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때의 땅콩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가끔 식탁에서 내 입의 심심함을 달래준다.
나는 강원도 영월의 시골에서 자랐지만 밭에 심어진 땅콩은 거의 보질 못했다. 그것은 땅콩이 모래가 많이 섞여 있어 물이 잘 빠지는 사질성 토양에서만 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냥 일반 밭에 심으면 땅콩이 썩는다고 들었다. 우리 동네는 땅콩이 자랄만한 밭이 흔치 않았다.
밭에 심어진 땅콩을 직접 본 것은 어릴 때 동강변의 삼옥이란 곳에서 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 있던 선생님이 삼옥으로 전근을 가는 바람에 아이들 몇몇이 모여 전근간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찾아갔었다. 나는 삼옥을 한동안 들은대로 이해를 하여 사목인 줄 알았었다.
지금의 삼옥은 다리가 놓여 있어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강건너의 고립된 마을이었다. 영월에서 들어가는 길이 있기는 했지만 가파른 병창을 타고 아슬아슬 걸어들어 가야 했었다. 우리는 강변에 가서 선생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그러자 어디선가 동네 사람이 나타나더니 배를 갖고 건너와 강을 건네 주었다.
영월엔 굽이치는 동강 줄기 때문에 강건너로 고립되어 있는 마을이 여러 곳 있었다. 그런 곳은 강변에서 소리치면 꼭 누군가가 나타나 배를 저어왔다. 우리는 강건너 마을을 어떻게 건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날이 땅콩을 수확하는 날이라 선생님 찾아갔다가 열심히 땅콩을 캐야 했고 저녁에 올 때는 땅콩을 두둑히 얻어 왔었다. 그걸 그냥 입에 넣었다가 비린 맛에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 밭은 자갈이 반쯤은 섞인 밭으로 땅콩이 자라기엔 딱인 밭이었다. 사실 땅콩 이외에 다른 작물은 심기도 어려워 보였다. 어쨌거나 나는 그날 처음으로 밭에서 직접 자라는 땅콩을 만났었다.
대보름 쯤에는 어김없이 보름달이 땅콩을 식탁으로 불러다 준다. 그리고 대보름이 지난 요즘은 땅콩이 볼 때마다 맥주를 불러다 주고 있다. 어릴 적 처음 봤을 때를 회상하기도 하면서 땅콩이 불러다준 맥주와 더불어 놀고 있는 것이 여러 날이다. 추석이 아니라 대보름만 같아도 괜찮은 시절이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2 thoughts on “땅콩의 추억”
한 편의 따스한 동화를 읽다, 마지막에 동화 주인공이 다 자란 이야기까지 듣고 갑니다.^^
삼옥은 들어가고 나오는 것은 편해졌는데 옛날 배타고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