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날을 잡아 벌초를 다녀왔다.
그녀가 혼자가면 심심하지 않겠냐며
무릎 관절에 대한 과도한 몸무게의 부담을 감내한채 따라나섰다.
나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산소에 도착하고
우리 것으로 짐작되는 산소에서 벌초를 시작했으나
지형의 반은 낯이 익었고 반은 낯이 설었다.
반쯤 벌초를 하다가
결국 그녀가 내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엉뚱한 산소였다.
바로 아래쪽을 두리번거렸더니
낯설던 나머지 반을 익숙한 낯빛으로 바꾸며
눈에 들어온 산소가 있었다.
이번 여름에 정말 비가 많았나 보다.
비가 많은 철에는 벌초할 때
항상 무성한 풀 때문에 산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냥 보기엔 이곳에 정말 산소가 있기나 한가 싶다.
내려가 보니 산소의 경사를 몸이 기억해낸다.
이곳이 맞다.
그녀가 내려와서 다시 자리를 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모는 말씀하셨다.
평생 자기 집 하나를 못갖더니
죽어서야 자기 집 하나를 장만한다고.
약간 경사가 져서 매년 찾아오는 우리들도
약간 기울어져 앉아야 하는 집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 집이 맞네.
내가 여기 와서 넓고 평탄하게 앉아본 적이 없다니까.
벌초를 다하고 나니
둥근 모양의 봉분 때문인지
벌초라는 것이 마치 머리깎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발하신 아버지는
금방 신수가 훤해지셨다.
세상뜨고 나면
세월따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지 않나 싶다가도
벌초하고 난 뒤의 말끔한 산소 모양을 보면
이러니 안할 수도 없다 싶어진다.
가끔 동생에게 맡기기도 했는데
올해는 그녀와 함께 다녀온 벌초길이었다.
2 thoughts on “벌초, 그 전과 후”
선친께서 하남에 누워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 쪽인지 몰라도 제가 무심코
다니던 길과 가깝지 않을까 하는데, 다음엔 인사라도 드려야겠네요.^^
벌초 후 사진은 가끔 면도하고 핸썸해져서 깜짝 놀라게 하시는 dong님 얼굴 같습니다.ㅋㅋ
종필씨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룬 장례식장이 있던 곳의 산이예요. 봄에 진달래가 예뻐서 산 정상으로 지나치기도 합니다. 후배들이 장례 때 도와주었는데 높아서 아주 고생을 많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