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15

올해는 『문예바다』라는 문학잡지에 시에 대한 계간평을 연재했고, 소설을 하나 번역했다. 계간평은 내년에도 계속 맡는다. 번역한 소설은 밀로라드 파비치의 소설 『바람의 안쪽』이다. 연말에 책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만 내년으로 미루어졌다. 내년에 두 권 더 낼 예정으로 있다. 넘어져서 이빨이 빠지는 사고를 겪어 한동안 고생한 것도 기억해둘만한 올해의 일이다. 아직 이는 해넣지 못하고 그냥 지내고 있다. 3월부터 시작하여 매달 한번씩은 홍대의 롤링홀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젊은 사람들이 마련하는 음악인들의 공연을 사진으로 기록해두기 위해서 였다. 틈틈히 동네나 가까운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은 것은 다른 해와 마찬가지였다. 올해의 한해를 열두 장의 사진으로 정리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1월 19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1
눈덮인 강이 있었고, 섬이 있었으며, 산이 있었다. 산의 위로 구름과 푸른 하늘이 있었다. 모두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가진 자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세상에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 가장 값진 것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2월 22일 서울 천호동에서)

2
비가 다녀가면서 마른 낙엽을 흠뻑 적셔놓고 갔다. 바람과 놀 때는 언제나 길거리를 정신없이 굴러다녀야 했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물과 놀 때는 그것 하나는 편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3월 27일 서울 천호동에서)

3
산수유 꽃은 작다. 하지만 크고 작은 건 중요하지 않다. 작으면 많이 모이면 된다. 그러면 작은 꽃으로도 세상을 노랗게 칠할 수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4월 29일 서울 암사동에서)

4
비가 내리자 대리석 담장은 매끄럽고 고요한 수면이 되었고 떨어진 작은 나뭇잎은 그 수면을 부유하는 작은 배가 되었다. 마른 세상이 호반의 세상으로 바뀌자 담장의 위도 볼만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5월 8일 서울 암사동의 고덕산에서)

5
어디선가 폭죽터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내려다 보니 발밑에서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푸른 불꽃놀이는 처음이다. 터져선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멈춰 있었다. 얼음땡 마술에 걸렸나 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6월 5일 경기도 양수리에서)

6
물가의 풍경은 위를 바라보면서 동시에 아래를 살핀다. 위만 바라보는 풍경보다 위아래를 동시에 살피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아마 삶도 그럴 것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7월 24일 서울 천호동에서 )

7
흐리고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이 있다. 푸른 하늘이 맑은 날인 우리는 이런 날은 하루 종일 날이 흐리다고 말한다.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리의 말이 맞는 듯 싶어진다. 하지만 정작 빗방울은 흐린 날이란 그 말을 이해못할지도 모른다. 바람에 날려 사선으로 내리는 비는 그 말을 이해못한 빗방울의 갸우뚱한 의문일 수도 있다. 빗방울에겐 비오는 날이 가장 투명하고 맑은 날이기 때문이다. 비오고 흐린 날, 방충망에 걸린 빗방울이 하루 종일 맑고 투명하게 머물다 간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8월 29일 인천 영종도의 마시안 해변에서)

8
아이가 제 그림자를 딛고 뻘을 찰박찰박 걸어간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과 발바닥이 서로를 맞댄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9월 24일 경기도 광주의 수청리에서)

9
바람이 자는 강의 수면 속으로 섬이 그림자를 담그는 조용한 오후의 시간에 구름 둘이 하늘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섬이 침을 꼴깍 삼기며 둘의 사랑을 지켜보느라 온통 숨막히는 적막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10월 15일 경기도 가평의 유명산에서)

10
어둠이 주저스럽게 만드는 산길을 마다않고 올랐더니 해가 넘어간 자리에서 초승달이 반겨주었다. 달을 보기 좋은 자리는 이미 억새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사실 억새들의 뒷자리가 더 좋았다. 어둠이 까만 윤곽으로 밝혀주는 억새들의 뒷태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자리였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11월 12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11
단풍 아래서 노랑과 주홍의 진한 포옹을 보았다. 색의 사랑이었다. 화려한 사랑이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5년 12월 3일 서울 천호동에서)

12
호두알만한 눈들이 펑펑 날리는 골목을 한 여자가 우산을 받쳐들고 걸어간다. 항상 다니던 골목이 한없이 걷고 싶은 골목이 되었다.

4 thoughts on “Photo 2015

  1. 올 한해도 멋진 수작(秀作)들로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의 DW잠언으론 3월의 “크고 작은 건 중요하지 않다. 작으면 많이 모이면 된다”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1. 사실 더 좋은 건 작은 거 하나도 큰 것만큼이나 소중한 취급을 받는 건데 말예요. 꼭 모여서 소리를 질러야 존재감을 보장받는 사회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도 작은 꽃처럼 살아봐야 겠습니다. 저도 올해 댓글교환 블로그로 서로 들락거리면서 즐거웠습니다. ^^

  2. 한해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알려주시는군요
    포토에세이 하나하나가 유난히 주옥같이 느껴지는 한해 마무리시네요
    아직 내년 달력이 준비된게 없어 사야하나…하고 있는 중이예요
    올해보다 내년이 더 바빠지실거 같군요. Sounds good!^^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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