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방학 때면 항상 외갓집에 가서 며칠 묵다 오곤 했었다.
어머니 고향이기도 한 그곳은
내가 살던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모두 강원도 영월의 테두리 속에 있었고,
내가 사는 곳이 북면 문곡리, 그곳은 남면 연당리였다.
들어가는 입구에 대추나무가 늘어서 있었고,
뒷산엔 밤나무가 빽빽했었다.
외할아버지는 외손주 주려고 항상 제일 좋은 밤과 대추를 골라놓으셨다.
2004년, 그러니까 두 해전 10월 16일에 볼일이 있어
어머니 모시고 시골 내려가는 길에 외갓집에 들렀다.
지금은 형제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그곳엔 둘째 외삼촌만 살고 계시다.
세월의 풍화.
원래 살던 집을 버리고, 조금 앞쪽으로 새집을 지었다.
원래 살던 집은 사람이 살지 않자
주인없을 때다 싶었는지 바람이 여기저기를 뜯어가 버렸다.
사람이 드나들던 집을 지금은 바람이 드나들고 있었다.
둘째 외삼촌댁은 골안집이라 불렸다.
골짜기 안에 있는 집이란 뜻이었을 것이다.
집 뒤로 빽빽하던 나무는 베어서 팔아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높아만 보였던 산이 나트막했다.
마늘이 버려진 옛집의 깊숙이 들어온 햇볕에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헛간이다.
헛간은 이상하게 덩치만 크고
그 속이 텅빈 느낌이다.
그 느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어느 한철 담배를 찌던 담배 헛간을 많이 보아서 그런 것 같다.
담배 헛간은 담배를 찔 때만 잠시 속을 채울 뿐
한해 내내 비어 있었다.
늙은 오이의 가을 4중주.
호미들의 휴식.
모두 턱을 고이고
여름날의 추억을 되새김질한다.
일하다 벗어놓은 마당 한켠의 장갑 한켤레.
장갑은 손을 빼면 풀이 죽는다.
가마솥.
한때 가마솥은 열정으로 들끓었다.
그러니까 수많은 농꾼의 배를 채워주며 신명나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가마솥은 그 시절이 그리울 것이다.
둘째 외삼촌.
많이 늙으셨다.
평생 농사를 지으셨고,
지금도 농사를 지으며 땅과 함께 살고 계시다.
내려간 길에 영월의 보덕사에 들렀다.
보덕사는 영월의 장릉에 있는 작은 절이다.
어릴 때 딱 한번 그곳에 가본 적이 있었다.
절의 숲에서 덩쿨이 나무를 부등켜 안고,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을날의 숲속에서 사랑이 그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절에 관한 옛기억의 흔적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런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워낙 오래 전의 기억이 되어
그곳에 갔다 왔다는 기억 이외에는 모든 게 지워졌나 보다.
보덕사에서 강아지 한마리가 반겨준다.
요럴 때는 노래 하나 불러줘야 할 듯하다.
“우리집 강아지는 삽살 강아지.
학교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꼬리치며 반갑다고 멍멍멍.”
한참 동안 우리를 졸졸 따라 다녔다.
어머니도 보덕사의 탑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으셨다.
어머니는 그다지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으신다.
이제는 고향보다 오히려 서울에 아는 분이 많다.
난 그렇질 못하다.
아는 사람들이 거의 인터넷에 있고,
아니면 고향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종종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6 thoughts on “외갓집 풍경”
저 마늘 버려진건가요? 가져다 김장해야겠다.ㅋㅋ
외갓집은 외갓집이란 이름만으로도 참 푸근하게 느껴져요.
저의 외갓집은 청평인데 어렸을때 놀러가면 사촌오빠들이랑 강가에서 고기잡고
수영하고 외숙모가 만들어주신 과자랑 꽈배기를 맛나게 먹어서
늘 가고싶었던 곳이었어요.^^
한지 공장을 하셔서 큰 창고엔 폐지가 엄청 많았는데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이쁜 카드를 찾아다니던 기억이 나네요.
카드를 찾을때 공장안에 흐르던 음악이 있었는데 그곡이 나자리노였어요.
후에 제목을 알아내서 그곡 들을때마다 어린시절 소녀로 돌아가곤했던.^^
나자리노, When a child is born, 저도 그 곡 무지 많이 들었어요.
청평은 너무 좋지요.
비오거나 눈오면 그곳에 사진찍으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죠.
엊그제 다녀온 것 같은데 벌써 2년전 얘기네…
당신은 새로 지은 집보다 저 낡고 다 쓰러져가는 저 집에 대한 기억이 많겠다…
난 그저 쓰러져가는 그 집이 낯설고, 무섭던데.
외삼촌은 사진이 더 멋지게 나왔고, 울 어머니는 언제나 늘 씩씩하신 걸^^::
외할아버진 창호지가 다 뜯겨져 나간 가운데 보이는 방에 계셨지. 그 방엔 짚으로 엮은 돗자리가 깔려 있었는데…
사진으로 찍어놓으니 언제적인지 잘 알 수 있어 좋다.
이 사진을 보니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가을이라 좀 쌀쌀했지만 햇빛은 따뜻했었던 기억이…
게다가 디지털 사진은 순차적으로 수백장을 찍기 때문에 사실 비디오보다 더 기록성이 높은 것 같다. 여기엔 없지만 그날 피마자도 찍고 여러 가지 찍었는데 그게 고스란히 남아있으니…