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히 볕이 따뜻한 곳인가 보다.
미시령을 넘다 호젓한 산길에서 진달래를 만났다.
넘어가는 저녁해가 울산바위의 그림자를
산 아래쪽으로 길게 밀어내고
산그늘이 덮인 곳에선 이내
겨울 냉기가 싸늘하게 손에 잡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진달래가 핀 작은 언덕엔
아직도 하루내내 볕이 데워놓은 훈기가 완연했다.
진달래 언덕의 훈기는 제법 넓고도 깊었다.
단순히 서 있는 곳의 발목에 찰 정도가 아니었다.
산 아래쪽을 그늘로 덮어가며
냉기가 훈기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그 언덕만큼은 냉기가 발목까지 올라오기에는
여전히 시간의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 훈기로 인하여 그곳엔 늦가을과 봄이 한 자리에 있었다.
초록을 버리고 붉은 색을 손에 쥔 진달래 잎은 가을에 서 있었지만
분홍빛을 꽃잎에 든 진달래의 계절은 봄이었다.
진달래는 왜 이 가을에 봄을 들고
잎의 가을과 함께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이었을까.
봄꽃이 질 때쯤 잎이 났으리라.
우리가 모두 자연의 이치라는 이름으로 흘려보냈지만
그것도 이별의 아픔이었는지 모르겠다.
잎은 가을에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우리는 그것 또한 자연의 순리로 흘려보냈지만
그것이 사실은 초록으로 살면서도
끝내 잊지 못한 꽃의 기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잊지 못한 그 기억이 꽃을 불러낸 것일까.
잊지 않는다는 것 –
때로 그것이 이 가을에
꽃의 봄을 잎의 옆에 나란해 세운 힘이었을까.
꽃의 옆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속삭이고 싶었다.
난 아마 어느 날 네 옆에서 얼어죽을 거야.
가을날 네 기억의 자장을 쫓아
얇은 옷을 걸치고 봄을 든채 네 옆에 나타날 거거든.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얼어죽을 소리야.”
2 thoughts on “가을 진달래”
요즘 반전 있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 진달래 양보다 미시령, 울산바위 군들에 귀가 솔깃해지는데요.
딸이 친구들하고 논다고 하여 집을 내주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 밤에 속초로 나섰다가 1시간 거리의 미시령을 남겨놓고 차를 돌린 적이 있어요. 이번에는 낮에 갔는데 터널로 가자는 걸 제가 옛길로 올라가보자고 했죠. 그냥 지나쳤으면 너무 아까웠을 풍경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