결핍이 필요하리라”라고 말한다. 그러니 시인의 말에 따르면 그 비워둔 첫 페이지는 언젠가 우리들에게 필요할 결핍이다. 그저 모든 것을 꽉꽉 채우면서 충만을 쫓아간 끝에서 언젠가 우리에게 필요하게 될 것이 텅빈 빈자리라니.

p.38 – 이원은 그의 시 「동그라미들」에서 “날 때는 발을 잊는 것//날 때는 날개를 잊는 것”이라고 말한다. 허공을 걸으려 해선 안되니 발을 잊어야 할 것이고, 날개를 의식하면 방향을 놓칠테니 날개마저 잊어야 할 것이다. 보행의 습관을 버리고 방향에 집중할 때, 그때 난다.

p.41 – 이원은 그의 시 「인간의 기분, 빗금의 자세」에서 “죽은 사람이 몸속에 있다/죽은 사람을 다시 죽일까 내 손으로/지금부터라도 죽은 사람을 잘 묻어줄까/그 또한 내 손으로”라고 말한다. 때로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삶속에 살아있다. 죽음마저도 삶의 손에 달렸다. 그러니 살아있는 자들이 잘해야 한다.

p.49 – 이원은 그의 시 「그림자들」에서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라고 묻는다. 내가 기분좋다고 뛰어오를 때 그림자가 잠깐이지만 외로워지는 구나. 앞으로 점프는 삼가야 겠다.

p.50 – 이원은 그의 시 「일요일의 고독 1」에서 “비둘기 두 마리가 나란히 땅에서 하늘로 수평을 끌어올리며 솟구쳤다”고 했다. 조심해, 비둘기들아! 똑같은 높이로 일정하게 날아올라야 해. 앞서거니 뒷서거니 날아오르면 절대로 안돼. 지금 수평이 마구 기우뚱거리고 있어.

p.51 – 이원은 그의 시 「일요일의 고독 2」에서 “열린 창의 끝에서 흰 커튼이 양 갈래 머리처럼 흔들린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커튼을 양쪽으로 젖혀 가지런히 창을 열어두었나 보다. 우리 집의 그녀는 종종 커튼을 좌우로 걷질 않고 가운데로 말아서 묶어두곤 한다. 이 시를 읽고 난 뒤 그것을 보자 우리 집에선 커튼이 양 갈래 머리를 하지 않고 그냥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p.51 – 이원은 그의 시 「일요일의 고독 2」에서 “뼈의 안쪽에서 뼈는 무엇을 붙잡고 있을까”를 묻는다. 평생 나는 내 뼈를 붙잡고 살아왔을 것이다. 갑자기 붙잡을 것 하나 없는 고독속에서도 매달리는 내 살들을 모두 받아준 내 뼈에 감사하고 싶어진다.

p.53 – 이원은 그의 시 「일요일의 고독 3」에서 “그늘은 시간을 직선으로 자른다”고 말한다. 아마도 나무의 그늘이 아니라 그림자의 경계가 일직선으로 흐르는 건물의 그늘이었나 보다. 그 그늘의 경계가 늘어나거나 줄어들면서 시간이 흐른다. 그늘이 시간을 직선으로 자르는 중이다. 천천히.

p.58 – 이원은 그의 시 「칼은 생각한다」에서 “손은 아무것도 못 잡을 때 간절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손에 잡히고 간절함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된다. 눈밖으로 벗어난다. 그 배반의 운명을 살기 싫다면 절대로 손에 잡히지 않을 일이다.

p.58 – 이원은 그의 시 「칼은 생각한다」에서 “꽃 속에서 나오기까지가 꽃의 골몰한 생각입니다”라고 말한다. 올해는 여름이 많이 덥다. 코스모스의 가을 생각이 그립다. 너무 골몰하게 생각하다 늦게 나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p.65 – 이원은 그의 시 「살가죽이 벗겨진 자화상」에서 “안이 들끓어 밖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없는 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인적 분노는 종종 안을 들끓게 만든다. 안이 들끓으면 그때부터 들끓는 안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스스로에겐 이유가 있는 분노이지만 그 분노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분노일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자식이 시간이 없어서 계속 있을 수가 없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디서 시간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냐고 소리를 지른 자식이 있었다면 우리는 소리지른 자식이 맞는 소리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자식들이 다 열심히 일하며 살아갈 때 그 소리 지른 자식이 어머니에 기생하며 술퍼먹고 속을 썩였던 자식이라면 그 자식의 분노에 대해선 얘기가 달라진다. 그 소리지른 자식은 들끓어 오르는 자신의 안을 보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남는게 시간밖에 없어 장례식장에 앉아 있는 자신과 없는 시간을 쪼개 장례식장에 앉은 다른 사람들이 보이게 되고, 그러면 오히려 시간이 없다고 말한 사람에게 없는 시간을 내서 이렇게 자리를 해주니 고맙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들끓는 안을 없애 밖을 볼 수 있는 순간이다. 있지도 않은 안을 만들어 들끓는 사람들은 밖을 보지 못하고 그런 사람들은 정말 피곤하다.

p.67 – 이원은 그의 시 「그림자 가이드북」에서 그림자를 가리켜 “모르는 몸에 가서 겹쳐진다 겹쳐/져서는 떨어지지 않는다 낯선 것/이다 낯선 것들은 서로 붙는다”라고 말한다. 혹시 내 곁을 지나는 분들, 내 그림자가 엉겨붙더라도 그러려니 하세요. 낯설어서, 그걸 없애고 친해보려고, 그래서 그림자들이 먼저 애쓰느라고 그러는 거예요.

p.72 – 이원은 그의 시 「강물로부터 온 편지」에서 “나를 읽어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한다. 시인이 말한 ‘나’는 “신발을 벗어두고” “강물로 뛰어내”려 자살한 사람이다. 자살하면서 “나를 배웅하는 시선이/하나는 있었으면”하고 바랬던 사람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죽음이 원하는 것은 그 죽음 앞에서 쏟아내는 슬픈 눈물이 아니라 그의 죽음을 읽어주는게 아닐까 싶다. 죽음을 읽어준다는 것은 호기심으로 그 사람이 왜 죽었을까를 파고드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읽어준다는 것은 이생에서 그가 살았던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억으로 그를 인화하는 일이다. 그것이 아마도 마지막 가는 길에 우리들이 죽음에 나누어줄 수 있는 “극소량의 빛”일지도 모른다.

p.75 – 이원은 그의 시 「해변의 복서 2」에서 “이곳에 있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시인이 있었던 곳은 복싱경기장이었던 듯 싶다. 그곳은 “이빨 사이로/피가 터져 나오며” “눈두덩과 볼이 부어오르”는 격투의 장이다. 그러나 시인은 왜 저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하지 않고 “이곳에 있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둘은 큰 차이를 갖는다. 전자는 나의 기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가 하는 일의 가치를 뿌리채 뽑아 버리려 든다. 후자는 다만 내가 견디기에는 수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토로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p.78 – 이원은 그의 시 「어쩌면, 지동설」에서 ‘태양’은 “검은 고양이의 털 속에서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물의 왼쪽 옆구리로 빠져나”오기도 하며, 또 “별들과 모래의 고독에서 새어나”오기도 한다고 말한다. 아침이 그렇게 온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별들과 모래의 고독에서 새어나”오는 태양은 별이 쏟아지는 해변에서 밤을 지샌 뒤에 맞는 아침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아침의 태양은 충분히 그런 느낌일 것이다. “물의 왼쪽 옆구리로 빠져나”온 태양은 해변에 옆으로 몸을 눕히고 바라본 바다를 상상하게 만든다. 바다의 수평선이 아마도 우리들과 나란히 누운 누군가의 옆구리로 보였을 것이다. “검은 고양이의 털 속에서 솟구쳐”오른 태양은 잘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바다에서 아침을 맞을 때면 해가 바다에서 솟는다고 하고, 산에서 맞을 때면 산에서 솟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부시시 눈을 떴을 때 옆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의 털 너머로 해가 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p.90 – 이원은 그의 시 「심야 택시」에서 “택시들은 어둠을 밀어낸 자리에서 다시 어둠이 된다”고 말한다. 택시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어두운 곳으로 밀고 들어온 뒤 불을 끄고 다시 어둠이 휩쌓이는 순간이다.

p.90 – 이원은 그의 시 「심야 택시」에서 택시를 잡다가 차에 치어 죽은 여자를 가리켜 “깊은 밤이 터뜨린 폭죽이었다”고 말한다. 교통사고는 끔찍하다. 그러니 그것을 두고 불꽃놀이의 축제라고 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사고 현장을 마치 불꽃놀이 구경하듯 모여서 들여다 보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서 사람의 죽음과 불꽃놀이가 다 똑같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익명의 도시에선 사람의 죽음이 그렇게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p.99 – 이원은 그의 시 「규격 묘비명 21 —성격대로, 입맛대로 골라 쓰는 재미」에서 모두 21가지의 묘비명을 우리 앞에 내놓고 골라잡아 보라고 한다. 나는 그 중 “4)가까스로 몸뚱이 벗다”와 “15)신출귀몰 전문, 전직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p.102 – 이원은 그의 시 「NEW, 전지구적 파프리카」에서 “텅 비어 있어요!!//텅 빈 것에 열광했다니/속도 없는 것을 씹고 있었다니”라고 말한다. 제목에 나와 있는대로 파프리카를 말함이다. 맛있다고 좋아했었는데 그게 속도 없는 맛이었다.

p.108 – 이원은 그의 시 「파는 백합과란 말씀」에서 ‘피망’을 가리켜 “고추의 입장에서 보자면/단고추로 변질된 시기도 미상인/요주의 종자로 분류”된다고 말한다. 다음에 피망을 사게 되면 이 고추의 매운 맛을 배신한 요주의 종자라고 한마디 하면서 사야지.

p.115 – 이원은 그의 시 「사람들은 아파트의 어디에 큰 개를 기르는가」에서 “길들여진다는 것은 목소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파트에서 기르기 위하여 성대를 제거한 개들을 말함이다. 요즘의 MBC나 KBS처럼 제대로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도 성대를 제거한 정권의 애완견에 불과할 것이다.

p.132 – 이원은 그의 시 「얼굴이 얼굴을 빠져나간다」에서 “조금 다른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새처럼 얼굴은 그렇게 얼굴을 빠져나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내가 얼굴 안에서 울 수 있겠”느냐는 것이 시인의 또다른 생각이다. 시인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떤 얼굴들이 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그 얼굴들이 너무도 빈틈 없이 내 얼굴을 채우고 있어 때로 내겐 울 수 있는 자리도 없다. 즉 슬플 때 울 수도 없을 정도로 어떤 얼굴이 내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득찬 얼굴들을 얼굴에서 내보내야 비로소 내가 울 수 있다.

p.146 – 이원은 그의 시 「트랙—출산」에서 “허공에 몸을 넣고 다닌 지 오래되었어. 허공이 몸을 감싸며 점점 부풀어 올라”라고 말한다. 아이를 가진 여자의 입장에서 평이하게 표현을 하자면 뱃속에 아이를 임신한 지 오래된 것이며, 달이 갈수록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우리들 사이에선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엄마의 뱃속이라고 얘기가 된다. 하지만 과연 태아에게도 엄마의 뱃속에 대한 그런 인식이 있을까. 혹시 태아에게 그곳은 공중에 뜬 허공이 아닐까. 몸을 감싸고 있는 그 허공이 점점 부풀어 오르고, “어디로 나가게 되는”지 그것도 알지 못한채 그곳을 살다가 마치 허공에서 던져지듯 세상에 나오는 것이 태아가 아닐까. 그래서 그 불안으로 아이는 본능적으로 가장 처음만난 엄마의 품을 파고드는 것이 아닐까. 시인의 언어는 언어를 가진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언어도 갖지 못한 아이의 입장으로 옮겨가 있다. 언어가 없는 자에게 언어를 넘겨주는 것, 그것이 시인이 해야할 일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p.149 – 이원은 그의 시 「245mm」에서 “어디로 뻗어나가는지 모르는 길이 하나 있고/길옆으로 얼마나 깊을지 모르는 강이 하나 있고/길과 길 밖 사이/틈으로부터 겨우 빠져나온 발이 하나 있다”고 말한다. 발은 아마도 신발일 것이다. 제목인 245mm는 그 신발의 크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신발의 주인은 그리 발이 크지 않은 사람이다. 아니, 신발의 크기로 보아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며 시인이 강옆으로 흐르는 길을 산책하다 길의 경계에 살짝 걸친 245mm 크기의 신발 하나를 보았다고 상상했다. 누가 흘리고 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또 길도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으며, 강은 상당히 깊어보였다. 시인은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묻는다. “자 이제 발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라고. 이미 지적했듯이 그 발은 발이 아니라 사실은 신발이다. 그러나 시인은 누군가 흘리고간 신발에서 신발이 아니라 발을 본다. 발은 사람이다. 시인에게선 신발이 발과 분명한 경계로 나뉘어있지 않다. 신발은 신발이고 발은 발이 아니라 신발은 발과 맞닿아 있는 경계이다. 때문에 신발의 경계까지 가면 신발 뿐만이 아니라 발도 보인다. 신발의 경계에서 무심하게 그 경계를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번쯤 그 너머 사람의 발을 보며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 그게 시인이 꿈꾸는 세상인 것일까. 그러고 보니 이번 그의 시집에서 신발의 너머, 사람을 만난 느낌이다.
(2013년 8월 19일)

**이 단상들의 대상이 된 시들은 다음 시집에 실려있다.
이원,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문학과지성사, 2012

2 thoughts on “이원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 시와 단상 2

  1. 어려운 표현들도 있지만, 파프리카에 대한 싯구는 참 편하게 다가오네요.
    인용된 구절들만 봐도 시집 제목만큼이나 만만해 보이는 시들이 아닐 것 같은데,
    그나마 조금 다리를 놔 주시는 것 같아요.

    1. 일없을 때는 일주일에 한권씩은 읽고 써서
      시의 세상을 안내해주고 싶은데
      어려운 시집은 저도 읽는게 만만치가 않더라구요.
      이번 시집은 특히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죽음과 그림자의 이미지를 따로 독립시켜
      써보고 싶기는 하더라구요.
      시간이 생기면 또 정리해 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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