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잎 다시 살아나」라는 노래가 있었다. 마른 잎이 다시 살아나 푸르러질 이 강산을 꿈꾸는 노래였다.
노래의 소망과 달리 마른 잎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한번 지상으로 몸을 눕힌 잎은 그 다음부턴 그 편안한 안식을 마다하고 또 한번의 삶을 위하여 무릎을 세우는 법이 없다. 바람에 시달리고 가뭄에 갈증났던 삶이라면 더더욱 일어나고 싶지 않으리라. 얼마나 달콤했으랴, 그 마른 잎의 버석대는 휴식이. 몸을 햇볕에 말려 바람 속에 묻는 풍장(風葬)의 의식은 마른 잎 사이에선 항상 반복되고 있는 일상이다. 마른 잎은 한번 몸을 눕혀 풍장의 의식을 치루고 나면 절대로 다시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일제히 몸을 눕힌 마른 잎들의 사이로 봄만 되면 푸른 잎이 새롭게 고개를 내민다. 그때쯤 우리는 마치 마른 잎이 다시 살아난 듯한 기쁨에 젖는다. 아니, 왜? 그건 분명 마른 잎이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닌데. 새로 시작하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마감된 생명의 부활을 본다. 마른 잎은 다시 살아나지 않지만 새로운 잎이 고개를 내밀 때 우리는 은연 중에 깨닫는다. 마른 잎이 누울 때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휴식의 그 달콤한 종말이 삶이 끝났다는 허무를 우리에게 동시에 안겨주었음을. 그런 연유로 우리는 휴식 가운데 허무를 앓았다. 돋아난 새로운 잎은 그 허무를 일거에 걷어내준다. 때문에 우리는 그 새생명에 환호한다. 마치 마른 잎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그리고 그 환호가 봄날의 새로운 잎에서 마른 잎의 부활을 보게 만든다. 마른 잎은 매년 봄 새로운 잎과 함께 다시 살아난다.
마른 잎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른 잎은 새로운 잎이 돋을 때 그 새로운 잎과 함께 다시 살아난다. 마찬가지이다. 청년이 살아날 때, 노년도 함께 살아난다. 그러니 노년이 다시 푸른 삶을 살고 싶다면 이 땅의 청년을 살려야 한다. 그때 마른 잎도 함께 살아날 것이다.
2 thoughts on “마른 잎 다시 살아나”
그러고보면 마른 풀잎과 새로 돋아나는 풀잎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성한 표현과 묘사들이 가능하네요.
역시 오래 눈길을 주면서 마음을 주고받아야
이런 아름다운 말들이 찾아올 것 같네요.
이제 날도 따뜻해지니 어느 주말을 골라 두물머리로 한번 나가도 좋을 듯 합니다. 다음 달 쯤이면 푸른 잎들을 제법 볼 수 있을 듯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