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추억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7월 11일 경기도 퇴촌 원당리에서

비는 줄기가 굵어지면 때로 무섭기까지 하다.
그럴 때는 빗속을 걷는 낭만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저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정도 나이먹은 사람은 누구나
이러다 큰물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때 빗속으로 나서면 비에 휩쓸린다.
그러나 가끔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비는 또 안개인가 싶을 정도의 가는 알갱이로 하얗게 날릴 때도 있다.
그 정도의 비는 그냥 맞아두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올해 7월의 어느 날 그런 가는 비가 내렸다.
그런 가는 비는 장대비처럼 직립으로 지상에 내리꽂혀 산산히 산화하지 않는다.
그런 비는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날려간다.
그러다 풀잎을 만나면 그 줄기를 붙잡고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
하나둘 자리를 잡다보면 풀잎에 물방울이 송이송이 잡힌다.
잠깐이라도 해가 뜨면 곧바로 사라지겠지만
물방울이 송송하게 들어찬 풀잎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생각해보면 왜 우리에게도 장대비처럼 서로에게 쏟아지던
격정의 나날이 없었을까 싶다.
아마도 그런 날이 있었으니 결혼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살다보면 서로에 대해 시들해진다.
가끔 잠들어있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그러면 비가 안개처럼 날리는 여름날 내가 풀잎에서 보았던
그 송이송이 맺힌 물방울 보석의 아름다움처럼
그녀가 내 삶의 풀밭에 맺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만큼 그녀가 아름다울 때도 없다.
그러면서도 참, 사람은 욕심도 많다.
그녀가 내 삶의 풀밭에 아름답게 맺혀있다고 느끼는 한편으로
자꾸만 격정적 장대비처럼 우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사랑을 꿈꾸게 된다.
문제는 그런 욕심이 삶의 의욕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런 사랑을 꿈꿀 때 살아있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다.
산다는 건, 사랑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삶 속에 사랑이 있고, 또 삶 밖에 사랑이 있다.
삶 밖의 사랑도 결국은 삶 안의 사랑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인간은 항상 삶 밖을 엿본다.
에이, 어리석은 동원이 같으니라구.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7월 11일 경기도 퇴촌 원당리에서

8 thoughts on “비의 추억

  1. 가을에 보는 푸르름,
    작은 이슬들,
    넘 영롱한 느낌에요.
    아, 이제 추운 겨울이 온다는 것이….. 이 가을에서 계절이 멈춰지길…….ㅋㅋ
    제가 추운걸 못참아요. 하얗게 내리는 흰눈은 사랑하지만,

  2. 여긴 조금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고있어요.
    어젠 그렇게도 맑더니..
    빨래 걷으려고 옥상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국화가 피기 시작한걸 봤네요.
    노란 국화 화분이 세개인데 꽤 오래전부터 봉오리를 맺더니 필생각은 안했거든요.
    날이 차가와지면서 피어나다니..역시 가을꽃인지.^^
     
    저도 늘 사랑에 목마른 여자같지않나요?^^
    너무 평화로와서 그런가봐요.
    자꾸 딴생각이 드는..
    벌받아야 정신을 차릴것같아요.^^

  3. 제 글 <가라 가라 가라> 내렸어요. 사실은 아침에 내리려고 생각 했었던 거예요.
    동워니님 댓글이 달렸는데, 어쩌지요? 지송함돠~
    조금 수정하여, 나중에 쓸려구요. ^^

    오블에선, 발표되지 않는 글들을 올려 두면 안 될 거 같네요.
    글자 도둑들 얼마나 많다구요~ (외부 싸이트)
    해서 저는, 발표된 글들만 올립니다. 그 건 괜찮으니깐요.

    어느 날은, 제 시를 하나 들고간 사람이(뉴욕) 아예 자신의 글로 만든 걸 봤어요.
    99%는 제 글이고, 1%는 자신의 멘트로 바꿔서요. ㅋㅋㅋ
    이미 발표 글이라, 걍 뒀어요.

    이젠, 제가 감춘 이유를 아셨지요? 서운치 마시길…
    좋은 시간 보내세요~ ^^

    1. 잘 하셨어요.
      저작권을 분명하게 표시하던가 해야 하는가 봐요.
      저도 그런 경우를 겪어본 적이 있어요.
      컴퓨터 사용법에 대해 어떤 포럼에서 답변을 해준 적이 많은데 그 답변을 어느 컴퓨터 판매업체가 마치 자기들이 답변한 것처럼 자기들 게시판으로 가져다 쓰고 있더라구요. 토씨하나 안틀리고. 기가찬 것은 중간에 오자난 것까지 똑같았다는 것. 어찌나 황당한지.
      특히 시나 소설은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그건 그야말로 고전적 의미의 순수 창작물이잖아요.
      다 이해하니 걱정하지 마시길.

  4. 빗방울 묻은 풀잎, 크게 클릭해서 봤어요.
    건조한 요즘 시기…저렇게 흠뻑 젖은 풀잎들 실컷 봤으면 좋겠네요.
    사진으로 대신, 갈증 해소 합니다.
    풋풋합니다.

    (후렴: 에이~동워니님이 어리석다뇨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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